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잠시 휴식하라…‘식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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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잠시 휴식하라…‘식영정’ 영산강 물길 따라(20)
  • 기사등록 2023-09-10 09:03:30
  • 기사수정 2023-11-04 08:5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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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식영정이 있는 몽탄면 이산리(梨山里)는 영산강이 굽이도는 U자형의 움푹 파인 곳에 자리한다. 강 건너편 나주시 동강면 옥정리의 느러지전망대에서 바라보면 곡강을 따라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영산강 자전거길 따라 펼쳐지는 예쁜 수국도 인상적이라고 한다.

 

느러지전망대의 ‘느러지’는 이곳에 흐르는 영산강이 나주평야를 지날 때 강폭이 넓어져 유속이 ‘느려져’ 부른 이름 같다.

 

식영정.

곡강의 매력에 빠져 정자를 세운 이가 있으니 한호(閑好) 임연(林煉, 1589∼1648)이다. 그가 세운 식영정(息營亭)은 영산강의 대표적 굽이인 몽탄노적에 자리한 배뫼[이산(梨山)] 마을의 언덕에 세워졌다.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내부 중심에는 방이 갖춰져 있어 비교적 큰 크기가 특징인 정자다. 몽탄노적(夢灘蘆笛)은 ‘곡강을 휘돌아 흐르는 여울소리가 마치 꿈속에서 갈대가 피리가 되어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해석해 본다.

 

무안의 식영정(息營亭)은 ‘열심히 일 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라’는 뜻 같다. 정자 안쪽에는 ‘鳶飛魚躍(연비어약)’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는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뛴다’는 것으로, 만물이 저마다의 제자리를 얻고, 자연 만물이 순리대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이는 ‘시경’에 나오는 말로 세상의 모든 존재가 자연의 순리대로 각각 제자리를 얻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군왕의 덕행과 교화가 널리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안 식영정은 임연이 1630년에 무안에 입향(入鄕) 이후 강학소요처로 지은 정자로 영산강[이호(梨湖)]과 그 주변의 경관과 어울려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은 곳이다. 임연의 증손으로 역사서인 ‘동사회강(東史會綱)’을 지은 문인학자인 노촌(老村) 임상덕(林象德1683~1710)이 제현(諸賢)과 교류하는 등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의 나주임씨 강학교류 공간이었다.

 

푸조나무.1643년 임연이 지은 복거록(卜居錄)에는 정자를 짓고 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혹시 식영정에 있는 푸조나무와 팽나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푸조나무(둘레 3.2m)와 팽나무(둘레 3.4m)는 똑같이 수령이 510년이고 높이도 12m다. 모두 보호수로 지정됐다.

 

푸조나무나 팽나무는 쌍떡잎식물 쐐기풀목 느릅나무과의 낙엽교목이다. 푸조나무는 연하면서도 단단해 저울자루·절구·세공재 등 귀한 용도로 쓰이고, 팽나무는 오래전부터 우리 인간에게 신목(神木)으로 인식됐던 민족 식물이다.

 

푸조나무는 남쪽의 따뜻한 해안 및 마을 부근에서 자라며, 수직적으로는 해발 700m 이하 지대에서 자라며, 습기가 없는 땅에서는 생육이 불량하다. 보통 팽나무에 비해 엽맥(葉脈)이 잎 가장자리 끝까지 닿는 것이 특이하다.

 

팽나무.

팽나무는 우리나라 중남부지방의 온화한 마을 어귀나 중심에서 마을나무와 당산나무로 자리 잡아 전통 민속경관을 특징짓는 대표 종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성한 공간인 당집과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팽나무 열매는 새들의 먹이로 유용해 ‘생명 부양 나무’의 역할을 한다.

 

몽탄노적(夢灘蘆笛) 곡강이 감싸고 흐르는 몽탄 식영정을 나와 하류로 조금 내려오면 대치천과 약곡천이 영산강과 합류하고 그 밑에는 석정포가 있다. 대치천(大峙川)은 무안군의 마협봉(286m) 동쪽 산록 일대에서 발원해 동남쪽으로 흘러 영산강으로 합류하는 지방 하천으로 이름은 발원지의 마을 지명인 몽탄면 대치리에서 유래됐다. 약곡천(藥谷川)은 무안군 몽탄면 약곡리에서 발원해 몽강리 영산강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이다.

 

몽탄면의 ‘몽탄(夢灘)’이란 지명은 고려 왕건(王建)이 후백제를 공략하다가 현 나주 동강면으로 퇴각했으나, 영산강이 막혀 건너지 못하고 있던 중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 앞의 호수는 강이 아니라 여울[灘]이니 빨리 건너라고 해서 현재의 몽탄나루를 건너 견훤군과 싸워 대승을 거둬서 몽탄이라 부르게 됐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에 무안현 박곡면이었다가 1939년에 몽탄면으로 개칭했다.

 

몽탄면 몽강리 일원은 조선 후기부터 1970년대까지 옹기와 질그릇을 생산하던 주요 도요지로 백자와 분청사기를 만들어 왔다. 1960년대에는 마을주민 약 90여 호가 옹기생산에 참여했고, 4개의 가마와 7개의 공방이 운영됐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옹기 등은 배편으로 전국 각지에 판매됐다. 점토와 고령토를 강 건너 나주시 동강면에서 들여와 원료와 완제품이 완벽하게 유통되는 요충지가 바로 석정포나루였다.

 

농촌마을인 몽강리(夢江里)는 영산강의 풍부한 물줄기 영향으로 기름진 땅을 갖고 있다. 자연마을로 신촌, 언동, 청수동마을이 있다. 신촌마을은 질그릇의 적지라고 하여 ‘점촌(店村)’이라 불렸으나, 후에 신촌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언동마을은 따뜻한 곳이라고 ‘온동(溫洞)’이라고 불리던 것이 변음돼 언동(彦洞)이 됐다. 청수동(淸水洞)은 이곳의 물이 맑고 푸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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