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골지천, 문래리 옛 이름 ‘골지리’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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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골지천, 문래리 옛 이름 ‘골지리’서 유래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7)
  • 기사등록 2022-01-01 07: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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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여울소리를 들으며 은치교를 건너면 정선군 임계면 문래리다. 임계면(臨溪面)은 정선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이다.



▲문래리의 골지천.


원래 강릉군에 속했다가 1906년(광무10)에 정선군에 편입됐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는 직현리(稷峴里)·임계리·송계리(松溪里)·낙천리(樂川里)·봉산리(蓬山里)·용산리(龍山里)·문래리(文來里)·덕암리(德岩里)·고양리(高陽里)·반천리(盤川里)·봉정리(鳳亭里)의 11개 동리가 속했다. 그 중 낙천리는 미락리(美樂里)와 혈천리(穴川里)에서 한 글자씩 따와 만든 지명이다.



문래리(文來里)의 원래 이름은 골지리(骨只里)였다. ‘골지리’의 뜻은 ‘뼈만 남았다’는 의미가 담겨있고, ‘골치 아프다’ 또는 ‘꼴지’라는 부정적 의미의 어감으로 주민들이 꺼려왔다. 따라서 정선군은 주민들의 자긍심과 역사성 회복을 위해 2009년 11월 1일 주민투표 100%찬성으로 문래리로 변경했다. 그리고 골지천은 이 골지리(骨只里)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원래 골지리는 고기원(高基員)과 문래리(文來里) 또는 고계리(高溪里)로 정선의 옛 지명에 나와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골지리가 됐다.



골지천을 이루는 원류부의 하나는 두타산 남쪽 댓재(竹峙)에서 발원한 번천(番川)이고, 다른 하나는 검룡소에서 발원한 물이다. 이 두 하천이 하장면 숙암리의 광동호에서 만나 다시 출발한 물은 고적대(高積臺, 1354m)에서 발원한 하천을 삼척군 하장면 토산리에서 받아들여 정선군 임계면 문래리로 들어가게 된다.


골지천이 지도에 처음 표기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다. 임계면 골지리가 문래리로 이름이 바뀐 것처럼 골지천도 역사와 문화가 스며있는 새로운 이름으로 바꿔주는 것이 일제청산(日帝淸算)의 작은 시발점이 될 것 같다.



▲효자각(좌)과 열녀각(우).


문래리에는 특이하게도 모자(母子)가 열녀와 효자가 되어 정려(旌閭)를 받은 ‘강릉김씨 열녀각과 정선 함재환 효자각’이 나란히 있다. 효자각(孝子閣)은 함재환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다.


함재환은 가난한 가정에 아버지가 방탕한 생활로 형편이 어려워지자 어려서부터 강릉을 왕래하며 날품팔이 행상(行商)을 하며 부모를 봉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3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정성껏 묘를 살피었다. 비각은 마을 주민들이 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936년에 건립했으며, 1991년에 보수했다.




▲강릉최씨열녀정려비.



열녀각(烈女閣)은 함병태의 부인 강릉최씨(江陵崔氏)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강릉최씨는 함병태의 부인이자 함재환의 어머니로, 시부모님이 병환으로 자리에 누워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딸기를 구하려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결국 산속을 헤매다 탈진으로 쓰러지자 그 효심에 감동한 호랑이가 집까지 물어다 주었다고 한다. 1955년에 비각을 세웠으며, 1992년에 보수했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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