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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찌’야 정말 미안해! 2017-06-27 17:45






이승호 박사
(한국종합환경연구소 연구소장)




【에코저널=서울】요즘 길을  거닐다 보면 가로수 주변에 떨어진 콩보다 작은 검붉은 열매를 볼 수 있다. 이 열매는 간혹 주차된 차 위에 떨어지거나 지나가는 차량 바퀴에 밟혀 터지기도 한다. 때론 가로수 길을 지나가는 행인들 옷으로도 이 열매가 떨어지기도 하는데, 검붉은 물이 옷에 묻어 난감하게 된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검붉은 열매는 ‘버찌’라고 부르는 벚나무(Prunus serrulata var. spontanea) 열매다.

산이나 들에 벚나무가 자랐다면 열매는 당연히 부드러운 흙에 떨어졌을 것이다. 물론 떨어진 열매 일부는 벚나무로 성장하게 된다. 자연이 잘 보전된 지역에서 자랐다면 새가 열매를 먹은 후 씨앗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주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가 가로수로 심은 벚나무는 열매만 하염없이 바닥으로 떨어치고 있다. 불쌍하게도 우리가 본 버찌는 밟히고, 터지고, 버려지고 있다.

생명은 본디 그 생명을 이어가는 운명을 타고났지만, 인위적으로 심어둔 벚나무의 생명을 이어가는 씨앗은 도로위에 혹은 딱딱한 시멘트에 버려지고 있다. 버찌는 그 색깔이 하필 검붉은 색이라 더 처량하게 보인다.

우린 언제부터인가 무지막지하게 자연의 공간을 좁혀만 가고 있고, 인류가 편하도록 모든 것을 임의대로 바꾸고 있다. 자연과의 상의 없이 단지 건조한 건물을 늘려 생명의 씨앗이 내릴 수 없는 곳을 더 넓게 적극적으로 만들고 있다.


지금 도심에서 흙냄새를 제대로 맡을 곳이 있는 얼마나 되는 지 둘러보자. 도심에 생명이 자라는 공간을 느끼며, 서로 공존하고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이 과연 얼마나 있는지 살펴보자.


우리 주위엔 시멘트로 지어진 빌딩, 다양한 건물만 가득하다. 이런 곳에서 공존(共存), 공생(共生)을 몸소 배우고, 깨우치기에는 한계가 있다. 요즘 주변에서 일어나는 강력범죄들은 아마도 공존과 공생에 대한 사고(思考)가 턱없이 부족한데서 나오는 현상일 수 있다.

공존과 공생은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다. 흙과 그 속에서 어우러진 생명체들이 서로 의지(依支)하며 살아가는 과정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습득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연(自然)스럽다. 이것이 도심의 녹지공간을 늘려야하며, 자연의 공간을 늘려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모든 생명은 차고 딱딱한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가득한 삭막한 세상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생명의 본능이다.


경쟁으로만 둘러싸인 삭막한 사회가 부드럽고 따뜻해지려면 자연의 공간을 넓혀야 하며, 이제는 개발에 앞서서 자연에 먼저 물어봐야 한다. 자연을 몰아내는 우리들만의 생각이 아니라 자연에 공존하고 공생하는 자연의 생각 말이다.

더 늦기 전에, 자연속의 생명들이 더 떠나기 전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 환경과 인위적 바꿈이 자연 속에서 공생과 공존이 되도록 자연에게 물어보자.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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