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미녀 아내의 슬픈 전설 담긴 ‘재인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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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미녀 아내의 슬픈 전설 담긴 ‘재인폭포’ 한탄강과 임진강(17)
  • 기사등록 2023-12-02 08:23:39
  • 기사수정 2023-12-03 09: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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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다시 경흥로를 벗어나 주상절리길로 들어서서 얼마를 걸었을까? 협곡을 따라 굽이치던 물길은 아주 눈에 익숙한 모습을 나타낸다. 


한탄강 한반도 수형.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물 흐름 자체가 한반도 모형이다. 지형(地形)이 한반도 모습을 나타내는 경우는 많이 보아왔는데, 수형(水形)이 한반도를 그리는 모습은 처음 같다. 항상 세상을 걸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자연이 만들어 주는 선물은 위대하고 경외(敬畏)롭다. 


재인폭포.

서둘러 오전을 마감하고 점심식사 후에는 경기도 연천군의 재인폭포로 향한다. 재인폭포(才人瀑布)는 한탄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형 중의 한 곳으로 연천군 최고의 명소로 꼽힌다. 

 

원래 평지였던 곳이 갑자기 움푹 꺼지며 북쪽의 지장봉에서 흘러 내려온 계곡물이 약 18m 높이에서 주상절리 절벽으로 쏟아지면서 폭포를 이뤄 장관을 연출한다. 현재 폭포의 위치는 윗부분의 침식작용으로 한탄강에서 약 300m 이상 거슬러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출렁다리에서 보이는 재인폭포는 현무암을 뚫고 자라난 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만큼 울창한 협곡 끝에 신비로운 자태로 자리했다. 위에서 떨어지면서 물보라를 이루며 부서지는 하얀 물살과 그 아래 쪽빛으로 펼쳐진 소(沼)는 보는 순간 마음을 사로잡는다. 소의 깊이가 무려 20m에 이른다고 한다. 쪽빛 소가 빚어내는 색의 조화가 거대한 동굴처럼 파인 현무암 주상절리와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고 쏟아지는 물소리가 경쾌하면서도 시원스럽다. 


선녀탕.

데크 길을 따라 폭포 뒤로 돌아서면 이름 그대로 선녀들이 목욕했다는 선녀탕이 나온다. 선녀탕은 현재의 재인폭포를 구성하는 현무암 주상절리 중에서 폭포 상류에 위치하며, 풍화와 침식이 빨리 진행돼 만들어진 소다. 즉, 선녀탕은 재인폭포 상부에서 물리적으로 가장 약한 곳이 침식돼 생긴 폭포호다. 현재의 선녀탕은 작지만 재인폭포 주상절리가 오랜 세월 얼고 녹기를 반복 침식해 붕괴되면 미래의 재인폭포가 형성될 곳이다. 


운산리계곡.

재인폭포에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인근 마을에 금실 좋기로 소문난 줄을 타는 재인 남편과 미인 아내가 살았는데, 마을 원님은 예쁜 아내에게 흑심을 품고 남편에게 재인폭포에서 줄을 타라는 명을 내린다. 줄을 타던 남편은 원님이 줄을 끊어버려 폭포 아래로 떨어져 죽었고, 원님의 수청을 들게 된 아내는 원님의 코를 물어버리고 자결한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이 마을을 ‘코문리’로 부르게 됐고, 현재의 ‘고문리’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또 다른 이야기는 폭포 아래에서 놀며 자신의 재주를 자랑하던 재인이 사람들과 내기를 했다. “양쪽 절벽에 외줄을 묶어 내가 능히 지나갈 수 있소” 사람들이 믿지 못하겠다며 자신의 아내를 내기에 걸었다. 재인이 쾌재를 부르며, 호기롭게 줄을 타자 아내를 빼앗기게 된 사람들이 줄을 끊어버려 흑심을 품었던 재인은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후로 이 폭포를 ‘재인폭포’라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다. 


재인폭포 출렁다리.

슬픈 전설을 뒤로하고 다시 운산리전망대로 향한다. 이어지는 흙길을 계속 걸었다. 공사가 끝났는지 진행 중인지 모를 출렁다리는 홀로 출렁거린다. 출렁다리 밑을 지나 운산전망대에 오른다. 굽이치는 한탄강 협곡의 풍광이 너무나 멋지다. 주변에는 운산리캠핑장이 있다. 옆으로 규모가 있는 운산리자연생태공원은 무언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려고 애를 쓰는 것 같다. 생태공원 어느 쪽에서는 황조롱이·붉은배새매·수리부엉이 등 맹금류들이 세상을 응시하며, 노려보는 것 같다. 


영평향교유허비.

한탄강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영평향교 터를 찾아간다. 영평리(永平里)는 한때 포천 북부지역의 중심지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읍내면 대사리·광정리 전역과 읍내면 내상동·내하동 각 일부를 병합해 ‘영평리’라고 하고, 포천군 영중면에 편입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38선 이북 지역인 영평리 전역이 한국전쟁 때 실지 회복해 포천군이 됐다가 포천군이 도농 복합 시로 승격하면서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가 됐다. 

 

영평향교(永平鄕校)는 조선 시대 영평군(현재 포천시 북부 지역)에 소재했던 향교로 1938년 철폐돼 현재 터만 남았다. 향교는 조선시대 공립학교로 지역 유생들의 강학공간으로 영평지역 내 많은 유생들은 영평향교에서 수학했다. 영평향교는 1914년 포천과 영평이 최종적으로 통합된 이후 일제 강점기인 1938년 강제로 철폐됐으며, 2011년 영평향교 터에 유허비를 세워놓았다. 

 

영평초등학교(폐교).

영평향교 터는 1910년에 개교한 영평초등학교가 차지했지만, 2010년 개교 100주년 기념탑만 세워 놓고, 농촌인구의 절벽으로 폐교됐다. 그 옆으로는 포천시 향토유적(제39호)으로 지정된 군수들의 선정을 기린 ‘영평리선정비(永平里善政碑)’가 있다. 1919년 3·1 만세 운동 때 당시 영평면 주민 1천여명이 시위를 벌여 영평면사무소를 습격했다고 한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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