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밀양아리랑 전설 깃든 ‘아랑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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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밀양아리랑 전설 깃든 ‘아랑각’ 낙동강 천 삼백리길을 따라(40)
  • 기사등록 2023-01-29 09:21:25
  • 기사수정 2023-12-24 08: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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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영남루에서 우측으로 빠져나와 영남루1길을 막 건너면 언덕에는 밀양출신 대중가요 작곡가 박시춘(朴是春, 1914∼1996, 본명 朴順東)의 옛집이 복원돼 있다.


박시춘은 기타연주자로 유랑극단을 따라다니다가 ‘어둠에 피는 꽃’으로 작곡가로 데뷔했다. ‘신라의 달밤·애수의 소야곡·이별의 부산정거장·전선야곡’ 등 총 3천 여곡을 작곡해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일제강점기 때 작곡한 ‘아들의 혈서·목단강편지·혈서지원’ 등이 친일파 인사로 거명되기도 했다.


                                       ▲아랑각.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93호)으로 유명한 무봉사(舞鳳寺)를 뒤로하고 계단을 따라 강변으로 내려오면 밀양아리랑의 전설이 깃든 아랑각이 있다.


밀양아리랑은 밀양지방의 명소인 영남루와 아랑의 설화를 주제로 한 통속 민요다. 이 노래의 발생설화는 조선 명종(明宗) 때 밀양 부사에게 아랑(阿娘)이라는 예쁜 딸이 있었는데, 젊은 통인(通人) 주기(朱旗)가 아랑의 유모를 매수한 뒤 아랑을 영남루로 유인해 정조를 강요하자 죽음으로 정절을 지켰다. 아랑은 밀양부사의 딸 윤동옥(尹東玉)을 가리키며 재색이 뛰어난 규수로 전해진다.


                            ▲밀양아리랑 노래비.


밀양 사람들은 아랑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정절을 기리기 위해 영남루 아래 시신이 떨어졌던 대밭에 열녀사(烈女祠)라는 사당을 짓고 해마다 음력 4월 16일에 제사를 지내왔다. 밀양아리랑은 세마치장단에 맞춰 부르는 흥겨운 노래로 경상도 민요의 특징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고, 오히려 경기민요에 가깝다고 한다.


(1)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남천강 굽이쳐서 영남루를 감돌고 벽공에 걸린 달은 아랑각을 비추네.


(2)영남루 명승을 찾아가니 아랑의 애화가 전해 있네.

밀양의 아랑각은 아랑넋을 위로코 진주의 의암은 논개충절 빛내네.


(3)저 건너 대 숲은 의의한데 아랑의 설운 넋이 애달프다.

아랑의 굳은 절개 죽음으로 씻었고 고결한 높은 지조 천추에 빛난다.


(후렴)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석화.


영남루 주변에는 ‘돌에 자연으로 새겨지는 꽃무늬’가 무리를 이뤄 산재해 있다. 이를 석화(石花)라고도 하며, 특히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으로 비온 뒤에 더 선명하게 나타나는 국화꽃 모양의 아름다운 자태가 이채로운 현상이다. 석재의 재질이 연한 납석으로 자연적인 영향에 의해 쉽게 부식되고 마모되기 때문에 당국에서는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 같다.


짧은 시간에 영남루 주변을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돌아보았지만, 이곳은 밀양의 대표적인 요소들이 묻어 있는 느낌이다. 변계량(卞季良)의 전설, 사명대사(四溟大師)로 더 알려진 임유정(任惟政)과 표충사, 박곤(朴坤)의 용에 관한 전설 등 많은 설화가 있으며, 얼음골 등 자연유산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서 다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들의 중심이 영남루인 것 같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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