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원종대사와 고달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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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원종대사와 고달사지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46)
  • 기사등록 2022-05-15 06:20:02
  • 기사수정 2023-12-24 09:5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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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여주시 북내면 상교리에 있는 고달사지(高達寺址)로 짬을 내어 이동한다. 사적(제382호)으로 지정된 고달사는 일명 ‘고달원(高達院)’이라 부른다. 신라 후기인 764년(경덕왕 23)에 창건해 고려시대에 이르러 큰 도량으로 번성했으며, 17세기 후반에 폐사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고달사지에는 1개의 국보와 4개의 보물 등이 있는 큰 사찰이다. 고달사지 입구에서 400년 이상 빈터를 지켜온 느티나무를 지나 맨 위쪽에 있는 원종대사 탑과 고달사지 승탑으로 간다.


                        ▲고달사지 입구 느티나무.


보물(제7호)로 지정된 원종대사(元宗大師)탑은 원종대사의 승탑으로 원종대사 탑비와 함께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돼 있다. 삼단으로 이뤄진 받침돌 위에 탑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형태지만, 전체적으로 팔각 평면 형태를 기본으로 했고 받침돌의 구조가 특이하다. 받침돌은 네모난 바닥 돌에 연꽃잎을 돌려 새겨 만들었는데, 아래는 네모 형태고, 가운데 윗부분부터는 팔각이다. 원종대사 찬유(889∼958)는 고려 광종 때 고승이며, 이 비는 977년에 세웠다.


조금 위로 비켜 있는 고달사지 승탑은 국보(제4호)로 지정됐으며, 이곳에 남아 있는 고려 시대 승탑이다. 이 탑은 바닥 형태가 팔각을 이루고 있다. 꼭대기의 머리 부분 장식이 좀 부실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잘 보존돼 있다. 승탑을 지탱하고 있는 받침돌은 상중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특히 가운데 돌에는 거북 한 마리가 입체적으로 새겨 있다. 거북이 좌우에는 모두 네 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다. 거북과 용과 연꽃 등은 조금 전에 둘러본 원종대사 탑과 구조가 비슷한 면도 있는 것 같다.


사리를 모셔 둔 탑 돌에는 문짝 모양과 사천왕상을 새겼다. 이를 덮고 있는 지붕돌은 꽤 두꺼운 편으로 모서리의 끝 부분마다 큰 꽃 조각이 달려 있다.


지붕돌 꼭대기에는 둥그런 돌 위로 지붕을 축소한 모양의 보개(寶蓋)가 올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신라의 기본 조각 양식을 잘 따르면서도 각 부분의 조각에서 고려 특유의 특징을 보이고 있어 고려 시대 전기인 10세기 무렵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돌을 다듬은 솜씨가 아주 세련된 작품이다.


탑 아래로 내려오면 고달사지가 넓게 펼쳐지고 원종대사의 업적을 기린 탑비가 있다. 이 비석은 받침돌과 비 몸, 머리돌로 구성돼 있었으나, 1915년 비 몸이 넘어지면서 여덟 조각으로 깨어지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해 오다가 지금은 여주박물관으로 옮겼다. 이곳에는 2014년에 복제한 비가 설치돼 있다. 비문에는 원종대사의 행적과 업적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거북 머리가 험상궂은 용머리에 가까우며 목이 짧고 앞을 똑바로 바라보는 장식 등은 라말려초(羅末麗初)로 이어지는 탑비형식이다.


                                  ▲원종대사탑비.


바로 아래에는 보물(제8호)로 지정된 석조대좌(石造臺座)가 있다. 대좌는 부처나 보살이 앉는 자리다. 받침돌은 3단으로 만든 대좌로 각 단이 별개의 돌이며, 기본형은 사각형이다. 상단의 윗면은 불상을 안치하던 곳이며 잘 다듬어져 있고, 그 아래로 연꽃 24잎이 조각됐다. 중단(中段)은 간석(竿石)으로 사각형이며 각 면에 우주(隅柱)가 있고 위와 아래 끝은 층을 이룬다. 이 안에 커다란 안상(眼象)을 네면 모두에 조각했다. 하단(下段)은 복련(覆蓮)의 겹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고달사지 석조.


넓은 절터를 대충 보고 나오는데, 큰 석조(石槽)가 나온다. 이 석조는 승려들이 물을 담아 두거나 곡물을 씻을 때 사용하던 용기로 원형 등 다양한 형태의 용기가 있으나 이곳에 있는 것처럼 직사각형의 용기가 가장 많다. 이 석조처럼 건물 안에서 발견된 예는 드물다고 한다.


우수한 돌 다듬기 기법과 장식기법이 돋보이는 예술성이 뛰어난 석조이며, 이 석조를 통해 옛 고달사의 내력이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른 공터를 대충 살펴보고, 오전을 마감했던 강천보로 이동한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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