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아픔과 치욕의 역사 ‘삼전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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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아픔과 치욕의 역사 ‘삼전도비’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66)
  • 기사등록 2022-07-24 08:50:55
  • 기사수정 2023-12-23 21: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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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조반을 끝내자마자 잠실 석촌호수 옆에 있는 삼전도비로 이동한다, 석촌호수는 본래 송파나루가 있는 한강의 본류였다. 송파나루는 조선 왕조 이전에도 한양과 삼남 지방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뱃길의 요지였다.


옛날에는 한강의 토사가 지금의 잠실 쪽으로 쌓여 형성된 부리도(浮里島)라는 섬이 있었는데, 1971년 부리도의 북쪽 물길을 넓히고, 남쪽 물길을 폐쇄해 섬을 육지화하는 한강 공유수면 매립사업 대공사가 시작됐다. 그때 폐쇄한 남쪽 물길이 바로 현재의 석촌호수로 남게 됐으며, 당시의 매립공사로 생겨난 땅이 현재의 잠실동과 신천동이다.


지하철 2호선 잠실역으로 가는 석촌호수(서호) 북단에는 소위 삼전도비(三田渡碑)라고 불리는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가 있다.



▲삼전도비.


이 비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청 태종의 막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하며, 항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청나라가 세운 비석이다. 비신(碑身)의 높이는 395cm, 너비 140cm로 이수(螭首)와 귀부(龜趺)를 갖춘 거대한 비석이다. 몽골문·만주문·한문의 3종류 문자로 같은 내용을 담음으로써 옛 글자 연구의 자료로도 이용되고 있다.


                           ▲비신이 없는 작은 귀부.


이 비의 옆에는 비신(碑身)이 없는 작은 귀부가 또 하나 있다. 병자호란이 끝나자 청 태종의 전승기념을 위해 비를 건립하던 중 중간점검을 나온 청나라 관리가 ‘거북이의 눈이 하늘로 치켜뜨고 있는 모습이 마치 천자를 째려보는 형상’이라며 트집을 잡았고, 더 큰 규모로 비석이 조성되기를 강요하는 청나라의 변덕으로 원래에 만들어졌던 귀부가 용도폐기 되면서 남겨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1963년에 사적 제101호로 지정된 이 비는 당초(當初) 한강 변 나루터 인근에 세워졌으나, 치욕의 역사물이란 이유로 수난과 수 차례 이설을 거듭해 왔다.


                                ▲삼전도비 전경.


1980년대는 송파대로 확장 시 석촌동 289-3 주택가에 있는 아름어린이공원에 세워져 있던 비를 원래 위치를 고증하고, 문화재 경관심의를 거쳐 2010년 4월에 현재의 위치인 잠실동 47번지로 이전해 설치하게 됐다고 한다. 물론 치욕적인 역사에는 틀림없으나,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사실을 직시하는 태도가 더 필요하다.


바쁜 발걸음은 다시 잠실한강공원 종합운동장 부근으로 이동한다. 성남 쪽에서 흘러오는 탄천(炭川) 옆 부지에는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치른 잠실종합운동장이 있다. 1984년 9월에 완공된 이 운동장은 최대수용인원 20만명이며, 외형은 우리의 전통적인 단순미와 곡선미를 아름다움과 스포츠를 통한 화합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이곳에서 제24회 올림픽 성화(聖火)를 밝힘으로써 KOREA가 세계만방으로 더 알려졌다.


유로연장 35.6㎞인 탄천은 ‘숯내’라는 이름을 한자화해 ‘탄천(炭川)’이 됐다. 성남시의 옛 이름은 탄리(炭里)다. 이는 남이(南怡) 장군의 6대손인 남영(南永)의 호가 탄수(炭叟)인데, 지금의 성남시 수진동, 태평동, 신흥동 일대에서 살았다고 해서 그의 호 탄수에서 ‘탄골’ 또는 ‘숯골’이라는 지명이 유래됐다. ‘탄골을 흐르는 하천’이라는 뜻에서 탄천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탄천은 용인시 법화산에서 발원해 성남시를 지나 서울 강남구에서 양재천을 끌어안고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옆으로 흘러 한강으로 들어간다.


또 다른 얘기는 옥황상제가 삼천갑자(三千甲子)를 살아온 동방삭(東方朔)을 잡기 위해 사자를 시켜 숯을 물로 씻고 있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동방삭이 하도 이상해서 “왜 숯을 물로 씻느냐?”고 물었더니, 사자가 답하기를 “검은 숯을 희게 하려고 물에 씻고 있다”고 하자 동방삭은 크게 웃으며 “내가 지금까지 삼천갑자를 사는 동안 당신 같이 숯을 씻어 희게 만드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이에 사자는 이자가 동방삭임을 알고 옥황상제께 데리고 갔다고 해서 이때부터 이 하천을 탄천 또는 숯내라 불렀다고 한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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