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이승호 책임연구원(한국종합환경연구소)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복잡한 머리를 정리 정돈해주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회색 도시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의 찌든 때가 자연에서 한껏 맑아지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제주도에 다녀왔다. 문화와 역사가 숨쉬는 제주도는 관광지로써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특유의 민속 문화 등 풍부한 관광자원이 발달돼 있어 국내 관광객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고 있다. 특히 올해는 '2006 제주방문의 해'를 맞아 더욱더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관광자원 개발은 우리나라의 자연자원을 보호하면서 경제에 보탬이 되는 1석 5조쯤 되는 매우 중요한 서비스 산업이다. 그 파급효과를 따진다면 1석 100조라고 해도 모자랄 듯하다. 실제로 제주도는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하지만 제주도의 여러 관광지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관광객들이 관람문화 수준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제주도 여미지 식물원은 우리나라 종은 물론 세계에 분포하는 다양한 종(2,000여종)의 식물을 선보인다. 그 종수 만큼이나 수많은 관람객이 다녀가며 일본, 중국, 미국 등 외국 관광객도 물론 많다.
충격적인 것인 여미지식물원에 전시된 아름다운 식물을 대상으로 일부 몰지각한 관람객들이 낙서를 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한글로 돼 있어 더욱 가슴이 아팠다. 식물 수피에 적힌 글은 사람의 눈에도 결코 좋지 않지만 식물에게 매우 치명적이어서 병원균 감염으로 식물의 생을 마감시킬 수 있다.
여미지식물원 수생식물원에 있는 빅토리아아마조니카(Victoria Amazonica) 연은 관람객이 던진 동전으로 잎이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얼마나 많은 관람객들이 식물 잎이 괴롭게 동전을 던졌던지, 팻말까지 세워 관람객들의 동전 투기를 제지하고 있었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었다. 여미지식물원의 안내방송 마이크를 잡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눈을 감고 한참을 서 있다가 조용히 물러섰다.
여미지식물원의 한탄스러움을 뒤로 하고 한라산 1100고지를 올라갔다. 한라산 1100고지에는 고산습지가 있다. 1100고지습지에는 금방망이(Senecio nemorensis), 제주달구지풀(Trifolium lupinaster var. alpinum) 등의 희귀식물 106과 207종이 분포하고 있다. 이곳은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람사습지로 지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곳이다. 그 만큼 귀중한 자연자원이다. 하지만 관리상태는 동네 하천보다 더 허술했다.
습지주변에는 가스통과 산소통이 굴러다니고 수생식물대신 각종 안내판이 물위에 둥둥 떠다녔다. 이렇게 되도록 방치한 한라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와 관리·감독기관들의 행정이 원망스러웠다. 1100고지습지에 일부 탐방객이 몰지각한 행위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습지에 쓰레기를 무단투기하거나, 출입 제한구역 표시를 무시하고 출입한 흔적도 보였다.
우리의 탐방문화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뛰어난 자연유산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망가질 수밖에 없다.
탐방객들의 잘못된 인식도 문제지만 식물원과 국립공원관리를 담당하는 기관에서의 철저한 탐방문화 계도가 아쉽다. 어려서부터 철저한 환경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필요성을 새삼 느끼게 하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