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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아웃 2010-07-16 14:05
【에코저널=캘거리】"고모부 저 농구공 골대에 넣을 수 있어요!"

겨우내 학교 운동장을 뒤덮은 두툼한 눈 뭉치들이 연이은 햇빛 폭탄에 끽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사라지며, 푸른 초원에 자리를 물려주던 날. 모처럼 운동장으로 뛰쳐나온 나는 조카 승민이와 테니스장 한쪽 구석에 설치돼 있는 농구대로 향하고 있었다.

모든 교통수단을 동원해도 기껏해야 생활반경이 수 킬로를 벗어나기 힘들었던 내 어린 시절에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야 되는 새로운 나라는 상상 속의 세계로만 그치곤 했었다.

한국에서는 머나먼 곳 캐나다에 둥지를 튼 지 15년, 승민이네 가족의 방문은 우리 가정의 새로운 기쁨이었다. 또 승민이와의 농구공 놀이는 나를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고 있었다.

"아니 네가 그 키에 저 높은 농구대에 골을 넣을 수가 있다고? 아이고, 우리 승민이 대단하네 어디 한번 해봐"

그렇게 시작한 승민이의 농구공 넣기 시도는 계속되는 실패를 거듭해야만 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승민이가 높이에서나 힘에서나 부치기는 매한가지여서 나 역시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학교가 우리집 뒷마당인 나야, 밥만 먹으면 농구공을 갖고 노는 게 일인지라 쉽게 '골인'이 되곤 했다. 하지만, 승민이는 별로 해본 적도 없으니 더더욱 힘든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승민이 제깐에 힘껏 공을 던지는데도 불구, 볼이 골문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중간쯤에서, 약기운이 다한 폭죽모양 후줄근하게 떨어지곤 했다.

처음 몇 번은 쉽게 포기 하지 않고 열심히 공을 던지는 모습이 재미있어 지켜봐 주었다. 계속해 봐주기엔 인내심에 한계가 느껴져, 나는 슬며시 빠져나와 한쪽에서 축구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파랗던 하늘이 붉디붉은 빨간 장미빛에서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석양이 될 때까지 우리는 땀을 흘리며 제각기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승민이는 농구, 나는 축구.

"고모부 저 농구공 골대에 진짜 넣을 수 있어요!" 승민이와 내가 각자 축구공과 농구공을 갖고 공놀이에 열중하고 있던 어느 순간, 승민이가 나를 향해 큰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하룻 사이에 금방 될 리가 없는데" 고개를 갸우뚱하며 난 승민이가 이끄는 대로 농구대쪽으로 걸어갔다.

농구공을 골대에 던져 넣으려면 당연히 기본거리를 둬야 가능하련만, 승민이는 농구골대 바로 아래 정가운데로 성큼성큼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어떻게 하려는 속셈인지, 그동안 얼마나 연습을 한 걸까 궁금한 나는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드디어 그 상태에서, 농구골대 바로 밑에서 자리잡고 심호흡을 한 승민이. 나는 상상도 못했던 방법으로 공을 밑에서 위로, 힘차게 던져 올리고 있었다. 즉 '골아웃'을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습할 때엔 골대 중간쯤도 미치기도 전에 안간힘을 쓰다가 비실비실 떨어지던 공이, 그 순간 거짓말처럼 골대를 통과해 하늘 높이 솟구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야 승민아! 장하다. 네가 정말 해냈구나, 네 공이 골문을 빠져나갔어" 어린 승민이보다 난 더 흥분한 채 신이 나 있었다.

몇 십년 가까이 농구공을 만지던 나는 승민이의 새로운 방식으로 공을 넣는 것은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어린 조카가 내 앞에서 증명한 골은 엄밀히 말하자면 '골인'이 아니라 '골아웃'이었던 것이다. 골 바로 밑에서 안에서 밖으로 골을 성공시켰으니까 말이다.

"너는 정말 창의력이 뛰어난 아이구나. 대단하다" 연신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들의 발걸음은 함께 신나고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판에 박힌 고정관념을 깬다는 것,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에서 벗어났을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수 십년을 밖에서 안으로만 골을 성공시키는데 익숙해져 있는 내게, 승민이의 새로운 시도는 나에겐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승민아 너의 새로운 시도를 의아해하던 이 고모부를 너는 이해할 수 있겠니?, 네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농구공을 하늘로 높이 솟구치게 했을 때, 그리고 그 공이 정확하게 농구 골대를 통과해 허공에 떠있을 때, 나는 네게서 지금 내게 꼭 필요한 중요한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단다.

평생을 끊임없이 안으로만 끌어들이려고만 발버둥쳤던 내가, 이제는 밖으로 떨쳐 버릴 때가 됐다는 것. 내 안으로만 자꾸자꾸 움켜쥐고 안으로 끌어들이려고만 할 것(골인)이 아니라, 움켜쥐었던 손을 펴서 밖으로 던질 때가 된 것(골아웃)을 네가 알려주었단다.

네가 '골인'을 시키려고 애쓸 때 골대에 반쯤도 못 미치던 농구공이, 방법을 바꿔 '골아웃'을 시도하자 공이 하늘높이 치솟았던 것처럼, 나도 내남은 인생의 관심을 밖으로 돌렸을 때 새로운 능력과 더욱 커다란 성취감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승민아! 그때 그 순간 만큼은 너는 나의 아주 고마운 선생님이었단다"





이병구 byungkoo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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