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귀순 기자
【에코저널=서울】환경운동연합은 지난 7월 28일, 국제 환경단체 지구의벗(Friends of the Earth, FoE)과 함께 국제 웨비나 ‘감축 없는 정의는 없다(No Justice without Reduction)’를 개최했다.
이번 웨비나는 8월 5일부터 14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5차 협상 속개 회의(INC-5.2)’를 앞두고, 협상 흐름과 주요 쟁점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8월 4일 INC-5.2가 열리는 국제연합(UN) 제네바 사무소 앞.
웨비나 개회에 앞서 환경운동연합 안재훈 사무총장은 “플라스틱 오염은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며, 인류와 생태계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생산과 소비 구조의 전환 없이는 진정한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며, 한국 정부가 주요 생산국으로서 국제 협상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새 정부가 약속한 탈플라스틱 정책 이행과 국내 플라스틱 감축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했다.
헤만타 위타나게(Hemantha Withanage) 지구의벗 인터내셔널 의장은 매년 4억3천만톤이 넘는 플라스틱이 생산되고, 이 중 약 3분의 2는 단 한 번 사용된 뒤 폐기되며, 1400만톤 이상이 해양으로 유입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플라스틱에 포함된 화학물질이 전 세계 인체와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매년 최대 100만명의 조기 사망과 연관된다는 연구결과도 소개했다. 헤만타 위타나게 의장은 “산업계의 로비가 아닌, 과학과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국제 협약을 이끌어야 한다”며, 강력하고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을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를 촉구했다.
플라스틱 생산·화학물질 통제·투명성 확보…핵심 쟁점 부상
첫 번째 세션에서는 지구의벗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리코 유리피두(Rico Euripidou, Chemicals and Campaigns Support Campaigner, FoE South Africa)가 발제자로 나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의 협상 흐름과 핵심 쟁점을 짚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열린 INC-5에서 단 하나의 조항도 합의되지 못한 점을 언급하며 협상의 난항을 지적했다.
리코는 이 협약이 인류의 건강과 환경을 동시에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특히 화학물질의 투명성 부족과 정보 비공개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플라스틱에는 1만6천 여 종의 화학물질이 포함돼 있으며, 이중 25%는 인체 건강에 유해한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국제적으로 규제되지 않고 있다”고 경고했다.
8월 4일 INC-5.2를 앞두고 생산 감축을 촉구하는 국제 시민사회 퍼포먼스.
리코는 플라스틱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생애주기 전반에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고 있으며, 재활용 시스템이 오히려 유해물질을 순환시키는 구조가 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따라서 협약에는 ▲유해물질에 대한 투명성 보장 ▲추적 시스템 구축 ▲화학물질 공개 의무화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플라스틱 생산이 온실가스 배출과 직결된다고 지적하며, “2019년 기준 플라스틱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22억4천만톤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는 “기후위기 대응에서 플라스틱 문제를 배제한 채로는 1.5도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며, 감축 목표 설정과 함께 오염자 부담 원칙에 기반한 재정 메커니즘의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플라스틱 생산 감축, 폐기물 식민주 종식 해법으로 제시
두 번째 세션에서는 지구의벗 말레이시아의 마게스와리 상가라링암(Mageswari Sangaralingam, Honorary Secretary, FoE Malaysia)이 발제자로 나서, 플라스틱 생산이 기후위기와 구조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강조했다. 그녀는 “플라스틱은 화석연료에서 시작되며, 생산·정제·중합 등 전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및 유해화학물질 배출을 수반한다”며,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5%가 플라스틱 생산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마게스는 “현재의 생산 추세가 지속된다면 파리협정의 1.5도 목표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구조적인 생산 감축과 법적 구속력 있는 제한 조치를 국제 협약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폐기물 식민주의(waste colonialism)’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고소득 국가들이 생산한 플라스틱 폐기물이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저소득 국가로 이동하며 사회적·환경적 피해를 전가하는 구조를 지적했다. 바젤협약의 취지를 상기시키고, “국제 플라스틱 협약이 국가 간 폐기물 이동에 대한 사전 동의 절차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 전략으로 생산 감축과 불필요한 1회용품 사용 중단을 꼽으며, 재사용과 리필 중심의 시스템 전환을 국제사회의 공동 과제로 제시했다.
‘오염자 책임’ 기반한 독립적 재정 메커니즘 구축 필요성 강조
세 번째 세션에서는 지구의벗 아르메니아의 고하르 코자얀(Gohar Khojayan, Communications Specialist, FoE Armenia)이 발제자로 참여해 국제 플라스틱 협약의 이행을 뒷받침할 독립적이고, 지속 가능한 재정 체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녀는 플라스틱 오염이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손실을 유발하는 복합적 글로벌 위기임을 지적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용되고 예측 가능한 자금 마련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1차 플라스틱 산업은 연간 6천억~7천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하는 반면, 사회가 부담하는 환경 및 건강 피해 비용은 연간 최대 1조 5천억 달러에 달한다”며 “피해 비용은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플라스틱 수출국과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8월 4일 국제 연합(UN) 제네바 사무소 앞.
