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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날씨가 수상하다! 2014-04-03 01:05
건기와 우기가 뒤바뀐 기후변화, 라오스人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건기에 내리고 있는 이 비, 火田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까?





◀이영란
(라오스 전문가)



【에코저널=서울】♠후드득 소리가 난다. 비다!
한밤 깜깜한 하늘이 으르렁거린다. 해 질 무렵부터 한국에서라면 영락없이 큰비를 몰고 올 바람이 불기도 했고 몇 번은 천둥소리까지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여기는 한창 건기의 절정기다. 어서 비님이 오셔서 세상 어디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기를 갈망하며, 비가 막 오기 시작하는 4월 중순을 삐마이(라오스 새해)로 정할만큼, 지금 3월 중순은 여기 라오스에서 가장 메마른 시절이다.


▲싸이냐부리 읍내 농사. 해가 기우는 시간까지 어린아이가 모내기하는 엄마를 돕고 있다.ⓒ이영란

기온이 아니라 강수량으로 계절을 구분할 만큼 라오스에서 건기라 함은 분명히 비가 오지 않는 때를 말한다.

그런데 후드득 후드득 소리가 난다. 비다!
"내일은 목이 좀 편안해지겠는걸. 빨래도 줄겠다"

일단 관광객의 마음, 발걸음마다 폴폴 올라와 바짓가랑이를 온통 붉게 만들어버리는 마른 흙먼지 걱정을 덮으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새벽녘 내 기침소리에 내가 잠이 깼다. 천식 기운이 있는 나는 라오스 건기의 텁텁한 공기에도 쉽게 반응하지만 그를 누그러뜨린 한밤의 소나기가 동시에 떨어뜨린 기온에도 금방 반응해 한국에선 겨울에나 보이는 증상을 나타낸 것이다.

♠기후변화 취약성, 재앙이다
하루 종일 공기는 맑았지만 하늘은 흐렸다. 점심나절에도 한 시간 가까이 떨어진 빗발에 먼지도 햇빛도 걱정 없이 밖에 나갈 수 있었지만 더위만 대비해 꾸려온 내 옷가지들 중에는 뚝 떨어진 기온에 적절하게 두를만한 것도 없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에어컨도 선풍기도 켤 일 없이, 창문도 닫아야 덜 추울까를 고민해야 했다.

그래, 여름에 춥다는 거, 건기에 비가 온다는 거, 알지 못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다면 또 알고 예상했더라도 옷이 없든가 우산 살 돈이 없다면, 나 정도의 낭패가 아니라 라오스 많은 사람들에겐 재앙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기후변화 취약성'이겠다.

2000년대 초반 석 달 가량 네팔과 인도를 돌아다녔었다. 첫 해외여행의 두려움이 좀 가시고 난 뒤 일반적인 여행경로를 벗어나 시골 버스터미널에서 또 다른 시골 버스터미널로 이동해 가며 네팔과 인도의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도시에서 그들은 기차역이든 터미널이든 흙바닥만 아니면 어디서나 살았다. 시골에서 그들은 야윈 나무든 낡은 천막이든 한 뼘 그늘만 만들 수 있으면 어디서나 살았다.

그들에겐 에어컨, 선풍기는 고사하고 바람과 먼지를 막을 변변한 벽 한 쪽도 없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나는 몰랐다. 그들이 얼마나 기후변화에 취약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인지 몰랐다.

영하로 내려가는 것도 아닌데 잠깐 동안의 저온현상으로 방글라데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사할 수도 있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했다. 영양실조가 단순한 배고픔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영향을 끼치는 어마무지한 질병이란 것을 몰랐듯이 말이다.

몇 해 전 여름, 라오스의 우기에 비가 많이 오지 않았다. 상수도 공급이 자주 끊기고 수력발전으로 공급되는 전기는 더 자주 끊겼다. 그럴 때마다 도시의 기능은 마비되었고 사람의 왕래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올 초, 라오스 중부 평야에 있는 수도 위양짠(Vientiane)의 기온이 섭씨 10도 이하로 내려간 날이 많았다. 보통 북부 산간에 있는 싸이냐부리(Xayaboury)도 최저기온이 13도 이하로 내려간 적은 없었다.

둘 다 일사병이나 열사병, 혹은 저체온으로 사람이 죽었다는 보도는 없었다. 그러나 신문방송들이 광고처럼 기고해오는 부고(訃告) 말고 고생스런 취재가 필요한 흉사는 거의 전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부분의 라오스 사람들이 알고 있다.

♠화전, 라오스에서는 일상
우리에게 24절기가 있듯이 라오스에도 굳이 책으로 배우지 않아도 알게 되는 절기들이 있다.

어느 때에 잡초와 잡목을 태우고 어느 때에 논을 갈고 어느 때에 못자리를 만들어 볍씨를 뿌리고 어느 때에 모내기를 하고 어느 때에 피사리를 하고 어느 때에 무논에선 물고기를 잡을 수 있고 어느 때에 추수를 하고 며칠을 벼이삭 채 말려 탈곡을 해야 하는지 말이다.

▲건기의 막바지엔 작은 하천들은 바닥까지 드러내곤 한다. 이 사진은 유역변경식 댐 건설로 출수로가 바뀜에 따라 말라붙어 버린 캄무안(Khamouane)지역의 하천 모습이다.ⓒ이영란

우리에겐 다소 특별한 농사 방식을 말하는 화전(火田)이 라오스에선 일상적이면서도 모든 농사에 필수적인 논밭두렁 태우기나 잡초 제거작업과 같은 까닭에 이때 비가 많이 와 화전을 못하게 되면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는 거다.

한편 우리에겐 거의 없어진 밭벼를 주곡으로 하는 산간 지역(신문에 나지 않으나 흉년이 들면 라오스의 많은 사람들이 아사자가 날 것을 염려하는 곳이다)은 그야말로 천수답인 까닭에 비가 와야 할 때 비가 오지 않으면 역시 한해 농사를 포기해야 한다.

쌀을 얻기 힘든 시기를 견디게 해주는 다른 곡물을 건기에 재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일단 우기의 비, 비가와야 할 때 오는 비다.?

천둥이 치고 밤새 비가 오고 하루 종일 하늘이 흐리고 낮에 소나기가 내리고. 사흘째다. 새로 산 두툼한 옷을 입고 깨끗이 씻긴 관광지를 둘러보는 여행자들에겐 날씨가 참 좋다.

그러나 마른 논밭에 산에 뭉게뭉게 연기를 뿜으며 까맣게 번져가던 불꽃들은 모두 꺼졌다.

남은 며칠이라도 비 내리기가 멈춰 화전을 온전히 할 수 있을까? 이건 예전의 '천수답', 하늘이 아니라 지금 '기후변화', 세계 사람들에게 달린 문제다.

<기사제휴-인사이트>
(http://www.insight.co.kr)

'씰리펀', 필장 이영란의 라오스 이름이다. 라오스어를 처음 배울 때 국립대학교 교수께서 지어주었다. '상서로운, 행운'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언뜻 상당히 세련된 느낌이지만 좀더 쉽게 뜻을 풀어보면 그야말로 순박한 이름 '복길이'다.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경실련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일했다.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으로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에야 라오스와 맺은 귀한 인연을 이어 무엇인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심하기 시작한 느림보다.





편집국 phj@eco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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