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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낳기까지 이렇게 힘들어요 2005-04-27 14:06
아내의 몸이 무거워지면서 일상생활이 꽤 불편해졌다. 계단을 오를 때면 숨이 턱까지 차서 헐떡거린다. 평소 운동을 안 해서 더 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확인된 것이 아니라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저 몸이 무겁기 때문에 그렇다고 치부할 수밖에.

아내는 하룻밤 사이 평균 네 번 정도 화장실에 간다. 태아가 커지면서 아내의 방광을 누르기 때문이다. 아내는 화장실에서 물을 내리면서 또 소변이 마렵다고 할 정도이다. 몸만 뒤척여도 잠을 깰 정도로 민감한 나는 아내를 따라 서너 번 깬다.

아내는 다리에 수시로 쥐가 나고 저리단다. 임신을 하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현상이지만 아내는 너무 괴로워하는 것 같다. 잘 자다가도 갑자기 깨서 “아이구, 다리야”라고 소리를 지르고 고통스러워할 때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판단이 안돼서 당황스럽다.

나는 비몽사몽간에 아내의 다리를 주무르지만 금세 나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손을 대면 쥐가 심해지거나 다리 근육이 경련을 일으켜 더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그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은 시간이 흘러가기만 기다리는 것뿐이다.

또 하나 아내를 괴롭히는 것은 배가 딴딴해지면서 뭉치는 현상 즉 ‘가진통’이다. 이것은 진짜 진통에 대비한 예비 훈련 같은 것으로 어느 정도 배가 부른 임산부에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배뭉침(가진 통)은 하루에 많아봐야 대여섯 번 혹은 아예 없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아내는 적어도 스무 번 이상 배 뭉침을 일으킨다. 참 유난스러운 아내다.

배가 뭉치면 우선 옆으로 누워 배를 손으로 문질러 줘야한다. 이렇게 하면 딴딴한 배는 1분 이내로 풀어진다. 아내는 청소를 하거나 시금치를 다듬다가도 배가 뭉치면 바로 눕는다. 그럴 때면 처제와 나는 서둘러 담요를 끌어다 옆에 펴주며 아내를 부축해 눕히곤 한다. 하지만 회사나 지하철 등 밖에서는 배가 뭉쳐도 그냥 참을 수밖에 없다.

아내는 임신 후기에 접어들면서 점점 힘들어하고 있다. 시골 어머니와 통화하다가 집사람 몸이 이렇고 저렇고 말씀드리면 “걔는 왜 그런다냐? 나는 여섯 낳았지만 그런 거 전혀 없었다”고 하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세’를 떨만한 형편도 못된다.

아기를 낳아본 엄마들은 “정말 유별스럽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태아일기를 통해 글로 표현하자니 이를테면 그렇다는 거다. 여하튼 나는 아내가 집 밖에만 나가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잘 다닐 거라고 믿지만 다른 사람들 때문에 아내가 해를 입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비슷한 예를 들어 고속도로에서 나는 잘 달리고 있는데 옆에서 졸음운전 하던 사람이 사고를 내면서 몇 중 추돌이 일어나면 공연히 피해를 볼 수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아내는 난간을 잡고 천천히, 조심스레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옆 사람이 다리가 꼬여 넘어지면서 아내 쪽으로 쓰러진다면? 뭐, 기우일수도 있고 과민반응일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며 직장 생활을 하는 아내. 나와 같이 이런 배불뚝이 아내를 둔 남편이라면 누구나 이런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몇 가지 요령(?)을 알려준다. 밖에서 생활할 때 피곤하고 무거운 몸을 조금이라도 쉴 수 있는 방법이다.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고 좀 당황스럽기까지 한 방법일수도 있다.

“지하철에서 젊은 사람들 앞에 가서 배를 최대한 내밀고 ‘에구 허리야’ 하면 자리를 양보해줄지도 모르잖아.”

아내와 나는 한바탕 웃어버린다. 내가 가르쳐준 대로 행동을 할 아내도 아니지만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해도 자리를 양보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는 아내의 말에 씁쓸해진다. 어제 퇴근길 지하철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선릉에서 분당선 지하철을 탔는데 사람이 꽤 많았단다. 허리는 뻐근하고 배는 자꾸 뭉쳐와 자리에 앉았으면 좋겠는데 빈자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옆 칸으로 이동하니 다행히 노약자․장애인․임산부 보호석의 한자리가 비어 있어 우선 앉았단다.

그런데 다음 정류장에서 연세가 60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노약자석 앞으로 오시기에 아내는 벌떡 일어났단다. 순간 아내의 볼록한 배가 드러났고 할머니는 아내에게 그냥 앉으라고 했단다. 아내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할머니가 자꾸만 손을 잡고 끌어 마지못해 그 자리에 앉았단다.

아내는 할머니의 성의를 생각해 일단 앉은 후 다음 역에 정차할 쯤 자리를 양보해드릴 생각이었다고 한다. “할머니 저는 다 왔으니까 할머니 앉으세요” 라고 말하고 옆 칸으로 옮겨갈 생각이었는데 바로 옆에 있던 할머니께서 “할머니가 먼저지”라는 말씀을 하시더란다.

아내는 죄송하다며 얼른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쑥스럽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가능하면 노약자․장애인․임산부 보호석에는 앉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내게 말했다. 임산부보단 노약자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내의 어깨를 다독거린다.

“잘했어. 새롬이가 뱃속에서 그 마음과 양보하는 모습을 봤을 거야.”

아내는 웃으며 배를 문지른다. 마침 새롬이가 볼록볼록 꿈틀대고 있다. 엄마 아빠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 마음을 이해했는지….

* 이 글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윤태 기자 yuntae@eco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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