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선비나무·학자수로 불리는 회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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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선비나무·학자수로 불리는 회화나무 낙동강 천 삼백리길을 따라(17)
  • 기사등록 2022-11-12 07:35:32
  • 기사수정 2023-12-23 21: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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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내친김에 모래로 유명한 내성천변의 선몽대로 이동한다.


                                     ▲선몽대.


명승 제19호로 지정된 선몽대(仙夢臺)는 1563년(조선 명종 18) 퇴계 이황의 종손인 우암 이열도(遇巖 李閱道: 1538∼1591)가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노니는 꿈을 꾸고 난 후 1563년에 지은 정자’다. 앞쪽으로는 낙동강의 지류인 평사낙안형(平沙落雁形)의 내성천(乃城川) 백사장이 내려 보이고, 뒤쪽으로는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어서 주변 풍광이 가히 절경이다.


선몽대 건물 중앙에는 유선몽대(儒僊梦臺)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꿈에 신선(神仙)을 보는 곳’이 아니라 ‘꿈에 선비가 춤추는 곳’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신선이나 선비가 꿈속에 춤을 춘다는 것은 모두 신선에 해당할 것이다.


선몽대 안에는 이황의 친필 편액과 정탁, 류성룡, 김상헌, 이덕형, 김성일 등의 친필시가 새겨진 목판이 걸려 있다. 매년 정월 보름에 이곳에서 동제(洞祭)가 열리며, 예천군 및 진성이씨 백송파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몇 군데 돌아보고 바삐 안동시 풍천면 도양리 부용대 입구인 광덕교 아래부터 낙동강 걷기를 시작해 잔잔한 수면을 바라보며 예천군 지보면으로 접어든다.


지보면(知保面)은 북부가 나부산(羅浮山, 330m)을 비롯해 대부분 산지로 이뤄져 있고, 나머지 지역은 연화산(連花山, 267m) 등의 낮은 산지와 구릉 및 평탄지로 구성돼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다. 고추·마늘 등의 채소류와 특용작물인 깨가 산출되고, 사과·감 등의 과수재배가 성하다.


오후에는 풍지교부터 걷기를 시작한다. 예천의 풍양과 지보의 이름 첫 자를 따서 풍지교를 만들었는데, 오랜 세월 사람의 발에 밟히고 자동차에 눌려 이제는 사람들만 다닌다. 옆에 새로 만든 지인교는 보라는 듯이 자동차가 쌩쌩 달린다. 강둑을 따라 어제부터 내내 따라온 금계국도 발걸음에 맞춰 살랑거린다. 멀리 예천 삼수정 회화나무가 쉬어가라 손짓한다.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청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인 삼수정(三樹亭)은 강물이 굽이도는 강안(江岸) 마을 등성이에 북향으로 배치돼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다. 정면 3칸·옆면 2칸이며,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갖추고 있다. 1420년대에 처음으로 건립됐으며, 1636년에 없앴다가 다시 중건했다. 1829년에는 경상감사 정기선(鄭基善)이 다시 지었다. 자리도 3번 옮겼지만 1909년 원래의 위치로 환원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86호(2005년 6월 20일)로 지정됐다.


회화나무는 한자로는 괴화(槐花)나무로 표기하는데, 발음은 중국발음과 유사한 회화로 부르게 됐다. 홰나무를 뜻하는 한자인 ‘괴’(槐)자는 귀신과 나무를 합쳐서 만든 글자다. 회화나무가 사람이 사는 집에 많이 심은 것은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궁궐의 마당이나 출입구 부근에 많이 심었다. 서원이나 향교 등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당에도 회화나무를 심어 악귀를 물리치는 염원을 했다고 전해진다.


                            ▲예천 삼수정 회화나무.


예천 삼수정 회화나무는 수령 300년 이상이 됐다. 영문명으로는 ‘차이니즈 스칼라 트리(Chinese scholar tree)’라고 한다. 그래서 회화나무는 흔히 ‘선비나무 또는 학자수(學者樹)’라고도 부른다. 이 나무의 기상이 학자의 기상처럼 자유롭게 뻗었을 뿐 아니라 주나라 사(士)의 무덤에 이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유교 관련 유적지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회화나무를 볼 수 있다.


삼수정을 지나면 낙동강 쌍절암 생태숲길에 접어든다. 쌍절암은 임진왜란 당시 왜병들이 이 곳 동래정씨 집성촌에 침입하여 따라오는 왜병을 피해 두 여성이 두 손을 맞잡고 낙동강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정절을 지킨 곳이다. 당시 조정에서는 이 사실을 듣고 왕명으로 정려(旌閭)를 짓게 하고, 비문과 쌍절각(雙節閣)을 세워 정절을 기리고 있다.


데크로드로 연결된 쌍절암 생태숲길은 낙동강에 접한 단애(斷崖)로 ‘코끼리바위’, ‘멧돼지바위’ 등 기암들이 즐비하다. 대동정(大同亭) 같은 쉼터도 만들어 놓아 산책하며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을 전망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낙동강 해돋이가 환상적이라는 조그만 암자인 관세암이 있지만 시간이 없어 찾지 못했다.


생태숲길이 끝나는 지점에 비룡교가 나온다. 비룡교는 예천 삼강주막에서 회룡포 전망대로 이어지는 길이 280m, 폭 5m의 사람만 다닐 수 있는 교량으로 2012년 8월에 준공했다고 한다. 이 다리만 건너면 내성천 회룡포(回龍浦)가 바로인데, 건너지 못하고 바로 도착한 곳은 삼강절경인 삼강나루터다.


                                      ▲삼강주막.


삼강절경(三江絶景)은 내성천과 금천이 낙동강과 만나 삼강이 화합해 흘러가는 곳으로 낙동강의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과 수령 500년이 넘은 회화나무가 있어 주변의 뛰어난 자연경관과 절경을 이룬다. 삼강나루는 문경의 주흘산맥과 안동의 학가산맥, 대구 팔공산의 끝자락이 만나며, 내성천과 금천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곳에 위치해 수륙교통의 요충지였다.


삼강나루는 서울로 장사하러 가는 배들이 낙동강을 오르내릴 때나 선비나 장꾼들이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갈 때, 반드시 거쳐 가던 길목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강을 이어주는 나룻배 두 척이 오갔었다. 큰 배는 소와 물류를 수송했고, 작은 배는 15명 가량의 사람을 태워 건넜다. 우리도 낙동강 네 번째 여정을 마치고 삼강나루를 건너간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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