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성 기자
판·검사 기업진출이 늘어나면서 ‘법경(法經)유착’이 우려되고 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한상희, 건국대 교수)가 언론보도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퇴직 판사와 검사들의 영입이 두드러진 삼성그룹과 SK그룹의 경우, 지난 ‘00년 이후부터 올 4월초까지 퇴직 판사와 검사 18명(검사 12명, 판사 6명)이 취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들 중 12명(66.7%)이 작년 이후에 영입된 것으로 확인돼, 퇴직 판·검사들의 대기업행이 지난해 이후에 가속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퇴직 판·검사가 기업의 사외이사로 영입되는 사례도 많은데, 참여연대가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홈페이지를 통해 상장 및 코스닥등록 법인의 사외이사 현황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해 5월 현재,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퇴직 판·검사(지검 검사급 및 지법 판사급은 제외)는 총 96명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이해충돌이나 법조윤리상의 문제 등 ‘법경유착’에 따른 폐해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제도적 개선 및 법조인들의 윤리적 노력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막기 위한 사회적 감시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특히 검찰의 경우에는 현행 공직자윤리법상에 이미 허점이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물론 판·검사 출신 변호사가 기업에 고용되거나 사외이사로 활동하는 것이 가져다주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와 비례해 ‘법경유착’에 따른 폐해의 발생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즉 판·검사들이 기업체에 영입되는 현상이 가속화돼 고소득이 보장되는 기업체 취업을 현직 판·검사들이 부지불식중에 생각하게 됨에 따라 판·검사로서의 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이해충돌 현상’이 발생할 소지도 높아지게 됐다. 또 퇴직 후에는 자신이 취업한 기업관련 사건의 수사나 재판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정보를 입수하는 등의 문제 발생가능성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이제 우리 사회는 정치권력에 편향되어 있던 법조계와 정치권력간의 유착이라는 문제가 아니라,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재벌기업에 법조계가 편향되는 보이는 이른바 ‘법경유착’이라는 문제를 우려할 상황을 맞고 있다.
참여연대는 “법조인들 스스로의 윤리적 노력뿐만 아니라 ‘법경유착’에 대한 사회적 감시의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관련 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며 시급히 개선할 문제로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는 퇴직 검사의 기업체 취업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법규정 자체도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공직자윤리법에서는 퇴직 공직자가 재직 시절에 수행한 업무와 연관성 있는 기업체에는 일정 기간 동안 취업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업무와의 연관성을 따지는 기준에 대해서는 대통령령과 각 기관의 규칙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판사의 경우에는 ‘공직자윤리법의 시행에 관한 대법원규칙’과 ‘공직자윤리법의 시행에 관한 헌법재판소규칙’에서 판사의 업무 특성에 맞춰 업무 연관성을 따지는 조항이 설치됐다. 즉 대법원규칙 25조5항1호에서는 ‘기업체가 당사자이거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사건의 심리와 관계되는 업무’를 한 경우, 헌법재판소규칙 19조1항1호에서는 ‘영리사기업체가 당사자이거나 당사자이었던 심판사건과 관계되는 업무’를 한 경우에는 업무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취업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검사들에게 적용되는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에는 검사의 업무특성에 맞춰 업무 연관성을 판단하고 취업을 제한하는 조항이 아예 없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가 형사고발한 삼성전자소속 노동자를 기소하고 퇴직 후 곧바로 삼성그룹에 취업한 이기옥 전 수원지검 검사의 경우에 대해 “공직자윤리법에 관련되는 규정이 없어 위법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검찰측은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이기옥 검사의 삼성전자 취업을 승인했다.
참여연대는 “공직자윤리법이 만들어진 후 취업승인을 신청한 판·검사 16명 모두 대검과 대법원으로부터 취업승인을 받았다”면서 “이기옥 검사의 사례에서처럼 과연 그 취업승인 심사가 실질적인 것인지 의심된다”며 “검사의 경우도 판사처럼 퇴직 후에 사기업체에 취업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과 관련된 구체적인 규정을 마련하고 취업승인 심사가 실질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참여연대는 또, “제도개선만으로는 교묘하게 이뤄질 수 있는 ‘법경유착’을 막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며 “퇴직 판·검사들의 영입을 늘이고 있는 기업체들의 행태와 관련, 법조인들 스스로의 윤리적 노력과 함께 법경유착 발생여부에 대한 사회적 감시와 견제가 더욱 활발해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