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개비리길’은 누렁이 다닌 절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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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개비리길’은 누렁이 다닌 절벽길 낙동강 천 삼백리길을 따라(35)
  • 기사등록 2023-01-14 09:29:19
  • 기사수정 2023-12-23 23: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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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점심식사 후 오전 걷기가 끝난 칠현리 칠곡천 합류지점에서 오후 일정을 시작해 ‘개비리길’로 들어선다.


                         ▲영아지마을 앞 개비리길 입구.


개비리길은 용산마을에서 영아지마을 창아지나루터까지 절벽 위로 아슬아슬하게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낙동강변의 벼랑길로 자연이 만들어 준 길이었다. 지금은 잘 정비돼 낙동강의 눈부신 풍광을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걸을 수 있다.


개비리길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다. 영아지마을에 사는 황씨 할아버지의 개 누렁이가 11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그 중에 한 마리가 유독 눈에 띄게 조그마한 조리쟁이(못나고 작아 볼품이 없다는 이곳 사투리)였다. 10개의 젖꼭지를 가진 어미젖을 차지하지 못한 조리쟁이는 다른 열 마리가 남지시장에 팔려 갈 때 집에 남겨 놓았는데, 등[山]넘어 시집간 딸이 친정에 왔다가면서 조리쟁이를 키우겠다고 시집으로 데려갔다.


어느 날 딸은 친정의 누렁이가 조리쟁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후에 살펴보니 누렁이는 하루에 꼭 한 번씩 폭설이 내려도 조리쟁이에게 젖을 물리고 갔다. 마을사람들이 누렁이가 다니는 길을 확인한 결과, 누렁이는 눈이 쌓이지 못하는 낙동강 절벽길을 따라다니는 것을 보고 개(누렁이)가 다닌 비리(절벽)길로 부르게 됐고, 사람들도 이 길을 이용해 산을 넘는 수고를 덜었다. 한편으로는 ‘개’는 강가를, ‘비리’는 벼랑이라는 말로 ‘강가 절벽을 따라 난 길’을 의미한다.


                                     ▲개비리길.


영아지마을 입구를 지나 개비리 쉼터에서 숨을 고르고 벼랑을 따라 잘 정비된 길로 접어들어 약 1㎞쯤 들어가면 울창한 대나무 숲이 나온다. 이 대나무 숲은 여양진씨(驪陽陣氏) 묘사(墓祀)를 지내던 회락재(回洛齋)라는 재실이 있던 곳이다. 회락(回洛)은 ‘낙동강물이 모였다가 돌아서 흘러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원래 이곳에 재실과 관리인이 살림하는 집이 있었다. 위토답(位土畓)이 있던 자리였는데, 건물들이 빈집이 되어 허물어지고 대나무밭이 됐다.


건축연도를 정확하게 모르는 회락재는 목조 단층 와가(瓦家)였었다. 일제강점기 때 신작로(新作路)가 생기면서 개비리길은 인적이 끊어지고 방치돼 오다가 2015년도 4대강사업으로 ‘낙동강남지개비리길’이 알려지면서 재실은 귀곡산장(鬼哭山莊)이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바람 불고 흐린 날 댓잎 서걱거리는 소리는 대장부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고 한다. 남지개비리길 조성사업이 시작되면서 회락재 복구가 어려워지자 건물을 철거하고, 대나무 숲을 자연친화적으로 정비해 죽림쉼터로 새롭게 태어났다.


                                      ▲팽나무 연리목.


대나무밭 안에는 수령 100년이 넘은 팽나무 두 그루가 부둥켜안은 연리목(連理木)은 ‘간절하게 기도하면 남녀 간의 사랑이 이뤄지고, 자손을 기원하면 자손도 얻는다고 한다. 가난한 자가 재물을 기원하면 부자가 되고, 환중(患中)의 부모님 무병장수를 빌면 소원을 이뤄 효자가 된다는 영험(靈驗) 있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나, 지금은 엣 전설을 안은 채 세월의 풍상과 함께 회락재 터 앞에 서 있다.


대밭에 들어와서는 ‘모든 사심을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금천교(禁川橋)를 지나서 동천교(洞天橋)를 건너 회락동천(回洛洞天)으로 들어가라는 다리’가 있다. 동천(洞天)은 ‘신선과 선녀가 사는 신성한 곳’을 가리킨다.


여양진씨 가문에서 시집보낸 감나무가 감을 주렁주렁 매단 채 서 있고, 관직(官職)에 등관(登官)시킨다는 ‘층층나무’가 감나무 앞에 있다. 옆에는 2018년에 남지읍 동포마을에서 수로공사 중 발견한 봉황(鳳凰)의 알처럼 크기가 오척(五尺)이 넘는 ‘옥관자(玉貫子)바위’가 자리한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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