고하르는 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한 피해가 중·저소득 국가에 집중되고 있지만, 이들 국가는 인프라와 역량이 부족해 대응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플라스틱 오염은 생산 단계에서 시작된다”며 “업스트림 조치를 통한 생산 감축과 유해물질 제거가 필수”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INC 협상에서 재정 조항(Article 11)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독립된 재정 기구 설립, ▲플라스틱 산업·석유화학 기업의 분담금 제도 ▲과거·현재의 환경·건강 피해에 대한 보상 ▲중·저소득 국가의 역량 강화·기술 지원을 위한 재원 마련 ▲투명성과 추적 가능성이 확보된 기금 운용 시스템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최국 간 입장 차이·생산 감축 둘러싼 이견 여전
다음 세션에서는 지구의벗 캐나다의 베아트리스 올리바스트리(Beatrice Olivastri, CEO, FoE Canada)가 발제자로 나서, 국제 플라스틱 협약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개최국 간 입장 차이를 설명했다. 그녀는 캐나다가 INC-4 개최국으로서 일정 부분 진전을 이뤘지만,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플라스틱 오염 문제에 대한 선도적 입장에서 다소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캐나다는 1회용 플라스틱 규제를 일부 시행하며 정책적 전환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플라스틱 생산·수입량이 크다. 생산 품목 대부분이 유해화학물질이 포함된 첨가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베아트리스는 캐나다가 참여하고 있는 플라스틱협약우호국연합(High Ambition Coalition (HAC))의 역할도 강조했다. 68개국이 참여하는 HAC는 2040년까지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목표로 생산과 소비 제한을 포함한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폐기물 관리가 아닌 생산 감축을 우선순위로 두며, 플라스틱 공급망 전반에 걸친 포괄적 접근을 지지하고 있다.
그녀는 “미국은 바이든 정부 때는 생산 저감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최근에 정부가 바뀌며 오염 저감에만 초점을 두며 입장을 후퇴했다”고 밝혔다. 중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과 인도는 생산 제한에 반대하며 재활용 중심의 느슨한 협약을 선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브라질과 일부 중남미 국가는 정의로운 전환이 보장된다면 생산 감축을 점진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베아트리스는 캐나다가 세계 4위 산유국으로, 알버타주에서 추출된 석유가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의 플라스틱 생산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공급망의 일원임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캐나다 역시 플라스틱 오염의 국제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캐나다 시민사회는 이에 대응해 플라스틱 수출입 금지, 환경오염 복원, 선주민 권리 보장, 첨가제 정보 공개 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유혜인 환경운동연합 정책변화팀 선임활동가는 대한민국의 책임과 역할을 지적했다. 그녀는 HAC 멤버이자 INC-5의 개최국인 한국이 기대되는 수준의 리더십과 야심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한국 정부의 소극적인 입장을 비판했다.
유 활동가는 한국은 전 세계 4위의 플라스틱 생산국이며,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 또한 세계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132kg(2021년 기준)에 달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러한 높은 생산·소비는 국내 환경 뿐만 아니라, 국경 너머 다른 국가와 생태계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 활동가는 “한국의 플라스틱 생산이 동남아시아 등 기후위기에 취약한 지역에서 수입한 화석연료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적 불평등 구조 위에서 운영되는 생산 체계”라고 비판했다. 이어 “폐기물 문제도 다르지 않다”며 “2016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은 동남아시아에 60만톤 이상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수출했으며, ‘재활용 가능’으로 표기됐으나 실제로는 불법 소각·매립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유 활동가는 “한국 정부가 현재까지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며, “이번 INC-5.2에서 한국 정부가 플라스틱 생산 감축 목표를 포함한 강력한 협약 문서에 대한 지지를 표명할 것”을 요구했다. 그녀는 “이번 협상은 우리 세대가 플라스틱 오염의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결정적 기회”라며, 기후 정의와 글로벌 남반구와의 연대, 그리고 인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전 생애 주기 포괄 법적 구속력 갖춘 플라스틱 협약 필요
웨비나의 마지막 세션에서는 지구의벗 인터내셔널의 샘 코사르(Sam Cossar, Economic Justice and Resisting Neoliberalism Coordinator, FoE International)가 지구의벗의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그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이 플라스틱의 전 생애주기를 포괄하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 조약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샘은 “화석연료의 추출에서부터 생산, 무역, 폐기까지 모든 단계가 협약에 포함되어야 하며, 자발적 조치는 반복적으로 실패해왔다. 이제는 강제력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다국적 기업에 대한 책임 부과 ▲플라스틱 생산 보조금 제한 ▲플라스틱 크래딧·화학물질 재활용 같은 가짜 해법의 배제 ▲산업 로비스트의 영향력을 차단할 안전 장치 마련 ▲그린워싱 방지 조치를 강조했다.
샘은 협약이 인권을 중심에 두고,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하도록 시민사회와 원주민 공동체가 협상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정보 접근성 보장과 더불어 협약 이행을 위한 충분하고 지속 가능한 재정 지원이 동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는 협약의 이행을 위해 ▲기존 오염에 대한 복원 ▲향후 피해 예방을 위한 대응 역량 구축 ▲중저소득 국가의 참여를 위한 재정적 지원 보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8월 4일 INC-5.2에 참석한 지구의벗 멤버들.마지막으로 그는 제로웨이스트 계층 구조(거절→감축→재사용→재설계→재활용)를 언급하며, “재활용은 최후의 수단일 뿐, 진정한 해결책은 생산 감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INC-5.2에서 시민사회와 함께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각 국 정부가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협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지구의 벗 활동가들은 “INC-5.2는 생산 감축을 명시한 강제력 있는 조항을 포함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며, 그 성패는 오늘부터 진행되는 회의장에서 결정된다”며 “이번 기회를 역사적 전환점으로 만들기 위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