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성 기자
【에코저널=히로시마】일본 히로시마 현(広島県)의 섬 몇 군데를 방문했는데, 대부분 유명 관광지였다.
부처님오신날인 15일, 널리 알려지지 않은 섬으로 들어가서 잠시라도 번잡하지 않은 조용한 분위기를 즐겨보기로 했다.
늦은 아침식사 후 전차를 타고 히로시마항(広島港)을 찾았다. 대합실에서 너무 멀지 않은 섬을 고르다보니 히로시마항 남쪽으로 약 3㎞ 떨어진 히로시마만에 있는 섬 ‘니노시마(似島)’가 눈에 띈다.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을 거 같아 오전 11시 정각에 출발하는 니노시마 승선권을 구매했다. 배로 20분 정도 걸려 섬에 도착했다.
니노시마 면적은 387만㎡(117만675평)로, 히로시마 행정구역에 속한 섬 중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섬 둘레는 16km, 도로 연장은 약 10km다. 평지는 적고, 대부분이 산지인 형태다.
섬에 도착해보니 상가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고, 마땅한 구경거리도 없다. 조용히 즐기기에 제격이었다.
섬 안내지도 표지판을 살펴보니, 섬 북쪽에 해발고도 278.1m의 아키노코후지(安芸小富士)라는 산이 있다. ‘아키(安芸)’는 서부, ‘노코후지(小富士)’는 ‘작은 후지산’으로, ‘서쪽의 작은 후지산’이라는 의미를 지닌 산이다.
산을 오르기로 하고, 방향을 잡았다. 많지 않은 주택이 형성된 골목길은 편안한 옛 정취를 느끼게 해줬다. 일부 주택은 사람이 살지 않은 지 오래돼 보였다.
주택가를 지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는데, 멋있는 대나무숲이 나온다.
많은 비가 내린 탓인지 거센 물길에 의해 등산로가 깊게 패인 상태가 이어졌다.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는 등산로는 중간에 산사태로 무너진 곳도 나타나 우회해야 했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섬 인구가 줄고 있다고 하는데, 외부 관광객도 찾지 않는 등산로라 그런지 거미줄도 많았다. 벌레도 손과 목 등 몸을 물어 수시로 손을 저어 떼어내며 산을 올라야 했다.
저질 체력에 험한 등산로까지 만나니 더 조심조심, 쉬엄쉬엄 올라가야 했다. 50분이면 정상에 도착한다는 안내문을 봤는데, 출발한 지 1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정상이 가까워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아무도 지나지 않는 조용한 산을 계속 오르던 중 갑자기 산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멧돼지가 뛰어오는 것 같은 “우당탕~”소리가 들렸다. 긴장한 상태로 잠시 발걸음을 멈췄는데, 백인 청년이 웃옷을 벗은 몸이 땀에 젖은 채 달려 내려왔다.
청년은 나를 보더니 “곤니찌와(こんにちは)!”라고 인사를 건넨다. 내가 한국인임을 밝히자,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이라고 재차 일본말을 한다.
한국어 “안녕하세요”와 “죄송합니다”를 알려준 뒤 통성명을 나눴다. 미국 위스콘신주(State of Wisconsin)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조셉(Joseph, 23)은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석사를 마치고, 취업까지 한 친형을 만나러 왔다고 한다.
위스콘신대학교 3학년(수학 전공)이라는 조셉은 “2주 전에 일본에 도착해 도쿄, 나고야, 고베 등 여러 곳을 둘러봤다”며 “일주일 후에는 대만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셉은 “멀지 않지만, 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매우 위험하다”면서 “조심해서 올라가야 한다”는 당부를 남기고 헤어졌다. 조셉은 아키노코후지 산에서 만난 유일한 사람이다.
혼자서 용감하게 여행하는 조셉과 헤어진 뒤 10여 분 지나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빨간색 철기둥 구조물이 우뚝 서 있고, “이 항공보안시설을 손상시키면 항공법 규정에 따라 처벌받는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힘들게 올라 온 아키노코후지 산 정상에서 보이는 경치는 아름다웠다. 섬 주변에는 굴 양식용 뗏목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등산은 하산이 더 위험하다”는 애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 걷기 쉬워 보이는 다른 루트로 내려 오기로 했다. 오를 때 고생을 많이 해서 좋은 길로 편하게 내려오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하산하는 길은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내려갈수록 가파르고 위험한 형세다.
TV 뉴스로 접한 러시아·우크라이나 격전지 참호와 비슷한 좁은 등산로를 힘겹게 내려와야 했다.
마사토가 덮인 바위구간이 내려오기 제일 힘들었다. 자칫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위험이 높아 매우 긴장하면서 내려왔다.
산 아래 거의 도착했을 무렵, “붕괴될 위험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나무에 걸려있다. 허탈했다. “이런 내용을 미리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천신만고 끝에 하산에 성공했는데, 다리에 너무 힘을 준 탓인지 맥이 풀렸다.
섬 주변 도로에서 만난 굴 양식에 사용하는 가리비 껍질을 손질하던 원주민 할아버지(89)는 “1895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까지 섬에 육군 제1검역소가 있었고, 히로시마 원자폭탄 폭격 이후에는 검역소가 임시 야전병원으로 이용돼 1만명 정도 피폭자들이 후송돼 온 후 차례로 죽음을 맞았다”고 말했다.
수줍게 사진촬영을 거부한 할아버지는 “러·일전쟁 때는 섬에 포로수용소도 설치돼 러시아 군인들도 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할아버지와 헤어져 섬에 난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엄청난 규모의 굴 양식장을 가까이서 마주하게 된다. 섬에는 굴 가공공장도 여러 곳 있어 굴 껍질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선착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50분, 1시간 간격의 배가 막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오후 4시 배를 타고 5시간 동안 머물던 섬을 나오면서 “쉽게 일하려고 남이 고생해서 쓴 기사를 베끼는 것은 무조건 금해야 한다, 힘들더라도 본인 노력으로 열심히 취재한 기사를 생산해야 한다. 일부러 어려운 길을 택해 당당하게 가야 한다. 쉬운 길만 찾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어느 선배의 조언을 다시 되새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