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유학자 검소함 깃든 ‘동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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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유학자 검소함 깃든 ‘동춘당’ 금강 천리 길을 걷노라면(13)
  • 기사등록 2023-04-09 08:31:43
  • 기사수정 2023-12-23 23: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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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청마리 폐교운동장에는 늙은 플라타너스나무가 터를 지키고, 옛 교실에는 ‘옥천 옻 문화단지 옻 배움터’가 자리를 대신한다.


청마리 마티마을에서 ‘양저∼지수 간 도로 확포장공사’ 구간까지 빠져나온다. 강 건너 솔밭에는 학(백로)들이 둥지를 틀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조용해진 금강을 굽어보니 주택의 아치형 터널 위에 으름덩굴이 지붕을 이루고, 으름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가덕교 앞에 도착하니 해의 기울기가 길다.


                                    ▲동춘당.


동춘당은 조선조 효종 때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냈고 송시열의 친척인 송준길(1606년∼1672년)이 38세가 되던 해(1643년)에 지은 별당(別堂)으로 보물(제209호)로 지정됐다. 이집은 굴뚝을 높이 세워 달지 않았다고 한다. 즉 따뜻한 온돌방에서 편히 쉬는 것도 사치스럽게 여겼기 때문에 왼쪽 온돌방 아래 초석과 같은 높이로 연기 구멍을 뚫어 놓아 유학자의 은둔적 사고를 잘 표현했다.


대청의 앞면, 옆면, 뒷면에는 쪽마루를 내었고 문을 모두 들어 열면 내·외부 공간이 차별 없이 자연과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했다. 대청과 온돌방 사이의 문도 들어 열 수 있어 필요시에는 대청과 온돌방 전체를 하나의 큰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이하다. 현재 걸려 있는 ‘同春堂(동춘당)’ 현판은 송시열이 썼다고 하며, 별당 옆 고택에서는 후손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동춘당에서 바쁘게 나와 대전 동구 가양동 ‘우암사적공원’ 안에 있는 ‘남간정사(南澗精舍)’로 간다. 송시열(1607∼1689)은 1607년 충북 옥천군 이원면의 외가에서 태어난 후로 화양동 등 여러 곳으로 주거를 옮겼으나, 그가 주로 살았던 곳은 옛 대전의 근교였다. 초년에는 지금의 대전광역시 동구 소제동에 살았는데, 근교의 비래촌과 흥농촌이라는 곳에 비래암과 능인암이라는 서당을 세워 제자를 가르쳤다고 한다. 1683년(숙종 9년) 말년에 능인암 아래에 규모가 큰 서당을 새로 세웠는데 이것이 남간정사다. 1989년 3월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됐다.


송시열은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그의 학문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남간정사는 계곡에 있는 샘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을 건물의 대청 밑을 지나서 연못으로 흘러가게 했는데, 이는 한국 정원 조경사에 새로운 조경방법이라고 한다. 남간정사 오른쪽에 있는 기국정(杞菊亭)은 소제동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 초에 옮겨온 것이라고 하며, 송시열의 문집인 송자대전(宋子大全)은 목판으로 만들어져 남간정사 장판각(藏板閣)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다시 옥천의 안남면에 있는 독락정(獨樂亭)으로 이동한다. 독락정(獨樂亭)은 1607년(선조 40년)에 절충장군중추부사(折衝將軍中樞副使)를 지낸 주몽득이라는 사람이 세운 정자로 지었지만, 서당으로 운영돼 오다가 후에 유생(儒生)들이 모여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전당으로 발전해 서원(書院)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정면 3칸과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방과 마루가 각 1칸씩 있으며, 금강의 풍광을 내려다보며 층암절벽 바위산 등주봉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이곳은 현재 초계주씨독락공파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독락정 뒤의 산에 오르면 둔주봉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한반도 모형이 거꾸로 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술도가.


오전은 먼 곳을 이동하다가 후딱 지나간다. 옥천군 안내면으로 와서 점심을 하고 인근의 ‘안내양조장’에 가서 옛날식 술도가 등을 구경한다. 전성기 때에는 술도가를 20여 독을 발효(醱酵) 했으나, 지금은 1개를 채우기가 힘들다고 한다. 안채 마당에는 울타리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탱자나무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채 정원수처럼 서있다.


다시 금강으로 돌아와 어제 걷기 마지막 지점이었던 가덕교를 건넌다. 강 아래로 내려가 잠수교 같은 길을 거닐면 물속에서는 월척 같은 큰물고기부터 어린 치어까지 한가롭게 떼를 지어 노닌다. 이런 틈을 타고 낚시꾼들은 여러 대의 낚시를 설치하여 손맛을 느끼기에 바쁘고, 간간히 고기 잡는 어항을 설치해 물고기들을 유혹한다. 물이 좋아 물고기의 종류도 많다고 하는데 비교적 큰 물고기는 누치가 가장 많다고 한다.


대청호에는 ‘김옥균과 명월이의 애틋한 사랑의 열기가 남아 있는 청풍정’과 ‘호수 위에 떠있는 병풍바위인 부소담악’ 등 몇 군데 가볼만한 곳은 다음으로 미룬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를 맞으며, 대청댐으로 이동해 대청호공원으로 올라간다.


대청호는 대전광역시와 충청북도 청주시·옥천군·보은군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미호동(남)과 충북 청원군 문의면 덕유리(북) 사이의 좁은 협곡에 높이 72m, 공도교길이 495m의 필댐(filldam)이 남과 북으로 건설됨으로써 거대한 호수가 형성됐다.



                                          ▲대청댐.


필댐은 흙과 돌을 기울기가 완만하게 쌓아 올려 담수되는 물의 무게를 지탱하는 형식의 댐이다. 기초가 약해도 쌓기가 가능해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댐 건설에 많이 적용되는 경제적 방식이라고는 하지만, 홍수 시에 월류(越流)에 저항력이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대청호는 1980년 완공돼 저수면적 72.8㎢, 호수길이 80km, 저수량 15억t으로 한국에서 3번째 큰 규모의 호수다. 대전광역시·청주시의 식수와 생활용수·공업용수 등 다목적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호수 주변으로 해발고도 200∼300m의 야산과 수목이 펼쳐져 사람에게 친근한 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1998년에 개관한 물 홍보관 마당 앞에서 바라보면 밑으로 주변 경관이 한눈에 내려 보인다.


빗길에 다시 계단으로 내려와 대청댐 아래에서 데크로 곱게 단장된 길을 따라 신탄진 쪽으로 걸어간다. 건너편 호안에는 백로들이 떼를 지어 비를 피하고 있고, 내려가는 길목에는 산딸나무 열매가 빨갛게 익어간다.


조정지댐 지나 충북 청주시 남이면 복숭아밭에서는 수밀도(水蜜桃)가 은근히 유혹한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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