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동양 최대 철새도래지였던 ‘을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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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동양 최대 철새도래지였던 ‘을숙도’ 낙동강 천 삼백리길을 따라(47)
  • 기사등록 2023-02-25 08:4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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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낙동강하굿둑 하단동 입구에서 4차선 공도를 따라 1㎞쯤 걸어 들어가면 을숙도가 나온다.


을숙도는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1동과 하단2동에 걸쳐 있으며, 부산시청에서 서쪽으로 7㎞ 지점에 있다. 1978년 2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김해군에서 부산시로, 1983년 12월 15일 강서구 대저2동에서 사하구 하단동으로 편입됐다.


을숙도는 낙동강 하구에 토사가 퇴적돼 형성된 하중도(河中島)다. 갈대와 수초가 무성하고, 어패류가 풍부하다. 한때는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였으며, 1966년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됐다.



▲낙동강둔치의 갈대밭.


대부분이 저습지대로 홍수 때는 수몰될 위험이 컸기 때문에 섬 크기에 비해 주민이 적었다. 그러다가 윤중제(輪中堤)가 축조(築造)되고 경지정리 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많은 주민이 이주함으로써 부산의 원예작물 공급지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87년 4월 낙동강 하굿둑의 완공으로 섬 전역이 공원화되면서 대부분의 갈대밭이 훼손되고,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자 철새가 줄어드는 등 생태계 파괴가 가속화됐다.


4대강 국토종주자전거길 종점인 을숙도에는 낙동강하굿둑기념탑이 하늘을 찌르고 낙동강문화관, 낙동강하굿둑전망대, 을숙도문화회관과 주차장 등 사람만을 위한 공간과 시설들이 다른 생명들의 서식지를 빼앗아 차지해 버렸다. 물론 사람들도 정서적 문화적으로 자연의 혜택을 누리면서 실아 갈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우월적 지위가 아니라 다른 생명들과 공존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산시도 더 이상 을숙도 개발계획을 백지화하고, 복원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니 다행이다.



▲을숙도문화회관.


‘낙동강 오리알’이란 속담이 있다. 이는 철새도래지였던 을숙도에 밀물이 들어왔다 썰물 때 물이 빠지면서 갈대밭 둥지에 있던 오리알들이 물에 둥둥 떠 내려와서 생긴 말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소외돼 처량하게 된 신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전쟁 때 낙동강전투에서 북한군이 필사적으로 도하를 시도하다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으로 북한군이 줄줄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당시 중대장이 “낙동강 오리알 떨어진다!”고 소리치면서 남을 조롱하는 비속어로 자리 잡게 됐다고 한다.


을숙도문화관에서 지난 2월부터 걸어온 ‘낙동강 천 삼백리길’을 잠시 회상해 보고 다대포로 이동한다. 다대포는 하굿둑이 생기기 전에는 낙동강의 최남단 하구(河口)다. 다대포(多大浦) 지명의 유래는 큰 포구가 많은 바다라는 데서 비롯된 것 같다. 주변 바다와 산의 경치가 아름다운데, 곱고 부드러운 흰 모래사장이 전개돼 좋은 해수욕장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일찍부터 왜구의 출몰이 잦아 국방상 중요한 요새지였다.


다대포는 1960년대 말까지 부산 근교의 한적한 어항이었으나, 목재·조선업이 유치되면서부터 어촌에서 공업지역으로 변모했고, 택지개발로 아파트단지가 형성돼 있다. 최근에는 다대포해수욕장과 연계된 수변의 조망권을 확보하기 위해 낙동강변 신평동 56호 광장∼다대포해수욕장간의 전체 4.1㎞의 군사용 철책이 철거됐다. 부산시는 강변대로 일부구간의 도로를 확장하고, 도로와 하구사이 제방을 친수공간으로 조성해 자전거도로·산책로·휴식공간으로 조성했다.



▲다대포매립백지화기념비.


백사장 주변으로 조성된 솔밭어귀에는 한 때 매립이 되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적이 있는 다대포를 주민들의 반대로 백지화 시킨 ‘다대포매립백지화기념비’가 개발의 손길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친 흔적을 이야기해준다.


일출의 장엄함과 낙조의 현란함이 바다와 강, 그리고 철새와 어우러지는 다대포데크를 따라 몰운대 쪽으로 향하다가 등을 넘지 못하고 중간에서 돌아선다.


다대포백사장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 있는 몰운대(沒雲臺)는 낙동정맥(洛東正脈) 산줄기의 맨 끝부분이다. 다대포 일대는 해류의 영향으로 짙은 안개가 끼어 시야가 자주 가려지기 때문에 ‘몰운대’라고 했다.


16세기 이전 몰운대는 섬이었다가 점차 낙동강에서 밀려온 토사가 쌓여 육지와 연결된 것으로 추측한다. 언덕 전체에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지만, 예전에는 동백나무가 울창했던 곳이다.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에 이어 연재한 ‘낙동강 천 삼백리길을 따라’는 47회로 끝났습니다. 이어서 ‘금강 천리 길을 걷노라면’이 연재됩니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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