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성 기자
【에코저널=구채구】황산(黄山), 장가계(張家界, 장자제)와 함께 중국 3대 절경으로 손꼽히는 구채구(九寨沟)로 향하는 버스에서 중국인들의 깊은 이해심과 배려를 느꼈다.
황룡구채역에서 구채구 풍경명성구로 향하는 버스.
중국 산시성(陕西省)의 성도 서안(西安, 시안)에서 출발해 쓰촨성(四川省) 성도 청두(成都)를 거쳐 황룡구채역(黄龙九寨站)에 도착한 뒤 구채구 풍경명성구(九寨沟风景名胜区, 주자이거우)로 향하는 버스에서 생긴 일이다.
버스 내부.
밤 9시 10분, 황룡구채역을 떠난 버스가 실내등을 끄고 승객들 대부분 잠을 청하면서 30분 정도 달렸을 때 한 60∼70대 중국 할머니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중간 좌석에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던 필자도 정적이 감돌던 버스 내부의 갑작스런 변화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황룡구채역.
버스에는 30명 가량의 승객이 타고 있었는데, 앞좌석에 앉은 할머니는 자신의 손녀딸과 큰 목소리로 스피커폰 영상통화를 이어 나갔다.
할머니의 즐거운 영상통화는 5분 넘게 이어졌는데, 차량을 책임지는 운전자는 물론 어떤 승객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승객 중 외국인은 우리 일행뿐이고, 모두 현지인들이었다.
황룡구채역에서 구채구로 향하는 길은 구불구불한 산을 넘어야 하는 험로다.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편도 1차선의 위험한 구간이 많아 버스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운행해야 했다.
잠을 청하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다른 승객과 할머니의 마찰을 걱정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통화가 끝날 때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다시 돌아오는가 싶더니 통화를 마친 할머니가 일행으로 보이는 다른 남자분과 5분 정도 더 목소리 톤을 젼혀 줄이지 않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래도 승객들은 묵묵하게 기다려 줬고, 이후 목적지 도착 때까지 할머니는 침묵에 동참했다.
어둠에 갇힌 산을 오르는 버스에서 생각해 봤다. 한국인들은 법과 질서, 매너를 잘 지키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한밤에 버스안에서 스피커폰 영상통화를 아무도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안북역은 공항터미널 크기다.
시안북역 터미널 내부.사실 어제는 너무 피곤한 하루였다. 전날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1천km가 넘는 장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시안북역에서 청두역까지 이동하는 고속열차.시안에서 청두까지 600~700km 거리를 4시간 동안 고속열차를 타고 움직였다. 시안북역(西安北站)에서 청두역(成都站)까지 이동한 뒤 환승열차를 1시간 정도 기다려 다시 고속열차로 2시간을 더 달려 황룡구채역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2시간 이동해 도착한 구채구 풍경명성구 숙소에서 곧바로 샤워하고 잠들기 전 본 시각은 새벽 2시였다.
청두역 내부.
청두역에서 황룡구채역까지 이동하는 고속열차.
잠들기 전 곰곰히 생각해봤다. 버스에서 전화했던 할머니에게 그 누구보다도 사랑스런 손녀딸일텐데, 아무도 행복에 겨운 그들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일을 당연시하고, 그게 상대방에 대한 배려인 줄 알기도 한다. 진정한 배려는 남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 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