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09월23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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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천리 길을 걷노라면(3)

【에코저널=서울】타루각을 나와 다시 금강을 따라 앞으로 나아간다. 물이 얕은 하천에서는 1급수에서만 산다는 다슬기를 채취하는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너와로 지붕이 된 효자정문(孝子旌門)도 보이고, 멀리 익산∼장수 간 고속도로 고가다리가 보인다. 고가다리에서 가까운 곳에는 장미를 집단 제배하는 대규모 온실이 자리한다.

천천면 춘송리 도로변 그늘에서 지인이 사준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식히며 숨을 돌린다. 마을을 가로질러 13번 국도를 따라 금강과 장계천이 만나는 용광삼거리를 거쳐 진안 쪽으로 가는데 천천1교 부근에는 벼락을 맞았는지 하늘로 솟구치지 못하고, 가지를 땅을 향해 밑으로 축 늘어뜨린 수령 300년 된 소나무가 외롭게 서 있다.

포장이 잘된 국도를 따라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나 걸어가는 사람이나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우거진 녹음이 피로감을 늦춰주는 것 같다. 가을이면 제철 맛을 전해주는 다래 넝쿨 꽃이 잎 사이로 수줍게 얼굴을 내민다. 해가 옆으로 더 기울기 전인 천천면 오봉리 쌍암마을에서 오늘을 마감한다.

새벽에 몇 방울의 비가 떨어지다 그친다. 쌍암마을에 도착해 새로 내는 길을 따라 하천 제방으로 들어선다. 앞서가던 일행 일부는 하천의 바위를 따라 들어갔으나 그중 일부는 제방으로 되돌아 나오고 일부는 길을 만들며 전진한다. 나는 언덕 위로 난 길을 따라 우회하다가 논둑으로 들어서서 제방까지 나오는데, 풀 섶이 우거진 가파른 옹벽을 타고 어렵게 내려와 물길 사이가 넓은 보를 건너 726번 지방도로로 나온다.

▲평지마을 보호수인 느티나무.

다시 726번 지방도로를 따라 하류로 조금 내려오니 ‘하늘내들꽃마을’이 나오고, 하천 건너 녹음이 짙은 숲에는 백로가 한가로이 휴식을 즐긴다. 길옆의 감자밭에는 자색 꽃이 환하게 피었고, 평지마을 입구에는 금강을 향해 허리가 90°로 굽은 느티나무가 당산을 지킨다.

하류로 더 내려와 연화교를 건너 천천면 연평리 연화마을이 나온다. 연화마을 뒷산은 ‘청나라사람 변발’한 것처럼 숲의 피부를 벗겨버렸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수종을 개량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그러나 숲의 생태를 망가뜨리면서 해야 할 긴박한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 안에서 평화롭게 살던 수많은 생명들은 어찌하란 말인가? 인간 위주로 생각하지 말고, 하찮은 생명일지라도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행정을 집행한다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연화마을 뒤 언덕에는 연파정(蓮坡亭)이란 정자가 있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들어가는 입구가 잡초로 막혔다. 더듬더듬 찾아 들어가 건물을 보니 빛바랜 현판만 보인다. 원래 정자(亭子)란 산천경치가 좋은 곳에서 주변 경치를 감상하고 풍류를 즐기며 쉬기 위해 지은 건물로 여유로운 사람들의 쉼터다. 그러나 금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처음 맞이하는 정자라서 그런지 반갑다. 연화마을 어느 집 울타리에는 낮달맞이 꽃이 화사하게 피었는데, 그 옆의 홑잎 장미가 더 화려하고 매력적이다.

다시 연화교를 건너 하천을 따라 하류로 계속 걸어간다. 도로를 우로 돌아 꺾어지는 외진 곳에는 양산 같은 모양의 한그루의 소나무가 외롭게 서 있다. 가막교를 건너기 전 신기마을에는 ‘우리의 전통과 예절을 교육’하는 장수 명륜학당 표지판이 보인다. 가막교를 건너며 위쪽으로 보이는 단애는 한 폭의 동양화다.

