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양산팔경 하나로 꼽히는 ‘임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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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양산팔경 하나로 꼽히는 ‘임경대’ 낙동강 천 삼백리길을 따라(42)
  • 기사등록 2023-02-05 09:09:14
  • 기사수정 2023-12-24 08: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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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이른 새벽에 양산으로 내려와 토막잠을 자고 토곡산(土谷山, 855m)자락을 따라 양산시 원동(院洞)으로 이동한다.


토곡산은 능선과 능선으로 이어지는 비탈의 경사가 심해 부산 근교의 3대 악산(惡山)으로 꼽힌다. 산자락 중간 능선에 자리 잡은 전망대에서 강 건너로 바라보이는 금동산(琴洞山, 463m)의 근육질 능선이 낙동강에 생명의 줄을 대어 물 밑으로 이어진 하중도(河中島)가 토곡산과의 정기(精氣)를 이어 준다.


원동삼거리에서 원동천 지하보도를 따라 강변으로 내려간다. 원동은 마을 자체가 산으로 둘러싸여 ‘산을 굽이굽이 돌아서 넘어와야 하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처럼 낙동강의 봄기운이 굽이굽이 산으로 올라오면, 겨울보다는 봄에 각광을 받는 지역이다. 매년 3월이면 매화꽃 향기가 영포마을에서 원동천(院洞川)을 타고 낙동강으로 내려와 만발해 매화축제가 열리고, 화재들녘에서 생산되는 당도 높고 육질 좋은 딸기는 멋과 맛을 함께 즐긴다.


그 무덥던 여름 내내 잎이 무성했던 미루나무도 가을바람 불어오자 잎을 떨구어 맑은 겨울하늘로 키를 높이 세우고, 밤새 쌓였던 추억들은 경부선 상행선을 타고 화재천을 건너 북으로 올라간다.


화재들녘을 적시는 화재천(花濟川)은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토곡산에서 발원해 낙동강(洛東江)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총 길이는 6.2km로 비교적 작은 하천이지만 낙동강상수원 수질개선을 위해 하천유역순찰과 오염물질단속이 강화된 지역이다.


화재천 옆에는 화제석교비(花濟石橋碑)가 있다. 이 비는 부산에서 한양에 이르는 영남대로인 황산도(黃山道) 가운데 양산 화재천에 있던 다리로, 원래 토교(土橋)였던 다리를 석교(石橋)로 고쳐 세우면서 이를 기념해 세운 비석이다. 비문(碑文)에는 ‘화재천을 건너기 위한 토교가 잦은 수해로 유실되자 많은 사람들이 큰 돌을 모아 홍에석교(虹霓石橋)를 완성하였다.’라고 적혀 있고, 다리의 이름과 위치, 세우게 된 내력과 당시 감독한 관리의 이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영남대로의 중요한 길목이었음을 알려 주는 중요한 사료(史料)다.


                                    ▲화재석교비.


이 홍예석교가 있었던 이 길은 원덕취수장에서 물금취수장까지 연결되는 옛 ‘황산강베랑길’이다. ‘황산강(黃山江)’은 삼국시대 낙동강이 지나는 양산구간의 옛 이름이며 ‘베랑’은 ‘벼랑’의 지역 사투리다. 이 구간은 조선시대 ‘영남대로 중 황산잔도’ 구간으로 사람의 왕래가 잦았다. 1900년대 초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철길에 편입돼 완전히 닫혀버렸으나, 최근에 4대강사업으로 자전거길이 데크로 만들어져 그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게 됐다.


또한 이 지역은 요산 김정한(樂山 金廷漢, 1908년∼1996)이 1969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수라도(修羅道)’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배경으로 낙동강 하류 어느 시골양반 집안의 수난사를 그린 이야기로 한 집안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우리민족의 근대사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속의 공간과 실제공간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이 일대는 김정한의 작품 중에 가장 명확하게 현존하는 문학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황산강베랑길을 지날 때 경파대를 지나친다. 경파대(鏡波坮)는 조선 고종 때 선비인 정임교(丁壬敎)가 향토의 사우(士友)들과 시를 서로 주고받으며 수창(酬唱)하던 경승지(景勝地)다. 정임교는 이황(李滉)의 문인인 고암(顧庵) 정윤희(丁胤禧, 1531∼1589)의 후손으로 호는 매촌(梅村)이며, 효행으로 이름난 인물이다. 정임교는 양산향교의 문묘 중흥에 일조해 유학의 창성(昌盛)을 도모했다. ‘경파대’라는 명칭은 당시(唐詩) ‘채련곡(採蓮曲)’에 “거울 같은 물은 바람이 없어도 절로 물결 인다(鏡水無風也自波)”에서 따왔다.


경파대자리를 한참 지나면 ‘행동래부사정공현덕영세불망비(行東萊府使鄭公顯德永世不忘碑)’ 안내판이 나온다. 이 비석은 1871년(고종8)에 조성한 비석으로 정현덕의 덕을 칭송하기 위해 세웠다. 정현덕(鄭顯德, 1810년∼1883년)은 조선말기 문신으로 흥선대원군의 심복이다. 동래부사와 형조참의를 지냈으며, 문장가 서예가 외교가로서도 이름이 높았다. 본관은 초계(草溪), 호는 우전(雨田)이다. 대원군이 실각된 후에는 파면돼 원악도(遠惡島)로 유배된 뒤 그 곳에서 사사(賜死)됐다.


                               ▲임경대 안내판.


낙동강변 오봉산(五峰山, 533m) 7부 능선에 있는 신라시대 후기 때 지은 정자 ‘임경대(臨鏡臺)’는 양산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낙동강 서쪽 절벽 위에 자리해 주변 풍광이 빼어나다.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 이 일대의 수려한 경관에 반해 임경대 주변 암봉 벽에 시를 지어 새겼다고 한다. 오래돼 조감은 어렵다고 하며, 시만 전할 뿐이다. 최치원은 신라 때 최고의 문장가며, 경주최씨 시조다.


                           ▲임경대가 있는 오봉산.


고종 때 정임교가 만년에 양산에 와서 임경대에 올랐다가 강변 아래쪽에 위치한 한 암벽의 누대를 차지하고, 벗들과 함께 시를 읊었던 곳이 경파대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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