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09월23일토요일
전문칼럼
   
  
 
 
 
 
 
 
 
 
 
 
 
기사검색
  

  관련기사 : <와야(瓦也) 연재>우국지사들 한 달래던 ‘운서정’
관련기사 : <와야(瓦也) 연재>국내 최초 다목적댐이 만든 ‘옥정호’
관련기사 : <와야(瓦也) 연재>물과 씨름한 ‘요강바위’·재앙 대비 ‘남근석’
<와야(瓦也) 연재>섬진강 두꺼비의 ‘사랑바위’ 2023-06-04 08:18
섬진강 530리를 걷다(6)

【에코저널=서울】회문산 중턱에 있는 ‘고추장 익는 마을’에서 꿈도 익혀 가며 아침을 맞이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항아리 조형물.

항아리로 웃음 형상을 만들어 놓아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속까지 미소 짓게 만드는데, 가파르게 경사진 길을 바삐 오르내리기에는 숨이 차다.

조반을 마치고 순창군 동계면으로 이동해 봄비가 안개처럼 내리는 구암정으로 간다. 구암정(龜巖亭)은 아름다운 여울이 머물다 가는 만수탄(萬壽灘) 적성강변에 있는 정자다. 연산군 때 순창 출신 선비인 구암 양배(龜巖 楊培)가 무오사화(戊午士禍 1498)와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로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 순창에 낙향해 동생 양돈(楊墩)과 함께 낚시를 하며 세상의 시름을 잊고자 했던 곳이라고 한다.

남원양씨(南原楊氏)의 600년 터전인 무량산(無量山 586m)이 우뚝하다. 풍수지리에는 문외한이지만, 나오며 뒤아본 구암정이 있는 마을은 무량산은 배산(背山)이요, 적성강은 임수(臨水)라, 천지간의 기막힌 조화를 받아들이는 느낌을 받는다.

궂은비 내리는 섬진강 자전거 길을 따라 강 건너에 이르니 ‘강경마을’이라는 자연석 표지가 분위기를 압도한다. 길옆에는 ‘거북바위 전설’과 ‘나무매 설화’이야기 등 남원양씨의 세거지(世居地)가 된 전설들이 줄지어 서 있다.

▲두꺼비의 사랑바위.

하류로 내려올수록 보(洑)가 있어 수량이 많아지고 흐르는 여울소리도 잦아진다. “내리는 비를 어떻게 하면 덜 맞을까?” 잔머리 굴리며 무심코 걸어가는데 한걸음 앞서가던 도반께서 강 위의 작은 바위를 손으로 가리킨다. 쳐다보는 순간 바위의 형상이 두꺼비다. 섬진강의 섬자가 두꺼비 ‘섬(蟾)’ 자인데 두꺼비 한 쌍이 비 오는 봄날에 사랑을 나누는 형국으로 바라보는 마음은 엄청난 횡재를 한 기분이다.

내월교(橋)를 지나 하류 쪽으로 내려가면 상수원보호구역이 나오고 물을 가둬 놓은 보(洑) 가운데에는 물고기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어도(魚道)를 꾸밈새 있게 만들어 놓았다. 강둑 옆 보리밭으로 뛰어들어 옛날 ‘보리밭 밟기’ 하듯이 자근자근 밟아보지만 질퍽한 흙만 발바닥에 달라붙는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버들강아지는 꽃술을 터트리고 발길은 어은정에 당도한다.

어은정(漁隱亭)은 구암 양배의 증손인 어은 양사형(漁隱 楊士衡, 1547∼1599)이 친구들과 시주(時酒)를 즐기던 곳이다. 양사형은 선조 때 영광군수 등 벼슬을 지냈고,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이 됐다고 한다. 주변에는 신주를 모시는 사당과 강진김씨(康津金氏)의 열녀정려(烈女旌閭)가 있다.

빗방울이 멈추고 강바람 타고 올라오는 봄바람은 옷자락을 살랑거린다. 섬진강 하류로 조금 더 내려가면 임실군 오수에서 흘러들어오는 오수천과 만난다. 본류인 섬진강은 댐에 막히고 보에 물의 흐름이 끊기는데 지천인 오수천은 막힘이 없이 힘차게 본류로 진입한다. 강둑을 따라 자전거 길도 마련돼 있지만, 간간이 교량과 도로가 걸음의 리듬을 흩트려 놓는다.

오수천과 만나는 합수지점 위로 뻗은 우평교 교각 밑으로 머리를 숙이며 지나온 강둑길은 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봄의 교향악이다. 파릇파릇 냉이가 솟고 쑥은 수줍게 고개를 내민다.

강변 어느 아담한 집에는 벽난로용 장작을 조형미술처럼 가지런하게 쌓아 놓았다. 강둑의 소나무는 너울너울 춤을 추고 지북사거리 부근에 있는 모 매운탕 집 옆으로 지나는 잠수교의 물 흐름소리는 봄의 소리 왈츠다.

향가유원지 인근에서 섬진강의 진미 메기매운탕으로 점심을 하고 향가터널을 지나 오전의 끝점인 상류로 올라가다가 순창읍에서 흘러나오는 경천과의 합류지점에서 약간의 혼선이 오는 것 같다. 가로질러 가는 여울목 징검다리가 물이 차서 건너 갈 수가 없다. 그래서 향가터널로 다시 와서 하류로 방향을 잡는데, 왜정 때 강제로 동원된 사람들의 피맺힌 절규가 동굴을 통해 들려오는 것 같다.

▲향가터널.

향가터널은 풍산면의 옥출산을 뚫어 만든 터널로 일제강점기 때 이 지방과 인근의 남원 담양 일대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철로를 가설하다가 1945년 해방과 함께 철로가설이 중단돼 터널로 남게 됐다. 철교를 놓기 위해 세운 교각이 방치돼 있다가 그 위에 나무로 자전거다리를 만들어 쉽게 건널 수 있게 됐다. 중간에는 섬진강을 조망할 수 있는 유리바닥의 스카이워크 전망대가 설치돼 있어 사람들을 유혹한다. 향가목교를 건너자마자 남원시 대강면이다.

오후로 접어들수록 강바람은 더욱 거세진다. 옷깃 틈새로 스며드는 바람 끝도 분명 겨울 칼바람이 아니고 무언가 생명의 싹을 틔울 수 있는 포근한 바람이다.

강폭이 넓어지는 곳은 전남 곡성군 옥과에서 흘러드는 옥과천과 합수(合水)되는 곳이다. 강 건너에는 곡성의 입면농공단지와 우리나라 굴지의 타이어공장이 크게 보인다. 좌측으로 대강면 방산리 마을이 보여 그 마을을 가로질러 나갈 때 굵은 빗방울이 우두둑 떨어진다.

휴대폰에서는 중부지방 이북에 대설(大雪)이 내린다는 급한 소식이 온다. 가는 길에 많은 눈이 내려 역시 집으로 가는 길은 어느 날보다 무척 더디고 길었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편집국    

이 기사에 대한 소유권 및 저작권은 에코저널에 있으며 무단전재 및 변형, 무단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경우 법적 조치를 받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기사목록]  [인쇄]  [메일로 보내기]  [오탈자 신고]  [글자크기 ] [저장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