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물과 씨름한 ‘요강바위’·재앙 대비 ‘남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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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물과 씨름한 ‘요강바위’·재앙 대비 ‘남근석’ 섬진강 530리를 걷다(5)
  • 기사등록 2023-06-03 08:49:54
  • 기사수정 2023-12-24 00: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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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섬진강휴게소가 있는 임실군 강진면으로 가는 삼거리를 지나 강변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오면 덕치면사무소가 나온다. 우체국 앞에는 회문산 망루가 해방 후 근대사의 격변기 질곡의 역사를 안은채 마을을 지킨다.


강 건너 물우리 마을은 비가 오면 내를 건너지 못해 근심만 쌓인다고 한다. 섶다리 같은 잠수교를 건너 달빛이 파도를 타는 월파정(月波亭) 앞에서 숨을 고르고,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진메마을로 간다.


마을 입구에는 팽나무가 마을을 지키는데 시인의 서재에 걸렸던 ‘관란헌(觀瀾軒)’이란 현판도 용도가 다 됐는지 한쪽 구석에 박혀있고, 주인도 보이지 않지만 흐르는 강물은 소리 없이 여울을 이룬다. 인간의 의도적인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섬진강은 그냥 바라만 봐도 마음이 포근하다. 마을 뒷산에는 남부군사령부가 있었던 회문산이 딱 버틴다.


                                   ▲김용택 시비.


내 발은 강 따라 바르게 걸어가는 것 같지만 지나온 자국은 뱀 같이 꼬불꼬불한 내 인생의 행적(行蹟) 같다. 강변길에는 김용택의 시비가 곳곳에 서 있어 가는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천담마을 지나 구담마을 가는 길엔 철 이른 매화가 활짝 웃으며, 반겨준다. 닥나무를 삶아 한지(韓紙)를 만들던 가마는 잡초에 휘감겨 잠을 잔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을 촬영한 당산나무들은 섬진강을 건너는 징검다리를 굽어본다.


                                     ▲요강바위.


넘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징검다리 건너며 들어선 순창군 동계면 장군목마을에는 인적이 끊겨 폭삭 주저앉은 집이 터를 지키고, 낮은 언덕을 넘어 다리 밑 강 가운데 바위틈에 요강바위가 입을 딱 벌린다. 저렇게 깊게 파인 바위는 얼마나 오랜 세월을 흐르는 물과 씨름했을까? 깊은 주름살처럼 패인 바위들이 요강바위 주변에 넓게 펼쳐진다.


임실군에서는 오원천으로 불리다가 순창군부터 섬진강은 적성강(赤城江)으로 이름이 바뀐다. 강 건너는 적성면이다. 석산리 쪽으로 내려오니 큰 바위에 ‘石門(석문)’이란 글자가 음각돼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조선 현종(재위 1659∼1674) 때 양운거(楊雲擧)라는 선비가 흉년이 들 때마다 이웃을 도와줘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임금이 관직을 하사했으나, 이를 사양하고 풍류를 즐기며 여생을 보낸 종호정(鐘湖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고 ‘石門(석문)’이란 큰 글씨만 바위에 남아 있다. 징검다리로 강을 건너 섬진강마실휴양숙박시설단지 앞에서 첫날을 마감한다.


                                      ▲남근석.


덤으로 숙소가 있는 회문산 ‘고추장 익는 마을’로 가는 길에 임실 덕치면에 있는 사곡리 남근석을 둘러본다. 이곳 지형이 여근곡(女根谷)을 닮아 재앙을 막고자 남근석(男根石)을 세웠는데, 경지정리(耕地整理) 할 때 훼손된 것을 수습해 다시 마을입구에 세웠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이치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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