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천진암성지, 한국천주교회 ‘신앙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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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천진암성지, 한국천주교회 ‘신앙의 고향’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58)
  • 기사등록 2022-06-26 05:39:28
  • 기사수정 2023-12-23 23: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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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양평군 강상면 병산리에서 조반을 마친 뒤 강하면을 거쳐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에 있는 천진암으로 이동했다.


강하면(江下面)은 본래 양근군 지역으로 양근 읍내의 남쪽 중앙이 되므로 남중면(南中面)이라고 해서 전의·수대 등 13개 리를 관할 하다가 1908년 양평군에 편입됐다. 면의 남동쪽 강상면과 경계지점에 솟아 있는 양자산의 여맥이 면(面) 중앙 쪽으로 뻗어 있고, 산지 사이를 흐르는 영동천·성덕천·항금천 등이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강하면 왕창리에서 해협산(海峽山, 531m) 자락을 넘어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관음사거리에서 우측으로 우산천을 끼고 쭉 올라오면 천진암이 나온다. 천진암(天眞庵)은 퇴촌면 우산리 앵자봉(鶯子峰)에 있었던 사찰인데 지금은 폐사(廢寺)됐다. 이곳은 한국천주교회의 발상지(發祥地)로 18세기 중엽 권철신(權哲身)을 중심으로 남인계 소장학자들은 이익(李瀷)의 서학(西學)을 이어받아 독특한 학풍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경기도 광주와 여주 등지의 사찰에서 강학(講學)을 가졌다. 이 강학 장소 중의 하나가 바로 천진암이다.


                                   ▲천진암 십자가상.


당시 천진암에서는 권철신의 주도 아래 그의 아우 권일신과, 정약전·정약종·정약용 형제들, 이승훈·김원성·이총억·권상학 등 10여 명의 젊은 지식인들이 모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학과 서학의 강의를 거듭했다. 이때 당시 26세의 광암 이벽(曠庵 李檗, 1754∼1786)이 가담함으로써 경학의 모임은 새로운 양상을 띠고, 강학의 내용이 당시 전래 된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로 집중돼 학문적 수준에 있던 천학(天學)을 종교적 신앙 차원으로 승화(昇華)시켜 천주신앙으로 전개했다.


                                    ▲천진암 강학당지.


젊은 선비들이 모여들어, 이벽을 웃어른으로 삼자, 이벽은 문하생들에게 성교요지(聖敎要旨)를 지어 받아써서 배우게 했다. 선비들은 천학총림(天學叢林), 즉 천주교 신앙공동체를 이뤘으며, 1783년에는 새로 개종해 입교한 선비들과 힘을 합해 이승훈(李承薰)을 대표자로 북경 천주교회에 파견 보냈다. 이승훈이 1784년 봄 2월에 영세를 받고 귀국하자, 그해 4월에는 서울 수표동의 이벽 자택으로 본부를 옮겨 집회소를 차렸으니, 천진암은 바로 한국천주교회 신앙 운동의 국내 최초 본거지(本據地)가 됐다.


무반의 가문에서 태어나 경서 공부에 치중한 이벽은 차츰 서양 학문과 천주교에 깊이 심취했다. 마침내 선교를 주도하는 인물이 됐고, 그가 천진암 경학에 가담하자 모임의 성격은 자연스럽게 수련을 겸하게 됐다. 당시 23세였던 이승훈이 북경에 파견돼 영세를 받고 돌아온 것도 이 모임의 결실이다. 그러나 이들 정약종·이승훈·권철신 등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殉敎)한다.


1785년 봄에는 명례방 통역관 김범우의 집으로 장소를 옮겨, 더욱 더 천주교를 발전시켰다. 1785년의 국내 첫 박해를 겪으면서 1885년 말까지 100년간에 잔혹한 박해를 이겨내 오늘의 한국천주교회로 발전하게 하는 기초가 됐다. 이처럼 천진암성지는 한국천주교회의 움이 트고 싹이 돋은 한국천주교회 신앙의 고향이며, 전 세계에 유례가 없이, 한국천주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천주교회 발상지(發祥地)다. 따라서 이곳에 조성 중인 <100년 계획 천진암 대성당> 계획은 이와 관련이 깊은 것 같다.


                  ▲한민족 100년 계획 천진암 대성당 건립터.


천진암 옛터에는 이벽, 이승훈, 권일신·권철신 형제, 복자 정약종 등 5위 한국천주교회 창립성조들의 묘가 있다. 조선교구 설립자 정하상, 유진길 성인과 복자 정철상의 묘와, 한국천주교회 창립성조들의 가족들인, 이부만(이벽 부친), 이석(이벽 동생), 경주이씨(이벽 누님), 정지해(정약용 조부), 정재원(정약용 부친), 정약전(정약용 형님) 등의 묘소도 가까운 남쪽 등 너머 성역 내에 있다고 한다.


천진암성지에는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과 이벽(李檗)의 기념비, 교황어록이 새겨진 기념비, 이벽의 천주공경가 비문, 또한, 세계평화의 성모상(동상높이 15m, 청동 25톤)과 함께, 천진암 강학당 기념표석 및 이벽의 독서처 천학도장 기념 표석이 있다. 특히 천진암성지에는 한국천주교회 발상지의 고유한 특성에 필수적인 한국천주교회창립사연구원, 성모경당(1천여 명 수용), 광암성당(200여 명 수용) 등이 완공돼 순례단들이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했다.


한민족 100년 계획 천진암대성당(8017평) 건축이 착공돼 기둥 4개 기초와 4대문의 문틀이 서 있다. 더욱이 100년 계획 천진암대성당 건립 현장에는 축성된 통돌 100톤의 천진암대성당 제대석과, 통돌 30톤의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친필 서명된 강복문(降福文) 머릿돌이 있다고 한다. 36만여 평 성역에 3만여 평의 대성당 건립터에서는 매년 수만 명의 신도가 모여 한국천주교회 창립기념행사를 거행한다고 한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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