이정성 기자
【에코저널=서울】풀씨행동연구소는 지난 8일 재단법인 숲과나눔 강당에서 ‘도심 곤충 대발생, 함께 살아가는 건강한 해법은?’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이윤주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 이후승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위원, 박선재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 최영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장, 박찬호 전남대학교 연구교수, 홍현정 한국환경연구원 부연구위원, 신혜정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박사과정 연구자가 전체 토론을 하고 있다.(사진제공 풀씨행동연구소)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3월 통과된 서울시 곤충 방제 조례는 도시생태계 전반에 대한 과학적 이해나 방제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채로 성급하게 추진된 면이 있다”며 “방제보다는 예보나 청소와 같은 주민 생활 불편을 줄이는 관리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환경연구원 이후승 연구위원이 ‘현상 제거를 중심에 둔 대응 방식,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본 문제점과 대안’을 주제로 발제를 하고 있다.(사진제공 풀씨행동연구소)발제를 맡은 이후승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위원은 “2014년 위스콘신 미시시피강 인근에서 하루살이류 대발생으로 차량사고와 도심 내 경관 피해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며 “당시 해당 주 정부는 시민의 생활과 교통안전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발생 예측 시스템을 운영하고, 하루살이의 특성을 고려한 조명 관리, 도로청소 등을 통한 교통사고 예방, 연구 활동 강화 등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관리방식도 해당 종에 대한 탄탄한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하는데, 기초연구가 부족한 상태에서 방제 연구에 나서는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후승 연구위원은 “생물의 입장에서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최적의 선택으로서 종종 대규모 무리를 이루는데, 인간과 야생생물의 갈등이 생겼을 때, 생태계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고 개체 수 조절에 나섰다가 갈등만 심화된 사례가 많다”며, 과거 영국에서 갈매기 개체 수 조절을 위한 ‘친환경적’ 제거 정책을 펼쳤다가, 풍선효과로 경쟁관계에 있던 다른 종이 증가하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 사례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방제는 제거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친환경’과 ‘방제’는 서로 상충되는 개념”이라며 “도시 전체에 대한 방제보다는 집안에 들어왔을 때나 몸에 영향을 줄 때처럼 직접적인 경우의 행동 요령을 제시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지정토론에서 국립생물자원관 박선재 연구관은 2022년 서울시 은평구와 인천 등지를 중심으로 대발생했던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의 생태를 소개하며, “유충시기에는 낙엽을 분해하고 성충시기에는 식물의 수분을 돕는 등 익충으로서 역할하지만, 대발생 할 경우 ‘위생 해충’보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시민이 42%”라고 설명했다. 박 연구관은 “파리나 모기와 같은 위생 해충 관리가 어려운 현실에서 보듯이 곤충에 대한 완벽한 방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시민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 방제 조례가 우선 검토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환경연합 최영 생태도시팀장은 “서울시 조례에서 다루고 있는 대발생 곤충의 범위나 방제 방법의 범위가 넓고 모호해서 현장에서 실제로 방제가 적용됐을 때 어떤 후과가 나타날 것인가에 대해서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최 팀장은 “서울시가 친환경 방제를 권고한다고 하는데 사실상 화학 방제를 금지하지 않고 있으며, 기초지자체로 가면 네오니코티노이드 같은 독성 화학물질마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며, “곤충에 대한 공포와 혐오감을 키우고, 과학적 근거 없이 어떤 곤충이든 불편함을 이유로 죽일 수 있도록 하는 대발생 곤충 방제 지원 조례 재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찬호 전남대학교 수산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이번 서울시 조례는 나쁜 선례가 될 우려가 크며, 선례가 생기면 타 지자체에서 뒤따라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며, “행정기관은 시민의 민원을 대응하기 위해 방제 조치에 나서는 것이 일반적인 대응 방식이지만, 이 같은 접근은 단지 일시적인 해결에 그칠 뿐, 도시 생태계 전반을 이해하거나 지속 가능한 공존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일시적 대량 발생 생물에 대한 인식을 ‘제거 대상’에서 ‘생태계 구성원’으로 바꾸고, 이들이 제공하는 생태계 서비스를 가치화하는 것이 중요하며, 도시 생태계의 건강성과 회복력을 높이는 기회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한국환경연구원 홍현정 부연구위원은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의 목표에 따라서 인간과 야생동물의 상호작용을 관리하고, 갈등을 방지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적절한 계획·관리·보상을 통한 갈등완화와 예방을 권장하고 있다”며 국제사회 흐름을 전했다. 홍 부연구위원은 “국제사회에 제시된 갈등 관리 지침에 따르면 갈등의 상호작용 영향에 대한 측정을 통해서 사실에 기반한 관리가 이뤄져야 하고, ‘피해’에 집중하는 대신 야생생물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며, “내년에 수립될 제4차 자연환경보전계획과 제5차 야생생물보호기본계획에 지속가능한 시각을 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신혜정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박사과정은 “기후변화가 심화되면서 환경생태교육이 활성화됐지만, 지속불가능한 사회에서 생산되는 교육이 지속불가능성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2020년 유네스코 미래교육 이니셔티브의 배경 보고서에는 ‘세상에서 살고 배우는’ 학습이 제안됐으나, 정작 일상에서 일어나는 곤충 대발생과 같은 이슈는 학습의 기회로 삼지 못한다”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이어 “러브버그를 제거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기존에 가졌던 이해의 틀을 변화시키고 조절하는 방향으로 학습을 적극 고민해야한다”고 제안했다.
포럼 좌장을 맡은 이윤주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는 “서울시가 ‘생활불쾌곤충’이라는 작명을 하고, 통합관리계획에 ‘곤충으로부터 쾌적한 도시’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는데,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3/4이 곤충이다. 이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생태계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한 비전인가”라고 꼬집으며, “방제 조례의 목적으로 시민의 건강한 삶을 언급하고 있지만, 우리의 건강한 삶은 건강한 자연이 있을 때 얻어지며, 건강한 자연은 우리가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빼거나 더해서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선 발제자들이 지적한 것과 같이 “장기적인 생태계 영향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시민들의 인식 전환이 촉진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3월 7일, 서울시의회는 ‘서울특별시 대발생 곤충 관리 및 방제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시민들의 항의로 상임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보류된 지 8개월 만에 이뤄진 일이다. 지난해 8월 서울시의회 누리집에 고시된 해당 조례의 제정 이유는, 지구온난화와 도시환경 변화로 인해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 팅커벨(동양하루살이) 등의 곤충이 대발생해 시민 불편을 초래하고 있으며, 현행 법률과 조례상 관련 규정의 미비로 인해 시민 민원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방제에 나설 수 없어, 대발생 곤충에 대한 체계적 관리 및 방제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친환경적 방제를 권고함으로써 생태계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시민 불편을 해소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