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사명대사 되찾은 사리 봉안 적멸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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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사명대사 되찾은 사리 봉안 적멸보궁 태양, 파도와 함께 걷는 ‘해파랑길’(43)  
  • 기사등록 2024-07-07 07:33:52
  • 기사수정 2024-07-07 16: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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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바쁜 발걸음은 새벽잠을 앗아간다. 고성에 왔으면 꼭 들려야 하는 금강산 건봉사를 이른 조반을 마치고 찾아간다. 

 

건봉사 전경.

건봉사는 금강산을 주산으로 하기에 ‘금강산건봉사(金剛山乾鳳寺)’라고 한다. 금강산 자락은 미시령 북쪽에 있는 신선봉이 남단자락으로 감로봉과 향로봉을 이어 단발령까지가 휴전선 이남에 위치하고 있는데, 건봉사는 감로봉 아래에 있다.

 

건봉사 대웅전.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7년(520년)에 아도(阿道)가 창건할 때는 원각사(圓覺寺)였는데, 758년(경덕왕17)에 발징(發徵)이 중건해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우리나라 최초로 열었다고 한다. 도선이 중수해 서봉사(西鳳寺), 나옹이 재중수해 지금의 건봉사가 됐다.

 

만해 한용운의 시비 ‘사랑하는 까닭은’.

불이문.

절 입구에 있는 만해의 시비 ‘사랑하는 까닭’을 읊어보고 6·25 한국전쟁 때에도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불이문(不二門)을 지나 범종각을 둘러본다.


1920년대 건봉사 전경.

적멸보궁.

옛날 642칸의 위용을 자랑하던 절터를 발걸음으로 세어가며 적멸보궁(寂滅寶宮)으로 간다. 임진왜란 때 당시 통도사에 있던 부처님 진신치아사리를 왜병(倭兵)이 일본으로 가져간 것을 의승병(義僧兵)을 일으킨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일본에서 찾아와 봉안한 곳이 건봉사 적멸보궁이다.

 

진신사리 승탑.

적멸보궁은 “번뇌의 불꽃이 꺼져 아주 고요한 상태<寂滅>로,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곳<寶宮>”으로 해석된다. 이것은 ‘육신은 부단히 움직여 게으름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생각도 많이 하여 머무르지 않게 하는 것’이 적멸이 아닌 가 나 스스로 생각해 보며 아래로 내려와 능파교를 건너 대웅전으로 간다.


건봉사와 능파교.

건봉사 능파교는 1708년(숙종34년)에 건립돼 1749년(영조25년)과 1880년(고종17년)에 중수(重修)됐다. 대웅전지역과 극락전지역을 연결하는 홍교(虹橋, 무지개다리)다. 비교적 규모도 크고 보존이 잘된 상태다. 대웅전은 여느 사찰과 비슷하다. 대웅전 밑 측면에 있는 만일염불원(萬日念佛院)에 마련된 ‘석가세존 진신치아사리 친견장’은 아침이라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만일염불원.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가 처음 시작한 건봉사에는 ‘등공대(騰空臺)’란 곳이 있다. 민통선 철조망 안에 있어 자유로이 가 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안내자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다. 

 

등고대 가는 철책.

민통선 철조망의 자물쇠를 열고 한 오리쯤 소나무가 우거진 오르막길을 걸어가면 부도탑 비슷한 원통형의 돌탑이 나온다. 

 

탑에 새겨진 글씨. ‘三十一人謄高 遺蹟紀念之塔’. 

측면에 “三十一人謄高 遺蹟紀念之塔(삼십일인등고 유적기념지탑)”이라고 음각된 탑이 서있는 곳이 등고대다.

 

건봉사 등고대.

등고대는 747년에 발징화상께서 정신 양순 등 수행승 31인과 신도 1820명의 참여로 아미타만일염불회를 결성해 ‘나무아미타불’을 염송(念誦)하며 만일동안 신행을 닦았다. 29년이 지난 776념(병진년) 7월 17일 아미타불께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과 함께 나타나서 수행승 31인을 극락세계로 이끌었던 자리에 건립됐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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