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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함지박 만들며 일군 ‘고현마을’​ 2023-04-08 09:45
금강 천리 길을 걷노라면(12)

【에코저널=서울】오늘 금강 걷기 출발한 곳(옥천군 동이면)은 ‘금강하구둑으로부터 226㎞’ 지점이다. 금강을 가로지르는 경부선고속도로다리 위로는 세상을 바쁘게 살아가는 자동차들이 바삐 달린다.

분명 우리는 하류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는데,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강물을 거꾸로 흐르게 하는 착시현상을 일으켜 상류로 가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어선은 아직 출어할 시간이 안 되어서 그런지 불어오는 바람과 한가로운 유희(遊戱)를 한다.

살랑거리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하류 쪽으로 나아가니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 톨게이트가 나온다. 이곳은 휴게소이면서 금강유원지나 강변도로를 따라 드나드는 길목으로, 휴일이면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초기 고속도로 공사 중 가장 난공사가 많아 희생자도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 상행선 쪽 휴게소 인근에는 당시 희생되신 77분의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휴게소 입구의 무궁화도 활짝 피어 산업의 동맥을 건설하시다 희생하신 영령들의 명복을 비는 것 같다.

금강휴게소와 금강유원지 사이에는 자동차와 사람이 왕래할 수 있는 보(洑)가 설치돼 있다. 그러나 이 시설은 물고기가 왕래할 수 있는 어도(魚道)가 보이지 않는다. 더 알아보니 전력을 생산하는 ‘금강소수력발전소’라고 한다.

▲금강소수력발전소. 끝에 3개의 발전기가 있다.

전력 생산량이 얼마이고 산업에 기여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곳 주민들은 환경파괴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속의 생명들도 자유롭게 물길을 따라 소통할 수 있는 시설이 하루빨리 설치됐으면 한다.

한낮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아스팔트 복사열도 뜨거워 지지만 엊그제 불볕더위에 비하면 아주 양반이다. 강물은 때론 큰 여울을 만들며 급하게 휘돌아 가고, 어느 때는 정중동(靜中動)의 모습으로 아주 편안하게 다가온다. 산과 산 사이의 협곡을 지나는 금강은 물길이 닿는 곳마다 비단 수(繡)를 만들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보청천이 합류하는 원당교에서 오전을 마무리한다.

▲고현(높은벌 또는 높은벼루) 마을.​

오후에는 밑으로 지나쳤던 고현(高峴) 마을로 올라간다. 지도상에는 옥천군 청성면 고당리 ‘높은벌마을’ 또는 ‘높은벼루마을’로 표시되는데, 이는 고현마을의 토종이름 같다. 천상에서 하강하다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산언저리에 정착한 마을 ‘높은 벌∼’ 10여 가구가 층층계단을 이뤄 금강의 역사를 굽어보는 ‘높은 벼루∼’ 마을 주변에는 옻나무와 호두나무가 많고 순을 나물로 먹는 참죽나무가 많이 있다.

이 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유씨 성을 가진 사람이 피난을 와서 함지박을 만들면서 마을을 일궜다는 설이 있다. 워낙 고지대에 위치하기 때문에 논도 없어 손바닥만한 밭에 산도(山稻)를 심어 가끔 쌀 구경을 했다고도 한다. 산 넘어 전답을 사서 “이른 새벽에 고개를 넘어갔다가 어둠이 짙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없어 지금도 아이들 얼굴 잘 몰라”라는 말이 남아 있다고 한다. <신정일의 ‘금강역사 문화탐사 중에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콩과 보리 등 잡곡류는 영동군 심천장터에 꽤나 유명했다고 한다. 고현마을 사람들이 장에 나가지 않으면 장이 서질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마을을 둘러보고 원당교 쪽으로 내려오는 길목에는 대추와 밤 그리고 감 등 제사상에 필히 올라가는 조율시(棗栗枾) 3실과(實果)가 살을 찌우며 제법 모양새를 갖춰 가고 있다.

대추(棗)는 꽃이 핀 자리에는 틀림없이 열매가 맺힌다고 해서 후손의 번창을 의미하기 때문에 제사상에 제일 앞자리에 올려놓는다. 밤(栗)은 씨 밤이 싹이 나면 그 나무가 생명을 다할 때까지 뿌리에 붙어 운명을 같이해 ‘후손을 지극히 사랑’하는 조상을 의미하며, 사당의 위패도 밤나무로 만든다. 감(柿)은 어떤 씨를 심어도 싹이 나면 고욤이 되기 때문에, 좋은 감이 되려면 필히 접을 붙여야 해서 후손으로 태어났으면 감과 같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해 큰 인물이 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도로변으로 나와 합금마을 쪽으로 내려간다. 옛 기록이 없어 왜 합금마을이 됐는지 알 길은 없지만 1929년 행정구역 개편 시 청성면에 소속되면서 합금리가 됐다. 원래 ‘윗쇠대’와 ‘아랫쇠대’로 불리었는데 ‘쇠’자를 한자로 쇠금(金)자를 쓰면서 상금과 하금으로 부르게 됐으며, 이를 합쳐 합금리가 된 것 같다. 길 옹벽에는 아름다운 조형물로 장식을 예쁘게 해서 보기 좋았고, 길옆 경관 좋은 곳에는 팬션과 민박 등 가족단위로 와서 쉬어 갈 수 있는 시설들이 있다.

▲제신탑.

합금리에서 청마교를 건너 청마리 마티마을로 간다. 이 마을에는 충청북도 민속문화재 제1호인 제신당(祭神堂)이 있다. 이 제신당은 마한(馬韓) 시대부터 마을 경계 표시의 수문신(守門神)으로서 풍수상의 액막이 구실을 했다. 바닥지름 5m, 높이 5m의 원추형돌탑 모양의 제신탑(祭神塔)과 솟대, 장승, 산신당 등 4가지의 복합적인 문화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 탑을 풍년과 마을의 평안을 비는 신앙성표(信仰聖標)로 믿고 있다.

솟대는 높이 약5m의 장대 끝에 새 모양을 만들어 올려놓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간(神竿)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장승은 통나무에 사람의 모습을 먹으로 그려 놓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고, 산신당(山神堂)은 뒷산 소나무를 신목(神木)으로 모신 자연신(自然神) 형태를 띠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초에 택일해 생기복덕(生氣福德)에 맞는 제주(祭主)를 뽑아 산신제를 올린다고 한다. 솟대와 장승은 4년마다 윤달이 드는 해에 새로 세우는데, 이때 신을 보내고 맞아들이는 굿으로 농악을 올린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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