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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사후에도 후백제 그리웠던 ‘견훤’ 2023-05-06 08:29
금강 천리 길을 걷노라면(20)

【에코저널=서울】강경에서 금강하구둑까지 40여㎞ 남겨두고 주변의 문화유산을 더듬어 봤다.

지난 5월부터 금강 발원지인 뜬봉샘에서 걷기를 시작해 여기까지 오는 동안 때로는 일부 구간을 건너뛰기도 했고, 보행 상 어려움이 있어 생략한 구간도 있었다. 금강 주변 역사·문화와 주변의 삶에 대한 애환도 느껴보려 했으나, 건성건성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전라관찰사를 비롯한 신·구 고위 관료들이 인계인수를 하던 황화정(皇華亭)은 옛날 5·16쿠데타 이전에는 분명 전라도 땅이었다. 1963년 지방행정구역이 개편되기 전에는 전북 익산군 황화면이었으나, 금산군이 충남으로 편입될 때 같이 논산군으로 편입, 구자곡면과 통합돼 지금의 연무읍이 됐다.

▲황화정 표지석.

유서 깊은 그 자리에 ‘황화정’ 정자는 온데간데없고 봉곡서원 담벼락 밑에 표지석만 덩그렇다. 그 표지석이 있는 자리가 정자가 있던 자리인지도 아무런 설명이 없어 불분명하다.

▲봉곡서원.

봉곡서원(鳳谷書院)은 우암 송시열과 오봉 이호민의 발의로 전라도 여산현(황화면)에 건립됐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됐다가 근래에 복원됐다고 한다. “기왕이면 황화정도 함께 복원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안은 채 후백제왕 견훤왕릉으로 이동한다.

견훤(甄萱)은 900년에 후백제를 세우고 중국의 오·월(吳越)나라와 수교하며, 궁예와 왕건에 대항했다. 927년에는 경주를 공격해 경애왕을 자결하도록 하고, 경순왕을 세우는 등 후삼국 중 가장 막강한 세력이었다. 후계문제로 장남 신검에게 금산사에 유폐됐다가 도망 나와 왕건에게 항복하고, 그를 도와 후백제를 멸망시킨 후에 등창으로 죽는다.

▲견훤왕릉.

죽을 때 후백제의 산천이 보고 싶고, 도읍지 완산(전주)을 바라볼 수 있는 쪽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이곳에 묘를 썼다고 전해 내려온다. 그러나 아직까지 확실한 고증이 없어 앞에 전할 전(傳)자를 붙여 ‘전 견훤의 묘’라 고도 한다. 묘는 충남 논산시 연무읍에 있고, 봉분 주변에는 상석 외에는 아무런 석물이 없다. 문중에서 세운 ‘후백제왕견훤릉(後百濟王甄萱陵)’ 비석이 능을 지킨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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