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부론면 현계산 자락 ‘거돈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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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부론면 현계산 자락 ‘거돈사지’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42)
  • 기사등록 2022-05-01 06:43:02
  • 기사수정 2023-12-24 10: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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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오후에는 내친김에 부론면 정산리 현계산(玄溪山534m) 자락에 있는 거돈사지(居頓寺址)를 둘러본다.


거돈사는 언제 창건되고 폐사됐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다. 다만 지금 남아있는 거돈사지 삼층석탑(居頓寺址 三層石塔)으로 미뤄 볼 때 신라후기에 창건된 것 같다. 고려 초에 활동한 원공국사(圓空國師, 930∼1018) 때 전성기이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으로 추측된다.


                                    ▲거돈사 터.


절 입구에 들어서면 우선 보물(제78호)로 지정된 원공국사탑비가 보인다. 원공국사의 법명은 지종(智宗)이고, 세속의 성은 이 씨인데, 비문에는 그의 생애와 행적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있다. 1025년(고려 현종16)에 세운 것으로, 당시 해동공자로 불리던 대학자 최충(崔沖)이 글을 짓고 김기웅(金起雄)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 새긴 글씨는 해서체인데, 고려시대 비석에 새긴 여러 글 중에서도 매우 뛰어난 것으로 중국과 비교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고 한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 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으로 머릿돌이 비 몸보다 큰 것이 특징이다. 거북의 머리는 괴수모양의 험상궂은 용의 머리이고, 등에 새긴 무늬는 정육각형에 가까우며, 육각형 안에는 卍자 모양과 연꽃무늬를 돋움새김 하였다. 머릿돌에는 구름 속을 요동치는 용이 불꽃에 쌓인 여의주를 두고 다투는 모습이 매우 사실적이고 화려하다.


거돈사지 맨 위쪽에 있는 원공국사탑은 고려시대 전기 고승 원공국사의 묘탑이다. 이 탑은 세 개의 받침돌 기단과 몸돌, 지붕돌로 이뤄졌다. 8각을 이루고 있는 몸돌의 각 면의 앞뒤 양면에는 문 모양과 자물쇠 모양을, 좌우 양면에는 창문모양을, 그리고 나머지 네 면에는 4천왕상을 새겼다. 지붕돌은 서까래와 기왓골, 막새기와 모양을 새겨놓아 목조건물의 지붕모양을 정교하게 표현해 놓았다. 꼭대기에는 8각형의 보개(寶蓋)가 얹혀있다.


이곳에 있던 원래의 탑은 일제강점기 때 서울로 옮겨져 일본사람의 집에 있었는데, 1948년에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거돈사 터에 있는 현재의 탑은 2007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후기 신라시대 승탑을 이어받은 팔각집 모양으로 단정하고 균형 잡힌 형태에 격조 있는 장식을 더하고 있어 고려시대 전기 승탑 중에서 매우 수준 높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탑을 세공한 사람이 비록 무명이지만 신심만은 다른 사람이 감히 따라 올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사람 같다.


거돈사 금당 터 앞에는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로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석탑의 모습이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했다. 5단의 밑받침을 둔 지붕돌은 두꺼우면서 경사면의 네 모서리가 곡선을 이루고 있다. 처마는 직선을 이루는데 끝부분에서의 들림이 경쾌해 후기신라 양식임을 알 수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는 네모난 받침돌이 있고, 그 위에 연꽃모양의 보주(寶珠)를 얹어 놓았다. 조성연대는 9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며, 탑 앞에 배례석(拜禮石)이 있다.


                               ▲거돈사지 불대좌.


금당 터의 금당(金堂)은 부처를 상징하는 불상을 모시는 곳으로 사찰의 중심공간이다. 이 금당 터에는 전면 6개, 측면 5개의 주춧돌[초석(礎石)]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 20여 칸의 큰 법당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초석의 배치로 보아 내부는 통 층이고, 외부는 2층 규모의 웅장한 금당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금당 터 중앙에는 부처님을 모셨던 높이 약2m의 화강석 불대좌(佛臺座)가 있다.


금당 터 뒤로는 강당 터가 있다. 강당(講堂)은 사찰에서 경전(經典)을 강의하거나 큰 스님이 설법(說法)하는 장소로 강설당(講說堂)이라고도 한다. 그 당시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대부분 금당 뒤에 배치했으나 조선시대에는 금당 앞에 두었다. 금당과 달리 자연석 기단을 쌓았다. 금당 뒤편으로는 승려들의 생활공간인 승방 터와 우물터가 있다.


절터 앞으로 난 도로와의 경계지점에는 천년 느티나무가 절벽 담벼락에 기대어 거돈사 영욕의 역사를 증명해 주는 것 같다. 이 느티나무는 1982년 11월에 천년 보호수(원주 제9호)로 지정돼 원주시와 마을주민이 공동으로 관리되고 있다. 나무높이가 20m가 훌쩍 넘고, 둘레가 750㎝나 된다.


                            ▲거돈사지 당간지주.


절터 아래 옛 정산분교 자리에는 완성되지 않은 거대한 당간지주 하나가 옆으로 누워있다. 원래 두 짝으로 있어야 하는데, 한 쪽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 설명이 없고, 누워있는 다른 한쪽은 짝 잃은 외기러기마냥 처량하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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