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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숲 1 - 삭사울과 포플러 2006-08-23 15:06
칭기즈칸이 제국을 세운 지 올해로 800주년이 되었음을 기뻐하는 몽골, 나는 올여름에 그 나라에서 기뻐할 수 없는 놈 하나를 만났다. 나를 비롯해 그 누구에게도 직접 해코지를 하지는 않았지만 어떻든 반갑지 않은 놈이었다.

그 이름은 삭사울, 난생처음 보는 이놈은 과연 정체가 뭘까? 이 지구의 환경 재앙을 알리는 예언자일까? 자연 파괴를 저지른 사람에게 경고장을 전하는 전령사일까? 몽골 관리의 소개로 이놈을 보는 순간, 이방인에게도 불현듯 위기감이 스쳤다.


"이 삭사울은 사막에서만 삽니다. 고비 사막에서 볼 수 있습니다. 활엽수인데 잎이 뾰족뾰족한 것이 꼭 침엽수 같지요. 이 삭사울이 나타난 것은 이곳이 사막이 되어 가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입니다. 10여 년 전부터 농사도 못 짓는 모래밭이 되었습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버스로 2시간가량 가다 보면 나타나는 황량한 평야, 멀척 엘스 지역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 몽골 관리는 이 지역이 사막화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 죽음의 땅으로 변해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런 듯했다. 나무는커녕 생명이 질기디 질긴 잡초조차 버티기 힘겨워 보였다.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모래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누런 모래가 날리기 시작했다. 봄만 되면 동북아시아를 휩쓸고 다니는 위험한 불청객, 바로 황사였다!

"사막화가 시작된 이런 곳에 나무를 그저 심기만 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사막의 나무, 삭사울 같은 것이 아니면 모두 곧 죽어 버립니다. 여기서 자랄 수 있는 나무의 품종과 나무 심는 방법 등을 연구하고, 심은 후에도 꾸준히 관리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럴 것이다. 한번 파괴된 자연을 사람이 어찌 쉽게 되살릴 수 있겠는가. 이 사막화의 시발지에서 버스를 타고 조금 더 가니, 사막화가 좀 더 진행된 투브아이막 룽 솜 지역이 나타났다. 아무도 반기지 않건만 이곳에서도 삭사울은 넓은 모래 평야에서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냈다.

삭사울만이 아니었다. 10여 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나무들, 그래서 현지 주민들에게도 낯선 이상한 나무들이 군데군데 뿌리를 내려 죽어 가는 땅의 황량함을 더했다.

그 지역의 책임자는 사막화가 그들에게 얼마나 절박한 문제인지를 솔직히 고백했다.
"주민들 상당수가 가축을 기르며 생계를 유지하는데 가축이 먹을 수 있는 풀이 자라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안타까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공연히 자연을 탓하거나 원망할 것이 아니었다. 사막화와 황사, 이 재앙은 사람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었다.

유난히 길고 추운 몽골의 겨울을 견디기 위해 땔감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구잡이로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썼을 뿐, 나무를 심지는 않았다. 그래서 산은 벌거숭이가 되었고 벌판은 허전해졌다.

또한 방목하는 수많은 가축들을 먹이겠다는 욕심을 앞세워 자연을 수탈했다. 풀이 다시 자랄 여지조차 남기지 않았다. 몽골 전체를 삼킬 기세의 대형 산불도 수차례 났다. 무분별한 개발도 국토 곳곳에 상처를 냈다. 땅이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몽골을 보고 있자니 일전에 방문했던 북한의 현실이 문득 떠올랐다. 북한 주민들 역시 땔감으로 쓰기 위해 나무를 마구 베어 수많은 민둥산을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그 탓에 이번 여름의 수해도 더욱 심각해졌다고 한다.

몽골과 중국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사막화, 그것이 북한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을까? 한반도에서도 삭사울을 보게 되는 날이 올까? 생뚱맞은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다.

절망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삭사울을 뒤로하고 한·몽 평화협력네트워크로 모인 우리 일행은 바가노르구로 이동했다. 바가노르구는 울란바타르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동쪽으로 2시간가량 가면 나오는데 노천 탄광으로 유명하다.

물론 우리가 탄광을 보자고 그곳에 간 것은 아니었다. 바가노르구에는 우리 일행인 NGO 시민정보미디어센터에서 지난해에 심은 1만 그루의 포플러가 자라고 있었다. 포플러는 성장 속도가 빨라 사막화와 황사라는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수종이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몽골은 심각한 경제난을 겪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 1인당 GNP가 5백 달러를 넘지 못한다.

그런 탓에 몽골이 사막화와 황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국제적인 연대가 절실히 필요한데, 현재 한국과 일본의 NGO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올해를 ‘사막화 방지의 해’로 정한 UN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1만 그루의 포플러, 아직 숲이라 부를 만큼 자라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그곳을 ‘한·몽 평화의 숲’이라 부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가노르구의 구청장과 주민들의 노력으로 그 포플러들이 거의 100퍼센트 살아 있었다. 구청장은 우리 일행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했다.

"여러분이 심은 포플러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나무를 심어야 잘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모두 여러분 덕분입니다. 몽골이 초록빛의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도움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나는 삭사울을 볼 때와는 달리 가슴에서 희망이 샘솟음을 느끼며 답사를 할 수 있었다.
"지난해에 심은 포플러를 잘 길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려움은 나누면 반이 되고, 즐거움은 나무면 배가 된다고 합니다. 한국과 몽골이 그런 관계가 되는 출발점으로 나무 심기의 의미를 삼을 수 있겠습니다. 나무 한 그루에 희망과 용기를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일행과 걸 스카우트 어린이들도 포함된 바가노르구 주민들이 하나로 어울려 평화의 숲에 포플러를 심었다. 포플러가 주는 희망에 도취된 것일까? 두 나라 사람 수십 명이 모였을 뿐인데, 마치 지구를 살리기 위해 전 세계인이 다 모인 듯 흐뭇했다.

내년에도 바가노르구에 1만 그루의 나무를 더 심도록 우리가 적극 지원하겠다는 협약도 맺었다. 또한 몽골의 자연환경부 장관과 만나 몽골이 야심차게 계획하고 있는 그린벨트 지역에 2만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협약서에 서명했다.

우리의 약속이 10만 그루로, 100만 그루로 점차 무성해진다면 우리의 미래도 그만큼 밝아질 것이다. 사막화와 황사를 막으려는 이러한 일은 동아시아의 당면 과제이자, 지구촌 공동의 사업이다. 관련된 국가들이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우리가 사막화와 황사 방지를 위해 '한국인 1인 1나무 심기 운동'을 펼치려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우리가 인류 공존의 길을 외면하면 그래서 핵전쟁만큼이나 참혹할 것이라는 환경 재앙이 몰려오면, 그 피해는 바로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

삭사울과 포플러, 과연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 이것이 선택의 문제인가? 삭사울이 자라는 사막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남은 문제는 선택이 아니라 행동이다. 인류의 일원으로 지구촌의 공존을 위해 희망과 용기를 갖고 당당하게 나서자. 우리를 위하여 평화의 숲을 가꾸자! 이것은 심심풀이 구호가 아니라 생존법이다.

글/배일도 의원(한나라당,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편집국 phj@eco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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