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성 기자
"자연을 화폭에 담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는 모든 세상사를 다 잊고 그림 그리기에만 빠져들게 됩니다"
자연주의 화풍을 지향하는 여류 서양화가 이부경(45 사진) 화백의 말이다.
자연을 스승 삼아 그림을 그린다는 이 화백의 작품들은 실제로 아주 사실적인 묘사로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 느낌이다.
이같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노력에는 엄청난 시간 할애는 물론이고 경제적 투자도 만만치 않다. 연꽃이 피어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 이젤을 펼친다는 그녀는 익히 알려진 우포늪과 주남저수지는 물론이고 전남 무안 회산(回山)마을 백련지(白蓮池)와 덕진공원, 경북 청도 유등연지(劉等蓮池), 부여 궁남지(宮南池)등 전국의 연꽃단지를 두루 찾았다.
그녀가 방문한 곳 가운데 국내 연(蓮) 보급의 선구자로 알려진 혜민스님이 주지를 맡은 바 있는 충남 아산 인취사의 연꽃은 같은 백연(白蓮) 이라도 타지역과 다른 느낌이 전해진다는 설명이다.
이 화백은 "연꽃은 5방색(황·백·홍·청·흑)을 모두 담고 있다"면서 "연꽃 중에도 황연(黃蓮)의 빛은 개나리색이나 병아리색도 아니며 골드(Gold)빛도 아닌 아주 특이한 빛깔을 지닌다"면서 황연 표현의 어려움을 말했다.
화가들 사이에서 잘 사용하길 꺼리는 칼라가 녹색이다. 녹색은 명암에 따라 엄청난 칼라로 다시 표현되는데 이를 적절히 활용해 표현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주의 화가인 그녀는 녹색을 잘 쓰는 화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중학교 은사인 이숙자 교수(現고려대 한국화)에게서 영향을 받아 중학교 특별활동시간에 그림에 대한 열정을 키운 그녀는 추계예대와 건국대 교육대학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15년전부터 본격적으로 연(蓮)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그림을 처음 대하는 미술인 상당수는 "그림만 보고는 색과 터치가 강해 남성 작가의 작품으로 이해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이 화백은 "제 그림을 자세히 살피면 전반적인 분위기는 여성스럽다"면서 웃음 짓는다.
미술평론가 신항섭씨는 "이부경 작가의 연꽃그림은 사실성이 넘쳐난다"면서 ""특히 수채물감이 갖는 투명성을 살려 실제 연꽃보다도 생생한 이미지를 전달한다"고 평했다.
이 화백은 "여류화가의 작품이 꽃을 소재로 하면 작가와 작품을 비슷하게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간혹 제가 그린 연꽃을 저 자신과 비교하면 매우 당혹스러움을 느낀다"면서 "연꽃의 꽃말은 백련은 청정(淸淨)이며 기타 번영, 장수, 다산 등 다양하게 알려지는데 흔히 신성한 '군자'로 일컬어지는 만큼 어떻게 감히 제가 연꽃에 비교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손사레를 쳤다.
이 화백은 "개인적으로 연꽃은 그 어떤 화려한 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을 준다"면서 "연꽃에 빠져 그림을 그린 뒤 다 그려놓고 나면 항상 마지막 사인이 제일 어렵다"고 토로했다. 즉, 그림을 그린 뒤에는 늘 부족한 것 같고 어딘지 모르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설명이다.
그녀는 지난 8일부터 수생식물 특화단지인 양수리 세미원(洗美苑) 온실에서 '강가의 향연'이라는 주제로 황연(黃蓮), 백연(白蓮), 홍연(紅蓮) 등 다양한 연꽃과 연밭 주변의 정치를 담은 작품들로 테마 개인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오는 22일까지 열린다.
이 화백은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이면서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하는 만큼 그림을 그리는 과정부터 전시회에 내걸 작품을 정하는 것 모두 어려운 일"이라며 "기자가 기사로 말하듯이 화가는 그림으로 말해야 하는 만큼 무거운 책무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다음전시회를 이르면 2년 뒤 계절별로 변하는 연의 모습을 담은 '연의 사계(四季)'를 표현하는 테마전시회로 가질 예정이다.
황연(黃蓮)을 소재로 그린 '초연한 자태'(사진 위), '강가의 향연' 이부경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