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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과 쫄병 2005-10-08 10:10
초등학교 시절의 일이다. 운동장에서 같은 반 아이들과 '달리기'하면서 힘을 다해 앞서 뛰어 가는데 어느 순간, 뒤에서 합창소리가 들렸다.

"앞에 가는 사람은 '도독놈', 뒤에 가는 사람은 '순사'." 뒤돌아다보니 후위 그룹을 형성하던 친구들이 전혀 뛸 생각은 않고 일렬로 서서 웃으면서 한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앞장섰던 몇몇은 갑자기 뛰는 것을 포기하고 머쓱해하면서 뒤로돌아 어슬렁어슬렁 후위그룹 아이들을 향해 걸어갔었다. 어린 나이에 비록 장난일지언정 '도둑놈' 소리는 듣기 싫었던 모양이다.

긴칼을 옆에 차고 매서운 눈초리로 거리를 활보하며, 순사가 활개치던 일제시대의 잔재였을까? 아니면 오랜 세월을 더불어 농사지으며 살아온 우리의 민족성 때문이였을까? 우리세대는 앞에 달려나가면서도 항상 양옆과 뒤를 눈치를 살펴야 했던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이민 와서 살면서 나에게는 진심 어린 충고나 쓴 소리 할 사람이 없어졌다. 크게 눈치보며 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처음 이민 와서는 남 눈치 안보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모른다. 단지,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아내의 충고라는 미명의 잔소리. 오랜세월 남 의식하던 삶에 길들여진 나는 언제부턴지 아내의 한마디 한마디에 울고 웃는 사람이 됐다.

며칠전 추석 때의 일이다. 갑자기 나는 작은딸아이로부터 강한 항의를 받았다. "아빠 제가 거북이모양으로 만든 송편 아빠가 잡수셨죠?" "제가 학교 가면서 그 거북이 모양으로 만든 송편은 잡수시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잖아요, 아빠 너무해요! 너무해!". 작은딸의 항의는 물론이려니와 큰딸과 아내의 나를 쳐다보는 모양새가 마치 내가 이미 다 먹고 소화까지 시킨 뒤 '왜 오리발을 내미느냐' 하는 눈치였다.

요즘 들어 가물거리는 기억대문에 자신감마저 상실한 나는 “"글쎄다 기억이 가물가물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내가 먹은 것 같기도 하다"고 답했다. 가족의 기세에 눌려 서둘러 답해야 했는데 문제의 송편은 잠시 후 냉장고에서 발견돼 나의 결백은 증명됐다.

아내가 나를 추켜세우며 "당신은 천재예요 천재"할 때는 마치 내가 오래 전부터 완벽한 천재였다는 듯이 마냥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반면 "남들이 당신한테 차마 말을 못해서 그렇지 당신 얼마나 답답한지 알아요" 저나 되니까 데리구 사는 거예요"라고 아내가 말할 때는 어느 틈에 나는 바보가 돼 옛날 소시적부터 가까이는 최근에 있었던 나의 바보스런 행동을 떠올리며 정말 바보가 된다.

내 유년시절의 아이들이 또 달리기를 한다. 이번에는 여럿이 앞장을 서고, 나를 포함한 몇몇은 '도둑이 아닌 순사'로 남고 싶어 일부러 천천히 달린다. 앞에 있던 아이들이 다시 합창을 한다. "앞에 가는 사람은 대장, 뒤에 오는 사람은 쫄병".

"으악∼∼", 도둑이 싫었던, 그래서 일부러 어슬렁거렸던 우리들은 다수에 의해 졸지에 쫄병이 됐다.


<캐나다 캘거리=이병구> byungkoo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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