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조정지댐이 만든 인공호수 ‘탄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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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조정지댐이 만든 인공호수 ‘탄금호’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34)
  • 기사등록 2022-04-03 07:00:36
  • 기사수정 2023-12-23 21: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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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달천과 남한강의 퇴적물에 의해 만들어진 하중도 습지인 ‘용섬’에는 숲이 우거진다.


열두대에서 바라봤던 용섬은 장방형으로 길게 늘어진 형태인데, 여러 초본류들이 서식하는 새로운 자연생태계를 이뤄 안정된 정취를 느끼게 한다.


                                     ▲탄금대교.


용섬을 뒤로하며 달천 하구를 가로지르는 탄금교를 건넌다. 탄금교 옆으로는 중앙탑면·노은면·앙성면과 충주 시내를 연결하는 국가지원지방도 82호선 구간으로 1977년에 완공된 탄금대교가 한껏 멋을 부린다. 달천과 합수되는 남한강은 탄금호(彈琴湖)를 이룬다.


                                      ▲탄금호.


탄금호는 1985년에 충주댐과 함께 건설된 조정지(調整池)댐으로 인해 형성된 인공호수다. 원래 특별한 명칭 없이 그냥 ‘조정지호’라고 불리다가 2004년 충주시가 시민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통해 호수 이름을 탄금호(彈琴湖)로 정하고, 2004년 8월 4일에 명명식까지 열었다. 호수를 끼고 명승지 탄금대가 있어 탄금호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 같다. 수면을 가로지르는 수상스키의 모습은 시원스럽다.


탄금교를 건너 1㎞쯤 걸으면 중앙탑면의 첫 마을 창동리다. 창동리에는 고려시대의 석탑과 석불, 마애불 등이 남아 있다. 창동리 마애불은 입구를 지나 언덕에 올라 강가로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을 딛고 내려가면 남한강과 맞닿은 암벽 4m 높이에 새겨져 동남향을 향하고 있다. 불상의 중앙부분이 붉은 색을 띠고 있는데, 이는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장군의 피눈물이라는 전설이 있다. 호방하고 근엄한 표정과 거친 표현이 전형적인 고려시대 마애불로 남한강 뱃길을 오가는 이들의 안녕을 염원하는 듯하다.


다시 가파른 계단을 기어 올라오면 가까운 곳에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과 석조약사여래입상이 나란히 서 있다. 창동리 오층석탑과 석조약사여래입상도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석조약사여래입상은 커다란 돌에 약합을 들고 서 있는 약사여래를 새긴 것으로 후덕한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오층석탑은 두툼한 2층 기단 위에 갸름한 탑신부를 세워 마치 다른 두 석물을 올려놓은 것 같다. 석탑은 인근 폐사지에서, 약사여래입상은 인근 폐광에서 발견된 것을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탄금호 순환자전거길.


창동리 오층석탑에서 하류로 조금 내려오면 탄금호 순환자전거길이 부교(浮橋)처럼 길게 나 있다. 일렁이는 파도를 따라 내 마음도 일렁이며 물 위를 걸어가듯 발걸음도 사뿐하다. 탄금호에서는 2013년 8월 25일에서 9월 1일까지 ‘제42회 세계조정선수권 대회’가 국제조정연맹(FISA) 주관으로 열렸다. 그 후 이곳은 조정경기 대표 선수뿐 아니라 전국 조정팀들의 전지 훈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호수 너머 호반에는 ‘대한민국 중심고을 충주’라는 푯말이 자랑처럼 서 있다. 충청도의 북동부에 위치한 ‘충주(忠州)’는 국토의 중앙에 위치한다고 해서 중원(中原)으로 불리었다.


중원이란 명칭은 1995년 충주시와 중원군이 도농통폐합 될 때까지 이어져 왔다. 충청도의 ‘충(忠)’자도 충주에서 따왔다.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살아온 유적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남한강과 달천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산업도 농업과 공업이 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관광산업도 한 몫 한다.


탄금호 순환자전거길 끝에는 충주박물관과 탑평리 7층 석탑이 중앙탑사직공원 안에 있다. 충주박물관은 중원문화권 중심부에 자리 잡았다. 시민들이 기증한 유물을 모아 1986년 유물전시관으로 출발해 1990년 박물관으로 승격했고, 2004년 11월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기증된 유물과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충주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준다. 야외전시실에서는 지역의 흩어져 있던 석조유물과 충주댐 수몰지역에 있던 석조유물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탑평리 7층 석탑은 신라석탑 중 유일한 7층 석탑으로 중원문화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국토의 중앙에 세워져 ‘중앙탑’으로 부른다.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으나, 대체로 8세기 후반∼9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다. 탑의 높이는 12.95m 정도로 상당히 높으나 너비가 비교적 좁아 안정감 보다는 상승감이 두드러진 탑이다. 1917년 해체·복원 시 훼손된 고서류와 구리거울, 은제사리함 등이 나왔는데, 구리거울은 고려시대 것으로 밝혀졌다. 이 탑은 여러 차례 해체·복원과정에서 원형과 달라진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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