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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와트의 추억 2007-03-31 22:32

문득 10여년전 필리핀과학자 친구가 한국에 왔다가 공항의 택시기사에게 바가지요금문제로 한참 싸웠다는 말이 생각이 났다.

씨엠립 공항은 무척이나 무더웠다. 마침 우리가 도착한 시기가 3월 중순이라서 한국이 아직도 쌀쌀한 날씨일때여서 일까 새벽에 도착항 공항의 무더운 날씨는 한편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비자신청을 위해 길게 늘어선 공항의 줄, 웃돈을 줘야만 통과되는 공항관문은 그 나라의 경제상황을 큰소리로 말해 주는 듯 했다. 우리도 불과 얼마전에는 그랬던거 아니었나? 하여튼간에 좀 짜증스러웠던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친절한 가이드가 붙은 버스안은 우리의 짧은 여행기간동안의 안식처였다. 비록 한국의 어느 유치원에서 사용했던 통학용 대형버스안에는 무엇보다도 시원한 에어컨이 있고 차가운 생수를 마실 수 있었다. 국내에 일부 경공업을 제외하고는 제조 기반시설이 충분하지 못한 이곳은 거의 대부분의 것들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의 씨엠립시 인근에 위치한 대표적인 사원유적지중의 하나다. 실지로 이 부근에는 많은 사원유적지가 있는데 건축은 14세기후반 크메르족에 의해 건설됐으며, 크메르족은 당시 유명한 왕과 왕족이 죽으면 사원을 짓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왕이 바뀔때마다 큰 사원을 지은 것을 보면 자신의 권력이 신으로부터 온것이라는 핑계로 우매한 국민들을 호도하기 위한 것이었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하게 했다. 따라서 미루어 짐작컨대 새로이 군주자리를 차지하게 된 사람은 그 전의 군주보다도 더 큰 사원을 만들어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어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그 규모의 방대함은 방문자 모두를 놀라게 함에 충분하였고, 그 더운 날씨에 축조공사에 동원돼 피와 땀 그리고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바쳐가며 만들었을 많은 백성들의 노력을 생각하게 했다.

역시 불가사의한 유적인 것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유적이라 하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불가사의유적 = 주변백성들의 피와 땀 그리고 많은 희생) 이런 공식이 성립하지 않을까?

열대우림지역에 건설된 초 대규모 사원들은 오랜 내전과 전쟁으로 방치돼 또다시 열대식물들의 침범을 받아야 했다. 세월의 흔적과 자연의 위대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었던 부서져가는 사원의 모습은 차라리 웅장하기까지 했다. 인간이 축조한 작은 건축물 앞의 대자연은 그 커다란 에너지로 감싸 안은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어느 날 갑자기 역사 속으로 사라진 버린 앙코르 왕국의 멸망 원인을 싸고 학자들은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역사학자는 1431년 샴족의 침공으로 철저하게 파괴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혹자는 노예들의 반란이나 전염병을 이유로 들기도 하나 그 어떤 설명도 앙코르의 미스터리를 명쾌하게 밝혀주지는 못한다.

글쎄 나의 관심사는 그들의 멸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암울한 캄보디아의 현대사에 있었다. 영화 킬링필드의 역사현장, 실지 역사이기도 한 이곳은 왜 이렇게 못살게 되었을까? 국민의 약 3분의 1을 죽인 킬링필드의 주역 폴포트는 그가 꿈꾸어온 유토피아를 끝내 건설하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교사출신의 그가 유토피아와 같은 환상적인 세계를 꿈꾸며 이루어 보겠다고 저지른 무모한 개혁은 캄보디아를 후진국으로 내몰게 된 큰 원인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의 고향에서는 영웅대접을 받는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지긋지긋한 권력투쟁에 기인한 내전은 국민들에게 무엇을 안겨 주었는가. 자신의 목숨 보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였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살아야 되는 그들의 삶이란 어디에 기원하는가. 많은 원인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도층의 끊임없는 권력투쟁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나 싶었다. 군주의 힘이 이렇게도 위대한 것인가 군주의 노력이 하위백성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피부로 실감하게 해주는 역사 교육현장으로 인식되어졌다.

갑자기 열심히 일기를 쓰는 중학교 2학년짜리 아들의 일기가 보고 싶어졌다. 아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공학박사 이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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