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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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가볍게 조반을 마치고 다시 세종시로 들어가 장군면에 있는 ‘장군산영평사(將軍山永平寺)’로 간다. 영평사는 오래된 고찰(考察)도 아니고, 특별히 내세울 만한 보물도 없는 사찰 같다. 그러나 일반 사찰과는 달리 대웅전 앞마당에 탑이나 석등도 없고 푸른 잔디를 깔아 놓았는데, 우선 포근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대웅전 좌측 옆으로 아미타불(阿彌陀佛) 입상이 엷은 미소를 머금고 삼라만상을 굽어본다.



▲장군산영평사 전경.


꽃무릇은 곱게 피었건만 여름 내내 무더위와 씨름하며 키워 준 잎은 만날 길 없는데, 눈치 없는 구절초는 축제를 앞두고 가을이 더디다고 아우성이다.


“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


세상만사 이놈의 조화라


오늘의 내 모습 이놈의 그림자


오늘의 요동친 맘 다음 생 내 모습


한번 착하면 만 년 행복


한번 악하면 만 년 불행”


사찰 벽면에 쓰여 있는 이글이 누구의 천 마디 말보다도 내 마음을 흔드는 이유는 무슨 연유일까?



▲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


서둘러 세종호수공원으로 이동한다. 세종호수공원은 금강 물을 끌어와 인공호수로 만든 공원이다. 일산호수공원 보다 1.1배의 크기로 2013년 3월 완공된 국내 최대 인공호수라고 한다. 오전 5시에 개방해 오후 11시까지 연중무휴로 개방된다. 자작나무 등 여러 나무로 테마 숲을 조성해 가족단위로 소풍을 즐길 수 있는 명소로 꾸며졌다. 잔디로 단장한 ‘바람의 언덕’은 전망이 좋은 곳으로 조성됐고, ‘수상무대 섬’은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독락정(獨樂亭)은 충북 옥천의 대청호 주변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곳 세종시에도 금강을 굽어보는 독락정이 있다고 하여 들러본다. ‘독락정역사공원’ 조성공사로 잠시 길을 잃어 헤매다가 겨우 소재지를 확인하고, 찾아간다. 독락정은 임목(林穆)이란 사람이 1437년(세종19년)에 부친의 절의를 지키기 위해 지은 정자로 금강의 운치를 즐길 수 있는 곳 같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들어가는 입구가 잡초에 묻혀 있어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공주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창벽(蒼壁·푸른 암벽)은 금강 변의 잘생긴 벼랑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한가롭고 여유가 있다면 뱃놀이라도 하면서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라도 읊어보고 싶지만, 배 대신 세월을 타고 “인생이란 게 푸른 바다에 던져진 좁쌀 한 알 같다(창해일속 滄海一粟)”를 음미하며 공산성으로 이동한다.


마침 공주에서는 제62회 백제문화재(2016. 9. 23∼10.2)가 열리고 있었다. 물의 흐름방향으로 공산성 뒤편으로 올라간다. 올라가는 좁은 길은 가파르고 숨도 차다. 참나무에서는 상수리가 떨어지고, 밤나무에서는 알밤이 뚝뚝 떨어진다. 길목 바위에는 주먹만 한 불상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양 참선수도에 열중이다.


백제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사비(부여)를 버리고 이곳으로 와서 항전했으나,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항복했다는 ‘공산성’은 고구려 장수왕의 강력한 남진정책에 밀려 오백년 가까이 이어 온 한강의 위례성을 버리고 웅진(공주)으로 천도하여 문화의 꽃을 피웠던 백제의 두 번째 수도다.



▲공산성 정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공산성은 백제가 고구려의 공격권에서 벗어나 전열을 재정비하고 패색 짙은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 역사의 장으로 5대왕 64년의 웅진백제사를 써내려간 곳이란다. 조선조 인조는 이괄의 난 때 이곳으로 파천해 엿새 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성 밑으로 굽이굽이 흐르는 금강은 그때의 역사를 말하는 것 같다.


성내의 여러 유물 중 나라를 다시 찾은 기념으로 이름을 바꿨다는 ‘광복루(光復樓)’,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 장수를 기리는 ‘명국삼장비’, 동성왕의 사연이 담긴 ‘임류각(臨流閣)’ 등 유물들을 뒤로 하고 정문 쪽으로 나오는데, 마침 ‘웅진성문병근무 교대식’이 막 열린다.


강물 위에는 ‘빛과 이야기가 있는 백제등불향연’을 하기 위해 돛단배를 줄로 이어 띄워 놓았다. 그런데 성곽 길바닥에 이족오(二足烏) 문양이 박혀 있으나, 아무런 설명이 없다. 동이족은 ‘태양의 후손’이라는 뜻으로 삼족오(三足烏)를 사용했기 때문에 더 혼동된다.


축제를 보러 온 인파로 북적거리는 공산성을 빠져나와 ‘공주 정지산 유적’지로 간다. 이곳은 구릉지대에 자리잡은 유적으로 1996년 국립공주박물관의 발굴조사 결과 백제시대의 국가적 차원의 제의(祭儀)시설로 추정됐다. 유적지 내에서는 국가의 주요시설에만 사용되는 8잎 연꽃이 새겨진 수막새가 발견됐고, 국가 제사와 관련된 유물들이 출토됐다고 한다.


국립공주박물관 쪽 산길로 접어들었는데, 우거진 잡초가 길을 막는다. 어렵게 뚫고 후문으로 들어갔는데, 화단에는 일본을 상징하는 금송이 기념식수로 심어있다. 백제 무령왕의 관을 금송으로 만들어져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시기적으로 가까운 일제강점기를 생각하면 다른 곳도 아닌 국립박물관에 심어있다는 것은 국가의 자존이 걸린 문제다. ​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을 관람하고 고마나루로 간다. 공주의 고마(곰)나루는 금강의 옛 나루터로 ‘웅진’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마나루에는 연미산(燕尾山)의 암곰이 공주의 나무꾼과 부부의 인연을 맺고 살다가 나무꾼이 도망가자 새끼들을 차례로 물에 빠뜨려 죽이고 자신도 빠져 죽었다. 그 후 곰의 원혼이 금강에 풍랑을 일으켜 나룻배를 뒤집히게 하자 이를 위로하기 위해 곰 사당을 지어 매년 제사를 지내니 무사하게 됐다는 전설이 전한다.


고마나루에서 하류 쪽으로 공주보가 물길을 가로 막고 서있다. 금강변의 넓은 백사장과 솔밭이 아름다움을 더 했으나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공주 보는 백사장을 다 삼키고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이유도 모른 채 곰나루를 바라보고, 곰 할머니를 모시는 사당은 슬픈 전설을 지금도 이야기한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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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4-22 08: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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