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껌 대용이었던 추억의 식물 ‘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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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껌 대용이었던 추억의 식물 ‘삘기’ 낙동강 천 삼백리길을 따라(34)
  • 기사등록 2023-01-08 06:30:19
  • 기사수정 2023-12-23 21: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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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어제 저녁 서울을 출발했으나, 지난번 종점인 적포교하류의 낙동강 아침은 조금 쌀쌀한 날씨에 찬란하게만 보인다.


                               ▲달팽이의 대장정.


콩알만 한 달팽이들도 햇볕을 쬐러 나와 콘크리트바닥을 기어가는데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인간이 편하자고 만든 길이지만 달팽이에게는 생사가 넘나드는 갈림길이다.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나그네의 발걸음 또한 혹시 발에 밟힐까봐 여간 조심스럽다. 옛날 요령이 달린 지팡이를 짚고 다니던 고승의 마음으로 ‘길이 멀고 고달파도 가야할 곳이 있거든 걸음 멈추지 말고 끝까지 가길’ 달팽이에게 바랄 뿐이다.


억새와 갈대는 꽃을 피워 가을물 들이고, 춘삼월 보릿고개가 시작되면 돋아나던 삘기는 가을하늘에 하늘거린다. 삘기는 ‘띠 풀의 새순’으로 지역에 따라 ‘삐비’라고 부르기도 했던 추억의 식물이다.


                                     ▲낙동강 변의 삘기.


삘기를 뽑아서 씹으면 껌처럼 질겅질겅하게 씹히며 달착지근한 물이 나온다. 그래서 옛날에 껌 대용으로 어린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배가고프면 이를 씹어 허기를 달랬다.


발을 디딘 곳은 유명한 우포늪이 있는 창녕군 유어면이다. 유어면(遊漁面)은 옛 가락국의 일부로써 1914년 일제강점기 때 유장면과 어촌면을 통합해 유어면이 됐다. 과거엔 낙동강 변에 위치해 상습 수몰지역이었다. 1978년 전천후 종합개발로 이를 해결하고, 지금은 옥토로 바뀌었다. 유어면에는 여덟 가지 즐거움을 주는 ‘팔락정(八樂亭)’이라는 정자가 있으나, 들 건너 팔락정까지 가지는 못했다.


팔락(八樂)은 첫째가 맹호도강(猛虎渡江, 정자 앞의 낙동강 건너 지형이 범이 건너오는 듯 한 형세를 보는 즐거움)이요, 둘째로 원포귀범(遠浦歸帆, 강 멀리서 범선이 포구로 들어오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다. 셋째로 평사낙안(平沙落雁, 넓은 강모래사장에 기러기가 앉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고, 넷째로 북지홍련(北池紅蓮, 정자 북쪽의 팔락 호수에 피어 있는 홍련을 보는 즐거움)이다.


다섯째는 역수십리(逆水十里, 정자 앞개울의 물이 강의흐름과 반대로 십리를 흐르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고, 여섯째로 전정괴수(前庭槐樹 앞뜰의 회화나무를 보는 즐거움)이다. 일곱째는 후원오죽(後園烏竹, 정자의 후원에 있는 오죽을 보는 즐거움)이고, 여덟째는 서교황맥(西郊黃麥, 정자 앞 서쪽들에 보리가 누렇게 익은 풍경을 보는 즐거움)이다.


팔락(八樂)을 즐길까 하여 소소한 가을바람에 콧노래를 부르며 가던 길이 풀밭에 잠기었는지 보이지 않아 강가로 내려간다. 강 가장자리에는 갯벌이 형성돼 있다. 아마 4대강 공사로 생긴 보(洑)의 수문을 열어 물이 빠진 자리에 침전물이 퇴적됐다가 나타난 것 같은데, 가뭄에 물 빠진 저수지 바닥의 거북등 같다. ‘물은 흘러야 되고, 정체되면 변하는 것’처럼 물을 가둬 놓아 생긴 흔적이다. 물의 흐름이 느려서인지 색깔도 예전만 못한 것 같다.


강물을 따라 걷다가 그마져 길이 막혀 풀 섶을 헤치고 나가면서 길을 만들어 나간다. 수변식물로 바닥이 덮여 보이지 않는 불규칙한 길을 걷다가 덩굴식물이 올가미가 되어 발목을 휘감기도 하고, 제 멋대로 숨어있는 돌들은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몇 번의 오르막 미끄럼에서 뒤로 밀리기도 하면서 겨우 길을 찾아 위로 올라온 곳은 유어면 진창리에 있는 광산양수장이다.


구멍 뚫린 철조망을 개구멍 통과하듯 빠져나와 언덕을 넘어 감이 익어가는 큰소재미마을을 지나 효암재 앞을 지난다. 효암재(孝巖齋)는 창녕성씨 시랑공파(侍郞公派) 파조(派祖)인 성준(成俊, 1436∼1504)의 제사건물이다. 성준은 연산군 때 영의정을 지내다가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자 폐비윤씨(廢妃尹氏)의 사사(賜死)에 관여한 죄로 직산(稷山)에 유배됐다가 배소(配所)에서 잡혀와 교살당했다. 중종(中宗) 때 복관(復官)됐다.


                                       ▲효암재.


남창천이 흐르는 79호국도 광산교에서 고운봉(240.7m) 자락을 돌아 박진교 입구로 이동한다. 박진교는 의령군 부림면과 창녕군 남지읍을 연결하는 다리로 옛날에는 나루터가 있던 곳이다.


박진교에서 상류로 1㎞쯤 올라가면 고운봉 자락에 박진전쟁기념관이 있다. 박진전쟁기념관은 6·25 한국전쟁을 주제로 2004년 6월 25일 개관한 전쟁기념전시관으로 고운봉 옆 산인 고랑산(209.9m)과 박진나루에서 발굴한 유물과 낙동강 최후 방어선 사수 등을 주제로 한 내용들을 전시하고 있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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