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7년 08월 17일  목요일
   즐겨찾기추가
   
  
 
 
 
 
 
 
 
 
 
 
 
기사검색
  

 
조수웅덩이, 안녕들하십니까? 2014-02-23 00:22


◀신동만
(KBS PD)


【에코저널=서울】거대한 바다는 생명들에게는 언제나 삶의 터전을 제공하고, 뱃사람들에게는 만선의 기쁨을 선사한다. 그래서 그 넓이만큼이나 무한하고 푸근해서 어머니의 품과 같다. 작은 빗방울과 깊은 산간 계곡의 샘물이 하나둘 모여 형성된 대양...

그런데 그 바다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새로운 세상이 그 언저리를 둘러싸고 있다.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경계부에 있으면서 바다이기도 하고 때로는 뭍이 되기도 하는 조간대다.

♠조수웅덩이, 작지만 큰 세계
이곳은 하루에 두 차례 밀물과 썰물이 교차한다. 수천, 수만 년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또 하나의 작은 공간이 만들었는데, 바로 조수웅덩이다.

육지에 있는 웅덩이는 장마철에 일시적으로 형성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논농사를 짓기 위해 물을 가둬두는 곳이다. 다른 말로 ‘둠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웅덩이가 커지면 저수지가 된다. 반면, 바닷가에 형성된 조수웅덩이는 바닥이 움푹 패여 조수에 따라 물이 고이기도 하고 마르기도 하는 독특한 공간이다.

▲제주 조수웅덩이. 무분별한 해안개발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이러한 조수웅덩이가 가장 잘 발달한 곳이 제주도 해안이다. 화산섬인 제주도는 화산활동의 영향으로 바닷가까지 다공질의 현무암이 깔려있다. 때로는 잘게 부서져 '먹돌'이 되기도 하지만 많은 곳에서는 바닷가 곳곳에 크고 작은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다.

제주 조수웅덩이는 있는 듯 없는 듯, 얼핏보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보잘 것 없어서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이 조수웅덩이는 알고 보면 화려하고 신비로운, 작지만 큰 세계가 펼쳐져 있다.

썰물 때는 딱딱하게 굳어서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던 거북손은 밀물이 들어오면 화려한 촉수를 내뻗으며 꽃이 된다. 이에 뒤질세라 꽃갯지렁이도 앞 다투어 촉수를 뽑아내며 먹이를 찾는다. 그 모습은 마치 봄기운을 머금고 피어나는 꽃처럼 아름답다.

♠바닷 속 생명들
파란갯민숭달팽이도 화려함으로 따지자면 이에 못지않다. 작은 웅덩이 안에 아름다운 빛깔과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는 다양한 생물들이 가득하다. 그 중 대표적인 어종이 바로 저울베도라치, 두줄베도라치를 비롯한 베도라치류다. 이들은 주로 바위 구멍이나 굴 껍질 안에 알을 낳는데, 알을 돌보는 쪽은 대부분의 물고기가 그렇듯 수컷이다.

베도라치 수컷은 여러 암컷의 알을 받아서 수정시킨 다음 자신이 정성껏 부화시킨다. 가끔은 육지에서 떠내려 온 병 속에 보금자리를 틀기도 한다.

▲알 지키는 '저울베도라치'. 조수웅덩이는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다.

조수웅덩이 속으로 들어가 보면 이외에도 무늬망둑, 집게, 군부, 고둥 등 다양한 생명들이 저마다의 몸짓으로 살아가는데, 마치 잘 꾸며 놓은 수족관 같다. 특히 군부나 고둥은 물이 한동안 빠져있으면 작은 물기를 부여잡고 죽은 듯 물이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건조한 상태에서도 한동안 견뎌낼 수 있는 그들만의 생존비법을 지녔다. 물과 뭍의 두 가지 특성을 모두 간직한 바위 조간대의 조수웅덩이는 지구상에서 생물종다양성이 가장 높은 곳 중의 하나다.

이처럼 제주 조수웅덩이의 생명력이 풍부한 이유는 육지와 바다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어서 육지와 바다 양쪽으로부터 영양성분이 유입되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에 여러 종이 살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망망대해의 넓은 바다도 알고 보면 그 시작은 언제나 연안, 그 중에서도 조수웅덩이이다. 바다 속에서도 플랑크톤이 형성돼 자체의 먹이사슬이 갖춰져 있긴 하지만 바다가 연안으로부터 영양분과 무기질을 끊임없이 공급받아야만 바다의 생명력은 유지될 수 있다. 우리가 제주 조수웅덩이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한다.

♠위험에 빠진 조수 웅덩이
보잘 것 없고 그간 주목하지 않았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무관심한 사이 캐나다에서 온 론 노즈워시는 제주 조수웅덩이의 종 다양성의 매력에 빠져 있다. 그에 의하면, 지난 10년 사이 제주의 조간대 생태가 급격하게 변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리고 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조간대는 생명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태풍, 해일과 같은 온갖 자연재해로부터 육지를 보호해 주는 방패막이 역할도 한다. 하지만 최근 제주도에 부는 개발 열풍은 조간대를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해안가는 파괴되고 그 대신 건물과 도로를 내기 위해 콘크리트로 벽을 만들었다. 제주항을 비롯 조간대가 파괴된 곳들은 태풍이 불어올 때마다 월파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자연의 에너지와 인공의 에너지가 맞장을 뜨면서 에너지의 힘은 더욱 커졌다. 만약 지진해일이나 필리핀을 덮친 슈퍼태풍이 제주도에 상륙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당장의 경제적 이익에만 매달려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해안개발은 제주도가 생겨나면서부터 지켜오고 있는 조수웅덩이의 뭇 생명들에 대한 잔인한 테러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인간 삶에 대한 파괴일 수도 있다. 그 위험성을 조금이라도 빨리 깨달을 수는 없는 것일까? 하루가 멀다 하고 하나 둘 사라져가는 제주 조수웅덩이는 지금 안녕하지 못하다.

<기사제휴-인사이트>
(http://www.insight.co.kr)

필자는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 독어독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경희대학교 대학원 생물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KBS PD(KBS파노라마 팀장)로 자연·환경 다큐 전문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2009년, 2013년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방송통신심의위), 2001년, 2003년, 2008년 이달의 PD상(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을 수상했다. KBS 파노라마 '비와 생명 2부작' 등 다수의 자연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편집국    

이 기사에 대한 소유권 및 저작권은 에코저널에 있으며 무단전재 및 변형, 무단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경우 법적 조치를 받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기사목록]  [인쇄]  [메일로 보내기]  [오탈자 신고]  [글자크기 ] [저장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