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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부강포구, 충청 경제발전 ‘시원’ 2023-04-16 08:56
금강 천리 길을 걷노라면(15)

【에코저널=서울】세종특별자치시와 경계를 이루는 청주시 현도면 시목리가 나온다. ‘농촌건강 장수마을’로 지정된 시목리는 감나무가 많아 감나무 골이라 했다고 한다. 아마 감나무를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감나무 시(柿)자에 나무 목(木)자를 써서 ‘시목리’로 바뀐 것 같다.

강 가운데로 길을 새로 만드는지 중장비(포크레인) 한 대가 바삐 움직인다. 치수(治水)를 더 잘해 보겠다는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물이 고이면 썩는다”라는 영원한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

▲부강산업단지.

세종자치시 부강면에 들어서니 먼저 우측으로 산업단지가 보인다. 전깃줄이 하늘에 그물을 친 것처럼 뻗쳐있고, 공장에서는 굴뚝의 연기 대신 하얀 수증기를 내 뿜는다.

▲옛 부강포구로 가는 길.

부강은 금강에서 배를 타고 올라오는 내륙의 마지막 포구로 충청내륙을 이어주는 ‘부강포구’였다. 현 부강중학교 앞으로 백천이라는 작은 하천이 금강과 합류하는 지점은 강폭이 넓고 수심이 깊어 3백여 척의 배를 한꺼번에 정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충청도 내륙 도시의 근대화 과정에서 “부강포구는 ‘충청지역 경제발전의 모체와 시원(始原)’이라고 청주대 김신응 교수가 평했다. 전성기에는 초사흘과 보름에 한 번씩 지내는 배 고사떡만 얻어먹고도 인근 사람들이 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며, 배들이 싣고 온 해산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조기로 부채질하고 미역으로 행주를 삼았으며, 명태로 부지깽이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신정일의 저서 새로 쓰는 택리지 5)”고 한다.

부강포구의 흔적이라도 찾아볼 심산으로 자동차도 다닐 수 있는 간이 철제다리를 건넜는데, 흔적도 없이 수초만 무성하다. 금강 위로 새로 난 호남선고속(KTX)철교에 열차가 지나갈 때마다 흐르는 강물도 때론 외로웠는지 여울을 만들며 울음소리를 낸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을 어찌하랴. 부강포구의 영화는 전설이 되어 버렸는걸. 아쉬움을 뒤로하며 조금 더 밑으로 내려와 현수교(懸垂橋)인 아람천교 북쪽 밑으로 가까운 곳에는 합강공원이 조성돼 있는데, 그곳이 금강의 제1지천인 미호천과 만나는 합수지점이다. 미호천(美湖川)은 충북 음성의 망이산(472m)에서 발원해 청주의 무심천(無心川) 등 여러 개의 지류를 합쳐 남서쪽으로 흐르면서 부강(芙江) 서쪽에서 금강과 합류한다.

세종시청 쪽을 향해 내려오면 하천부지 가운데로 난 길 우측으로는 한글공원이 조성돼 있다고 하는데, 겉에서는 안내판 외에는 확연하게 눈에 띄지 않는다. 아마 세종대왕이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반포한 것에 착상한 것 같다. 좌측으로는 무슨 공사를 하려는지 파 헤쳐진 건물의 유구(遺構)들이 을씨년스럽고 흉물스럽다.

세종특별자치시는 우리나라 17번째 광역 지방자치단체로 기초단체(시·군·구)가 없는 유일한 단층 구조다. 지리적으로는 충남·북과 대전광역시 사이에 길쭉하게 끼인 형태로 옛 충남 연기군을 중심으로 청주시 일부와 공주시 일부가 편입돼 이뤄진 행정복합도시다. 2012년 국무총리실부터 이전하기 시작해 현재 대부분의 정부 중앙부처가 이전해 와 있다. 햇무리교 근처 ‘나라키움 세종국책연구단지’ 가까이에 오니 해는 세종시를 석양으로 물들인다. 알찬 내일을 저 붉은 석양에 저축하듯 오늘도 땅거미 속에 묻는다.

계룡산갑사청소년수련원에서 계룡산의 정기를 듬뿍 받고 먼동이 트기 전에 갑사에 오른다. 갑사(甲寺)는 420년(백제 구이신왕1년)에 고구려에서 온 아도(阿道)가 창건했다고 한다. 그 후 여러 번 중수를 거쳤다. 영주 부석사를 세운 의상(義湘)이 679년에 다시 중수해 신라 화엄십찰(華嚴十刹) 중의 하나가 됐다가, 임진왜란 등을 거치면서 전소된 것을 1654년부터 여러 차례 손질을 거쳐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특이한 것은 대웅전 앞에 그 흔한 탑이나 석등이 없이 마당만 보인다.

▲갑사 대웅전.

계룡산(鷄龍山, 845m)은 임진왜란 이후 유행했던 정감록(鄭鑑錄)의 ‘계룡산 천도설(遷都說)에 명시된 미래의 도읍지’로 알려진 곳이다. “봄에는 마곡사 가을에는 갑사(春麻谷寺 秋甲寺)”라는 말처럼 계룡산은 가을이 더 아름다운 곳이다. 닭벼슬 같은 정상을 이고 있는 대웅전을 뒤로하며 우측 문으로 나온다. 메주 돌로 쌓은 홍예문(虹霓門)은 안으로 난 돌계단과 조화를 이루고, 그 옆의 큰 바위 옆 밑으로 金鷄嵒(금계암)이란 각자(刻字)가 수줍게 새겨져 있다.

조금 아래에 있는 마당에 ‘공주갑사승탑’이 나온다. 승탑이란 승려들의 유골을 안장한 묘탑이며, 팔각형의 지붕을 가진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으로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양식이란다. 이탑의 아래 지대석 부분에 연꽃과 사자, 구름과 용을 새겼고, 지붕 아래 탑신부에는 사천왕상이 부조돼 있다.

승탑 바로 아래에는 불교의 깃발(佛幡) 내 걸던 철제당간(鐵製幢竿)이 우뚝하다. 어림짐작으로 15m정도 높이의 당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길이 갑사의 원래 입구인 것 같다. 그리고 갑사 입구 마을에는 매년 정월 초사흘에 마을사람과 승려들이 정성들여 제사를 올리는 괴목대신(槐木大神) 상석이 있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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