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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옥천이 낳은 시인 정지용 2023-04-02 09:19
금강 천리 길을 걷노라면(11)

【에코저널=서울】동이면 금강으로 가기 전에 옥천이 낳은 시인 정지용(鄭芝溶, 1902. 5∼1950. 9)의 생가로 간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시인 정지용은 해금됐다.

▲정지용 동상.

서울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한국전쟁 때 납북인지 월북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정지용이 쓴 주옥같은 글들은 북한에 있다는 이유 하나로 모두 금서로 묶여 누구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최근에는 ‘보도연맹사건’에 연루돼 억울하게 죽었다는 설도 있으나 아직은 확인된 바 없다.

▲정지용과 함께.

일제강점기인 1930∼1940년대 이 땅의 시인으로서 우리 민족의 모습을 문학적이고 아름다운 글로 표현한 사람이 또 있을까?

정지용문학관 앞에 서 있는 동상이나 문학관 내부의 긴 의자에 앉아 계시는 모습은 오랫동안 묶여 있던 아픔 때문인지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표정이 여리고 굳어 있는 것만 같다.<정유순의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에서>

옥천 구읍에 자리한 생가는 초가삼간 겹집이다. 안채는 보수 중으로 출입을 금하고 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고, 옆에 있는 문학관에 들러 시인의 엷은 체취를 짙게 맡아본다. 그리고 성악을 하는 도반의 ‘향수(김희갑 작곡)’ 노래를 들어 본다.

목이 잠기는 아침나절인데도 목소리는 청아하게 ‘비인 밭에 말을 달리듯∼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실개천을 타고 길게 흐르고, 초라한 초가에는 조롱박이 대롱대롱 매달려 지난 혹서(酷暑)를 기억한다.

▲옥주사마소 안내

정지용 생가에서 가까운 옥천읍 상계리에는 ‘옥주사마소(沃州司馬所)’라는 충북유형문화재(제157호)가 있어 둘러본다. 옥주는 옥천의 옛 이름이다. 사마소는 조선 중기 이후 지방마다 생원과 진사들이 모여 친목과 학문, 정치, 지방행정의 자문 등을 논하던 곳이다. 그러나 점차 압력단체로 발전해 폐단이 커져 1603년(선조36년)에 없앴으나, 지방에 따라 그 폐단이 지속되기도 했다고 한다.

옥주사마소는 1654년(효종5년) 의창(義倉)을 뜯어다가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의창은 ‘곡식을 저장해 두었다가 흉년이나 비상시에 가난한 백성에게 대여해 주는 기관’으로 이를 뜯어다 지었다는 의미는 그리 반가운 것은 아닌 것 같다.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며, 앞면 4칸에 툇마루를 두고, 그 뒤에는 오른쪽으로 마루, 왼쪽으로는 온돌방과 부엌을 두었다. 뒤란으로 돌아가니 좁은 남새밭에는 가지고추 등 여러 종의 작물들이 주인의 손에 따라 튼실하게 자란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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