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상주, ‘삼백(三白)’의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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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상주, ‘삼백(三白)’의 고장 낙동강 천 삼백리길을 따라(19)
  • 기사등록 2022-11-19 09:25:47
  • 기사수정 2023-12-24 0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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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상주는 경상도(慶尙道) 명칭을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에서 한자씩 따와서 지은 것만 봐도 이 고을의 역사적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백두산에서 뻗어 나온 백두대간 정기가 속리산에서 뭉쳐 있다가 동남으로 뻗어 내려 병풍처럼 둘러쳐져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낙동강(洛東江)이 대지를 적시어 땅이 기름진 곳이다. 즉 서북쪽은 산지여서 지세가 높고 동남쪽은 들녘이 발달해 넉넉한 품으로 사람을 끌어안는다.


                            ▲상주의 산·강, 들.


한마디로 산·강·들이 어우러져 함께 숨 쉬는 명품고장이다. 상주의 옛 이름이 ‘낙양(洛陽)’이었는데 이곳의 동쪽으로 강이 흘러 낙동강이라고 했다. 이곳에 고령가야(또는 가락국)가 있던 곳이라 낙동강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상주에서는 ‘낙동강 칠백리’라고 하는데, 이는 상주에서부터 낙동강이 시발점이라 하고, 상류지역의 하천은 강(江)이 아니고 내성천, 반변천 등 내(川)로 표현했다고 한다.


상주는 예부터 너른 들녘 덕택인지 쌀, 목화, 누에고치 등 세 가지 하얀 것이 유명해 ‘삼백(三白)’의 고장이라고 했으며, 지금은 목화 대신 곶감이 자리하고 있다. 기름진 땅에서 재배되는 상주 쌀은 질이 좋아 임금님 진상품이었다. 상주시 함창(咸昌)은 신라시대부터 명주산지로 이름난 곳으로 지금도 가을이면 명주장이 선다고 한다.


사벌면 퇴강리를 지나면 어풍대(御風臺)라는 표지석이 나온다. 어풍대는 조선 중기 문신인 이재 조우인(頤齋 曺友仁, 1561∼1625)이 승지(承旨) 관직을 마무리하고, 이곳 매호(梅湖)로 낙향해 남쪽에는 임호정(臨湖亭)이란 정자를 두고 이곳을 어풍대라고 했다. 매호리 앞을 지나는 낙동강은 잔잔하게 흐르는 숨결 같은 호수다.


시·서예·음악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는 평을 받은 조우인은 1605년에 문과에 급제해 여러 벼슬을 지냈다. 1621년에는 제술관(製述官)으로 있으면서 광해군의 잘못을 풍자했다가 그 글로 말미암아 3년간 옥에 갇혔다.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상주의 매호에서 은거하며, 여생을 마쳤다. 작품으로는 이제영언(頤齋詠言)이 있다.


상주와 예천군 풍양을 연결하는 상풍교(尙豊橋)를 지나고 매호평야를 지나면 경천대(擎天臺)로 접어드는 숲길이 나온다. ‘하늘을 떠받든다’는 경천대의 옛 이름은 자천대(自天臺)로 ‘하늘이 스스로 만든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이다. 낙동강 1300여 리 물길 중 제1경으로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이곳은 깍아지른 절벽과 노송으로 이뤄진 절경이다.


지금의 이름 경천대는 병자호란이 끝난 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의 불모로 심양으로 끌려갈 때 7년간 수행했던 우담 채득기(雩潭 蔡得沂, 1604∼1646)가 낙향해 무우정(舞雩亭)을 짓고 머물면서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이라는 경천대비를 세운 후 경천대로 불리었다고 한다.


우담은 충북 충주 출신으로 역학·천문·지리·음룰·병서 등에 조예가 깊었다. 32세 되던 해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남한산성이 함락되자 지금의 상주에 들어와 무우정을 세우고 두문불출하면서 독서에 전념했다.


무우정 아래 선착장에는 놀이 배 출입이 분주하고, 그 위로는 2001년 MBC가 창사 40주년 기념드라마 <상도> 촬영 세트장이 있어 찾는 손님이 줄을 잇는다. 출렁다리를 건너 강변 계곡숲길을 따라 걷다가 큰길로 나오면 상주자전거박물관이 나온다.


                            ▲상주자전거박물관.


상주는 역시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더 많은 도시다. 낙동강을 끼고 형성된 넓은 평야와 풍요로운 지역으로 자전거 타기에 더없이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1925년 경북선 상주역 개설기념으로 개최된 ‘조선팔도전국자전거대회’는 일제가 조선 사람에게 우월성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조선 최고의 선수 엄복동이 우승하고 상주출신 박상헌이 우수한 성적을 거둠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상주에서는 자전거 타기 붐이 조성됐으며, 오늘날 전국 최고의 ‘자전거 도시’가 될 수 있는 기반을 일찌감치 마련했다고 한다.


자전거박물관을 지나면 낙동강생물자원관이 나온다. 낙동강생물자원관은 최근 기후변화와 개발사업 등으로 인해 멸종하거나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담수생물 자원 발굴·관리와 보전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고, 2011년에 발효된 ‘나고야의정서’의 이행과 국제사회의 생물자원화와 산업화 추세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설립됐다. 미개척 생물분류군을 중심으로 담수생물종을 신규 발굴해 증거표본을 확보하고, 생물주권 확립에 기여함은 물론 생물자원의 실용화·산업화 지원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곳이다.


                          ▲낙동강생물자원관.


낙동강생물자원관과 경천섬공원 입구를 지나면 도남서원이다. 도남서원(道南書院)은 1606년(선조 39) 상주시 도남동에 창건됐으며, 1676년에는 숙종(肅宗)으로부터 편액을 받아 사액서원이 됐다. 1797년(정조 21)에는 동·서재를 건립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수했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으나 1992년 지역 유림들이 힘을 모아 강당 등을 건립하고, 2002년부터 대규모 복원이 이뤄졌다. 이 서원에서는 정몽주·이황 등 아홉 분의 향사를 음2월과 8월 하정일(下丁日)에 지낸다.


도남서원을 나와 하류로 걸으면 큰 다리 같기도 하고 댐 같기도 한 낙동강 최상류에 있는 상주보가 버티고 있다. 상주보는 4대강사업으로 시작해 길이 540m, 폭 5∼11m 규모로 탄생했다. 자전거만 다닐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공도교를 통해 상주보 우안에서 좌안으로 건너간다. 수질오염문제로 보를 개방했지만, 보(洑) 안의 가장자리에는 녹조(綠藻)가 물살에 출렁인다. 벼 포기 실하게 뿌리를 내린 논길을 따라 강창교 하천공원에 다다르니 해는 이미 기울고 있었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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