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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화, 생각을 바꿔야한다 2006-06-19 21:01
인류 공존의 관점으로 바라보자

요즘 나라의 앞날을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저출산 고령화'다. 그러니 나라를 이끌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이 정부가 입 다물고 있겠는가?

대책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제1차 저출산 고령 사회 기본 계획 시안'이 그것이다. 그 내용의 뼈대는 2010년까지 32조원의 돈을 들여 출산율을 높이고, 정년 연장을 이뤄내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각계각층에서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의 근본 원인인 성차별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이 못된다!" "근본 원인인 청년 실업과 고용 안정을 위한 정책이 없다" "근본 원인인 사교육비를 줄이는 정책이 못된다" "기업에 부담을 주면 출산 계층과 고령자 고용이 더 어렵게 된다! 32조원의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

비판하는 말들이 차고 넘친다. 나름대로는 근거가 없지 않은 주장들이다. 정부 정책의 어처구니없음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날을 세운 비판들 역시 정부 정책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으로,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성차별 해소, 고용 안정, 사교육비 경감 등은 모두 우리가 풀어야 할 중요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저출산 고령화' 문제의 해법이 될까? 지극히 의심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성차별 해소'를 예로 들어보자. 비교적 성차별이 적어 양성 평등에 가까이 다가간 선진국은 출산율이 높은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성차별이 심하고, 고용 안정은커녕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나라의 출산율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오만한 태도로 굳이 다른 가난한 나라들을 들먹일 것도 없다. 우리나라도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유교 지배 이데올로기가 만든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존여비 운운하며 성차별이 만연했는데, 출산율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

현대 여성들은 노동 시장으로 많이 진출해 있다? 그런데 성차별 때문에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시달린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 이런 주장들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엄밀히 보면 사실이 아니다. 그것이 사실임을 입증하려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통계가 있다. 직장 여성은 출산율이 상당히 낮고, 전업 주부는 출산율이 상당히 높다는 통계다. 과연 전업 주부의 출산율은 상당히 높은가? 전 세계의 현실을 보나, 우리나라의 실상을 보나 성차별이 저출산을 불러왔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이쯤 되면 물을 것이다. 정부의 정책도 문제이고, 그것을 비판하는 관점도 문제라면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양비론의 소파에 편안히 앉아 잘난 척이나 하겠다는 것이냐? 아니다. 우선 저출산의 원인을 보자. 분명한 한 가지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찾으며 산다. 출산율이 높은 것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데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반면에 출산율이 낮은 것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 말고 다른 것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요즘은 후자의 사람들이 많아 저출산이 사회의 화두가 된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개인의 자유에 속한다. 인위적으로 그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 자기가 행복하니 아이를 낳지, 누가 국가주의에 빠져 애국하는 심정으로 아이를 낳겠는가? 소가 웃을 일이다.

저출산 고령화?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해야 한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 이 문제를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보고 있다. 저출산으로 노동 인구는 줄고 있는데, 노동하는 젊은이들이 먹여 살려야 할 노인들은 늘고 있으니, 그 사회가 제대로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작금의 우리나라 출산율이 1.08인 것을 두고 '재앙'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언뜻 보면 그럴 듯해 보이는 주장이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재앙'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여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노동력의 부족? 굳이 조선족이나 고려인 등 우리 민족만 한정할 것도 없다. 아시와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들을 우리나라의 노동 시장으로 유입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 세계인과 공존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하다. 그러나 그런 구시대적 이데올로기로 미래 세계를 펼쳐 갈 수 없다.

이미 세계화의 물결은 전 지구로 퍼져 나가고 있다. 우리가 세계인과 공존하는 새로운 세상을 열면 세계화를 앞장서서 이끌 수 있다. 이런 것을 두고 실현할 수 없는 꿈이라며 움츠리고만 있다면, 우리는 세계화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고령화? 본래의 뜻이야 어떻건, 요즘 ‘고령화’라는 이 말은 아주 불순하게 사용되고 있다.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삐딱하다. 존경의 대상이기는커녕 젊은이들이 먹여 살려야 할 귀찮은 존재로 보는 것이다. 사회의 부담으로 보는 것이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현행 법률상 고령자는 대통령이 정한 55세 이상을 말한다. 평균 수명이 80세 이상으로 증가하였는데도 평균수명이 58세 때의 개념으로 노인이라고 한다.

수명이 늘어난 것은 축복이다. 그런데 왜 그러한 축복이 사회의 부담으로 비춰져야 하는가? 그런 시각 때문에 젊은이와 노인 사이의 갈등이 빚어진다. 축복이기는커녕 견딜 수 없는 수모라며 자살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고령화' 즉 수명연장의 문제를 두고 국가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노인들에게 돈을 얼마나 지원하느냐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당당한 사회인으로 살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나이 든 분들에게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는 능력도 권한도 없으면서 공연히 정년 연장 운운할 것이 아니라, 규제를 풀고 기업이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성장이 있고, 일자리가 생긴다.

'저출산 고령화'는 '재앙'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인과 공존하는 새로운 세상을 열고, 또 세대 간의 갈등을 해소하면서 좀 더 행복한 삶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생각을 바꾸고 노력한다면, 그러한 꿈은 현실이 될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희망이 있는 길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글/배일도 의원(한나라당,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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