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우리나라 최초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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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우리나라 최초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 낙동강 천 삼백리길을 따라(16)
  • 기사등록 2022-11-06 09:25:03
  • 기사수정 2023-12-24 09: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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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낙동강 답사를 위해 연속 이틀을 잔 곳이 예천(醴泉)이다.


예천은 유교경전 중 하나인 예기(禮記)에 나오는 구절 ‘天降甘露 地出醴泉(천강감로 지출예천-하늘에서는 단 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단술이 솟는다)’에서 따온 지명이다. 이중환(李重煥, 1690∼1756)은 <택리지(擇里誌)>에서 사람이 살 만한 곳을 “물이 달고 토지가 비옥한 곳”이라고 했다. 물맛이 감주(甘酒)처럼 단맛이 나는 샘이 있어서 얻은 지명 같다.


이러한 영향이 있어서인지 예천군 호명면과 안동시 풍천면을 현재 경상북도청신도시(慶尙北道廳新都市)로 묶어 신도시를 조성하는 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이미 경상북도청과 경상북도의회, 경상북도교육청은 2016년 2월에 이전해 왔고, 경상북도지방경찰청은 2018년 7월에 이전한다. 그리고 도청과 관련된 기관들도 순차적으로 이전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예천은 안동과 더불어 앞으로 도청신도시의 배후로 새로운 문화와 역사가 기대되는 곳이다.


                                    ▲초간정.


우선 예천에 온 김에 예천군 용문면에 있는 초간정으로 간다. 경상북도문화재자료(제143호, 1985년 8월 5일)로 지정된 초간정(草澗亭)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전20권)>을 저술한 조선 중기의 학자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가 1582년(선조 15)에 지은 정자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불에 타버린 것을 후손들이 여러 번 고쳐 지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870년(고종 7) 후손들이 새로 고쳐 지은 것이다.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은 단군조선 이래 조선선조까지의 사실(史實)·인물·문학·예술·지리·국명·성씨·산명(山名)·목명(木名)·화명(花名)·동물명 등을 총망라해 원(元)나라 음시부(陰時夫)의 <운부군옥(韻府群玉)>의 예에 따라 운자(韻字)의 차례로 배열·서술했다. 초간정에 보관해오다 지금은 예천권씨 초간종택에 장서고인 백승각(白乘閣)을 지어 보관하고 있다.


금곡천이 휘감아 흐르는 암반 위에 올려놓은 듯 지은 초간정은 후학들을 가르쳤다는 증거로 ‘초간정사(草澗精舍)’ 현판이 걸려 있다. 후손인 청대 권상일(淸臺 權相一)은 ‘초간정사술회(草澗精舍述懷)’에서 “공손히 손 씻고 선조의 남긴 책을 펼치니(我來盥手披遺卷 아래관수피유권) 의기로운 마음은 정녕 시들지 않으리라(盈溢巾箱政不貧 영일건상정불빈)”고 하며 시냇가 풀잎 푸르디푸르러 세속에 물들지 않은 조상의 얼을 마음에 새긴다.


                                  ▲금당실 송림.


초간정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예천 금당실송림’으로 이동한다. 천연기념물 제469호인 금당실송림은 오미봉(207m) 밑에서 용문초등학교까지 800m에 걸쳐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원래 이 송림은 2㎞가 넘는 송림이었다. 1892년 마을 뒷산인 오미봉에서 몰래 금을 채취하던 러시아 광부 두 명을 마을 주민이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해 고심 끝에 마을의 공동 재산이었던 소나무를 베어 러시아 측에 배상금으로 충당하는 바람에 솔숲이 줄었다고 한다.


용문면사무소가 있는 금당실(金塘室)마을은 예부터 마을의 금곡천에서 사금(砂金)이 있었다고 해서 ‘금당실’이라 불린 마을로, 조선시대 전통가옥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연화부수형의 형국으로 북쪽의 매봉, 서쪽의 국사봉, 동쪽의 옥녀봉, 남쪽의 백마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으로 매봉이 조산(祖山)이 되고 그 뒤로 길게 뻗은 소백산 줄기가 내룡(來龍)이 되어 ‘연못’을 상징한다고 해서 금당(金塘)이라고도 한다.


마을의 집마다 사람이 사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적막감이 흐른다. 마을의 보호수 느티나무는 500년 넘게 당산을 지키고, 한 때는 학생 수가 천 명이 넘었다는 초등학교는 지금은 50여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래도 예전부터 자리 잡았던 꽃들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향을 피운다. 금당실 주막 주모는 천주교 용문공소에 주일예배 보러 갔는지 보이지 않고 청사초롱 깃발만 펄럭인다.


                                    ▲용도천문.


용도천문(龍跳天門, 용이 뛰어 하늘 문에 이른다)의 고향 용문면 죽림리에는 예천권씨 초간종택(醴泉權氏 草澗宗宅)이 있다. 보물 제457호인 ‘초간종택’은 조선 전기의 별당으로 초간 권문해의 조부 권오상(權五常)이 15세기 말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건물을 바라볼 때 오른쪽 3칸을 대청으로, 왼쪽 1칸을 온돌방으로 꾸몄다. 중요한 것은 초간정에 보관해 오던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이곳 백승각으로 옮겨와 보관하고 있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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