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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와 이솝 우화 2006-10-30 11:58

북쪽의 핵실험으로 한껏 긴장이 고조된 한반도, 그 남쪽 대한민국에서는 요즘 이솝우화에서 힌트를 얻은 정책 하나를 놓고 참으로 말들이 많다.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 틀을 세우고, 노무현 정권이 계승했다는 햇볕 정책이 도마 위에 오른 그 주인공이다.

길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 위해서는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스한 햇볕이 필요함을 말하는 그 유명한 우화는 그 정책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인 셈이다. 2500여 년 전에 살았던 이솝이 쓴 이 짧은 우화 한 편이 한반도에서 이토록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어떻든 그 정책의 지지자들은,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대한민국은 북한에 대한 포용 정책으로 남북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비판자들은 남북이 상호주의에 따른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연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일방적인 포용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 정책을 두고 최근에 보기 좀 민망한 일이 벌어졌다.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지자, 노무현 대통령은 햇볕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고 토로했다.

그러자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 정책이 뭐가 잘못이냐고 준엄하게 따졌다. 아마도 무척 화가 났을 것이라 짐작된다. 이에 당황했는지 노무현 대통령은 며칠만에 태도를 슬며시 바꿨다. 그 정책의 계승자로 돌아간 것 같은 언행을 보인 것이다. 언제 또 슬몃슬몃 바뀔지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난감하고 혼란스럽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갈등이 두 전 현직 대통령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당과 야당,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을 비롯한 각계각층이 편갈라 칼날처럼 맞서고 있다.

갈등의 핵심은 물론 햇볕 정책이 끼친 영향에 대한 상반된 평가에서 찾을 수 있다. 서로 다른 그 평가들을 북한의 핵실험과 연관시켜 따져보면 대개 다음과 같은 세 갈래로 나뉜다.

1. 햇볕 정책은 실패했다. 이 잘못된 정책 탓에 북한이 핵실험까지 하게됐다.
2. 햇볕 정책은 옳다. 북한의 핵실험은 미국의 대북 정책 실패 탓이다.
3. 햇볕 정책은 없었다. 말로만 햇볕 정책 운운했지 실제로 그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은 탓에 북한은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와 함께 평가의 기준으로 사람들이 또 자주 입에 올리는 것이 '당근과 채찍' 비유다. 당근만 퍼주면서 채찍질은 소홀히 해서 문제가 생겼다느니, 채찍질을 가혹하게 하면서 당근은 주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느니 하는 따위의 말들이다.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나라에서 이런저런 의견들이 나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물론 자중지란, 대한민국 내부의 혼란과 분열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해지는 것은 막아야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생각은 자유지만 남북문제를 앞에 두고 먼저 우리가 근본적으로 따져봐야 할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냉철하게 따져보자. 과연 우리가 북한을 이솝 우화에 나오는 나그네에 비유하는 게 현실을 보는 올바른 눈일까? 현실에 대처하는 올바른 방법일까? 따스한 햇볕을 쬐어 주면, 나그네가 옷을 벗듯 북한은 대한민국의 의지에 순응할까?

북한을 두고,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쓰면 고분고분 따르는 말에 비유할 수 있을까? 북한은 과연 "남조선이 우리 북조선에게 당근과 채찍을 효과적으로 쓰기만 한다면 당신들이 원하는 길로 가겠다"고 할까?

고개가 저어진다. 그러한 기대는 주관의 늪에 빠져 있는 한 쪽의 희망 사항이자 일방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 제기가 햇볕 정책, 포용 정책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것이라고 항변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정책은 일방적으로 북한을 대한민국 체제로 끌어들이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화해하고 협력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햇볕과 바람'과 '나그네', '당근과 채찍'과 '말'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잘 따져보자. '나그네'와 '말'은 상대방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져 있지 않는가. 북한을 그런 수동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 일방적인 시각이라는 것이다.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의 그런 시각부터 교정해야 한다. 국제 관계에서 고립된 북한은 최근에도 '전 세계가 적'이라며 투쟁 의지를 곧추 세웠다. '우리 식으로 산다!'거나 '고난을 이겨내자!'거나 하는 식의 생존 의지 역시 굳세다. 옳건 그르건 주체사상은 신앙처럼 그들의 삶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전 세계가 자신들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건, 북한은 그들만의 생존 방식을 확고하게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과의 관계에서도 북한은 우리와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강한 군사력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 왔으니, 대한민국이 그에 대해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친다. 최근에 핵실험을 한 후에도, 자신들의 핵무기 덕에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가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고 강변했다.

경제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의 지원을 그들은 불로소득이나 무상원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그들이 군사력으로 기여한 것이 있으니 그 기여 덕분에 대한민국이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으니 우리도 할 일을 하는 게 도리라는 식이다.

이런 태도를 갖고 있는 북한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햇볕 정책 논쟁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햇볕은 무슨 햇볕이냐며 핏대를 올리지 않을까?

떡 줄 사람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하지 않을까?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한다고 하지 않을까? 혹은 어느 영화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해 '대한민국, 너나 잘하세요' 하지 않을까?

북한을 우리의 일방적인 의지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이 될 수 있다. 따스한 햇볕이건 강한 바람이건 당근이건 채찍이건 우리의 착각과 오만이 함부로 지어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서로 사랑하는 한 쌍의 남녀도 상대방을 자기 뜻대로 변화시키는 것은 너무도 지난한 일이다. 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물며 다른 체제로 맞서 있는 남과 북의 관계에서야 어떻겠는가. 일방적인 시나리오를 지어내 놓고, 그것이 현실화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꼴과 다를 게 없다.

요즘 UN의 결의를 바탕으로 국제 사회가 핵실험을 한 북한을 제재하고 나섰다. 그와 함께 북한을 압박하는 PSI(대량 살상 무기 확산 방지 구상)이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그로 인해 전쟁 발발의 가능성까지 거론되니 우리로서는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냉엄하고도 위기가 팽배한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북한이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나그네의 옷을 벗길 수 있느니 없느니 하는 식의 섣부른 시나리오부터 거두어야 한다. 북한은 결코 대한민국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배우가 아니다.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첫째 원칙은 어떠한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가치 판단과 모든 선택은 그 원칙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 원칙을 무너뜨리는 부류는 그들이 누구건 한반도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다.

둘째 원칙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당면 목표로 삼아 끝내 그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어렵게 얻은 핵을 결코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핵무기를 지렛대 삼아 북한이 얻고자 하는 것이 있으니, 협상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비핵화 명분을 앞세워 전쟁이라는 수단을 쓰려는 세력만은 철저히 경계하면서,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말을 믿으며 우리 모두 지혜를 모으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이 두 원칙만 확고하게 지킨다면, 북한의 핵실험으로 야기된 한반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억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어설픈 시나리오를 쓰자는 것이 아니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지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두 원칙을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평화를 향한 희망을 버리지 말자는 뜻이다. 그 희망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남는 것은 절망이 아니겠는가.

다시 강조하니, 희망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우선 햇볕이니 바람이니 당근이니 채찍이니 하며 북한을 두고 일방적인 시나리오를 쓰는 것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접근한다면 우리는 현실을 냉철하게 보지 못한 채 가상의 세계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야기된 한반도의 위기는 우화가 주는 교훈으로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하지 않다. 급변하는 현실은 우리의 생존 자체를 시험하고 있다.

그토록 절박한 상황이지만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다. 이제부터라도 진정한 평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새로운 눈, 새로운 생각, 새로운 정책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적인 과제이다.

글/배일도 의원(한나라당,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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