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지난달 30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주최하는 공공기관 지배구조혁신방안 공청회가 파행을 겪었다.
한국노총 산하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공공노련)의 노조원 4∼50여명이 공청회장을 점거하고 물리력을 앞세워 행사진행을 저지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행사는 당초 예정보다 2시간 이상 지연된 후에야 겨우 시작됐다.
공공노련이 공청회를 저지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정작 혁신방안의 내용보다는 형식이나 절차였다. KDI가 이날 발표하는 혁신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노조측과 사전에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마련됐다는 주장이다.
실제 혁신방안의 내용 중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에 대한 질문에 공공노련은 "자료를 늦게 입수하여 아직 내용파악을 못했다"면서 "혁신방안에 대한 공공노련의 입장은 나중에 정할 예정이다"라는 등 내용보다 형식에 더욱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노조 크게 반대할 내용도 없어
그러나 사실 이번의 공공기관 지배구조 혁신방안은 노조의 이해관계가 걸린 민영화나 구조조정, 노사관계 등이 아닌 경영진의 임명 및 감독체계 등 내외부 지배구조 문제를 다루고 있어 노조가 크게 반대할 내용은 없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중론이다.
더구나 이날 KDI가 공청회에서 발표하는 내용은 아직 정부부처의 의견수렴도 거치지 않은 연구진의 제안에 불과한데 연구진에게 노조와 협의를 거쳐 방안을 만들라고 하는 것은 지나쳤다는 지적이다.
기획예산처도 이 방안은 논의의 출발점이며 공청회 후에 노조를 비롯한 정부부처, 관계 공공기관과 공식적인 의견수렴절차를 거쳐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지만 공공노련은 "못 믿겠다"며 막무가내로 공청회를 저지했다.
방만경영·도덕적 해이 '단골메뉴'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방만경영이나 도덕적 해이 문제는 공공기관이 거론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원인은 간단하다. 공공기관이 주인인 국민을 무시하고 노조나 경영진의 기관이기주의에 따라 운영된다는 인식이 일반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혁신방안의 내용은 살펴보지 않은 채, 혹시나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내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무조건 공청회를 저지하는 노조의 모습을 보면서 공기업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노조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도를 넘어 도적적 해이(Mob Hazard)에 이르렀다"는 한 토론자의 걱정 섞인 말이 여운을 남긴다.
(글 김용진 기획예산처 공공혁신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