▲​​죽도를 조망하는 단애.

가막교를 막 건너니 전북 진안 땅(진안읍 가막리)이다. 지방도로 49번을 따라 천반산자연휴양림 입구를 약2㎞ 이상 지점을 가막리에서 진안군 수동면 상전리 산 13번지 지점까지 버스로 이동해 절벽 위로 올라간다. 그 강의 단애(斷崖)도 영월 동강 못지않다. 우선 정면으로 보이는 천반산(千盤山, 647m)의 서북으로 뻗은 모습은 한반도 지형의 반대형상이다.

▲죽도 전경.

구량천(九良川)과 금강이 산지 사이를 휘돌아 돌며 감입곡류(嵌入曲流) 형상으로 섬 같이 되어버린 죽도(竹島)가 한 눈으로 쏙 들어온다. 죽도는 조선조 선조 22년(1589년)에 일어난 조선 최대의 당쟁비극인 기축옥사(己丑獄死)의 주인공 정여립(鄭汝立)이 최후로 맞이한 곳이다. 사건의 전말이나 진위여부를 떠나서 이 사건으로 정여립 본인과 반역(叛逆)의 고장으로 인식되어 인재등용에서 배제된 호남지방의 전체로 보아 비극의 역사임에는 틀림없다.

두 귀를 쫑긋하며 반갑게 맞이하는 마이산을 바라보며 진안읍내로 이동해 점심식사 후 ‘인삼의 고장’으로 각광받고 있는 진안재래시장을 잠시 둘러보고, 용담호 주변인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에 있는 천황사로 간다.

천황사(天皇寺)는 신라 헌강왕 원년(875년)에 무염(無染)스님이 처음 세웠으며,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다시 세웠다. 대웅전의 단청은 퇴색해 빛바랜 자연목 색조를 띄고 있다. 입구에는 수령 800년이 넘은 전나무가 흘러간 세월을 대변한다.

용담댐으로 수몰된 지역민들의 한을 담은 ‘용담망향의 동산’에는 3층 팔각정이 우뚝하고, 운장산 밑으로 도수(導水)터널을 뚫어 용담호 물을 만경강으로 퍼 나르는 취수탑이 멀리 보인다. “우리고장·용담, 울 가슴에 묻고서”로 시작하는 ‘망향의 노래비’가 망향탑과 함께 서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영조 28년(1752년) 현령(縣令) 홍석(洪錫)이 세운 태고정(太古亭)이 용담호 수몰지역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이전해 세워졌다. 수몰지역 안에 있던 지석묘군도 태고정 옆으로 이전했다.

용담다목적댐은 일제강점기에 검토됐으나, 해방 후 1990년에 공사를 시작해 2001년 10월에 준공됐다. 용담호의 물은 도수터널을 통해 만경강으로 보내져 전주, 군산, 익산 등지의 생활·공업·농업용수뿐만 아니라 수력을 이용한 전력도 생산하고 있다. 용담댐 앞을 지나 섬바위로 이동한다.

천년송을 머리에 이고 강바닥에서 솟아오른 것 같은 섬바위는 금강을 흐르는 온갖 역사와 풍상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물살은 잔잔해 숨소리조차 내기 힘들 정도로 수면이 너무 고요하다. 마치 수도승이 기도하는 절간처럼 조용한 명상의 강이다.

폭이 좁은 여울을 지날 때는 맑은 소리로 자연을 노래한다. 강변을 따라 때론 부드럽게 때론 가파르게 오솔길을 따라가노라면 녹음이 우거진 숲속에서 짝을 찾는 뻐꾸기 노래하고, 햇빛에 반짝이는 물비늘은 밤하늘의 은하수 같다.

감동실개천공원에서는 잠시 탁족(濯足)을 하며 어제 뜬봉샘부터 감동마을까지 걸어오며 쌓인 피로를 한 방에 확 날려버린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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