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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을, 어느 여학생 생각하며 쓴 시. 2005-08-29 02:57
며칠 전까지만 해도 숨통을 죄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이제는 제법 선선합니다. 특히 새벽녘에는 싸늘한 기운이 창틈으로 스며들어 몸을 움츠리게 만듭니다. 참 신기하기도 합니다. 8월 중순만 되면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한 순간에 가을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여름과 가을의 경계가 마치 하루 만에 무너지듯이 말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오마이뉴스> 여러 시민기자들이 가을 느낌, 분위기가 나는 풍경사진과 함께 올린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첫가을을 맞는 사람들의 심정이 싱숭생숭 한 것 같습니다. 글 가운데 가을에 대한 그들의 설레는 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누구라도 시인이 되고 싶어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름내 하늘을 가득 메웠던 너르고 빡빡한 플라타너스 잎에 한 둘씩 구멍이 생기고 이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이면 왠지 가슴이 허전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 서늘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그런 느낌을 한층 더 고조시키게 마련이지요. 이런 느낌들을 글로 옮겨 놓으면 한편의 시가 되기도 하지요.

십수 년 전 시집 한 권 가슴에 끼고 낙엽이 내리는 캠퍼스를 거닐며 시인 또는 문학도를 꿈꾸는 대학생들이 많았지요. 또 이러한 대학생들의 모습을 동경하고 부러워하던 감수성이 풍부한 여고생들의 모습도 종종 보았습니다. 주로 가을에 일어났던 현상이었습니다.

저도 한때는 그랬습니다. 학창 시절 시와 인생을 맞바꾸려고 마음을 먹을 만큼 시에 대한 열정이 강한 저였습니다. 당시에는 열심히 습작을 한다고 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역시 어휘 나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마음에, 그저 감상에 젖어 그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써 내려갔으니 의미 있는 시가 나올 리가 없겠지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시를 쓰는 동안 마음은 설렜고 시에서 나오는 맨 마지막 구절 ‘아모르(큐피드)의 화살’이 내 안에 꽂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는 것입니다. 혼자 좋아하는 한 여학생을 생각하며, 무엇인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시를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여학생만 보면 가슴이 터질 정도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던 그 시절.

아마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도 많으리라 봅니다. 한편의 시를 읽으면서 그 아련한 추억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때 그 여학생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가을의 서정곡

들꽃의 이름을 찾아 가으내 헤매던 길가
첫가을 그 길은 우수수 사각거림으로
잠겨버리고
고개 들어 정열적으로 그러나 서서히 다가오는
산은 머다랗기만 합니다
가을의 깊이를 알 수 있는 낙엽이
차곡차곡 쌓이고
여름내 머츰했던 추억이 바스대고 있습니다
단풍과 하늘 사이를 긋는 아찔한 거미의 앙상블
가을의 좁은 틈새로 나래를 펴려는
티티새의 몸부림
비상할 수 있게 가을 속으로
밀어 넣어 주고 싶습니다
켜켜이 하늘을 나누는 나무의 마른 손짓
뒷배경 한 컷씩 열어주는
플라타너스의 너른 잎
저 잎이 다 떨어져야 노을을 볼 수 있는 이 자리에는
벤치가 있어 살아가는 의미를 사는 플라타너스와 연인이 있어
외롭지 않은 벤치가 호젓합니다
해질 결 여우비 살짝 가을을 적시고
젖을 가을 이슥토록 여우별이 샛눈으로 샐긋거리면
귓가에 나의 별 이야기 밤새 소곤대던 그대
세상이 너울너울 보이는 것은 눈물이 듣기보다는
그대 영상 내 가을의 창에 텅 스쳐 지나기 때문입니다

샐녘
고독하게 놓인 어둠의 정물처럼
가을보다 더 도드라진 그루터기에 앉아
아모르의 화살이 내 안에 꽃힐날을 기다립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윤태 기자 yuntae@eco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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