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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무주∼금산 이어주던 ‘용포교’ 2023-03-18 05:32
금강 천리 길을 걷노라면(6)

【에코저널=서울】다시 하류로 이동해 상굴교를 지나 굴암삼거리에서 무주 ‘예향천리 금강변마실길’로 접어든다. 무주읍 잠두마을 건너에는 봄이면(4월 중순) 복사꽃과 벚꽃, 조팝꽃이 휘 늘어져 뭇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무릉도원 십리길’이 있어 그 길로 간다. 잠두마을은 강물이 휘돌아 툭 튀어나온 지형의 모습이 누에머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금강 물을 힐끔힐끔 훔쳐보며 하천부지로 내려와 살이 쪄가는 사과밭을 지나 용포교로 향한다.

▲용포교.

일본강점기 때 건설된 용포교가 놓인 이곳은 무주와 금산을 이어주던 큰 길목이었다.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나무배가 두 지역을 이어주는 유일한 수단이었으며, 그 나무배 위에 버스와 우마차를 싣고 건넜다 하니 그 풍경은 가히 장관이었으리라.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일부 파손되기도 했으나, 보수가 되어 제 기능을 다 하고 있어 흐르는 강물과 함께 우리 삶의 질곡과 기쁨의 세월을 오롯이 기억하면서 서 있는 것만 같다.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밑에는 캠핑족들이 천렵(川獵)하느라 바쁘고 길옆의 칡넝쿨은 올가미가 되어 내 발을 잡으려 한다. 데크로 정비된 길에는 아기 주먹만 하게 열매가 맺힌 으름덩굴이 진을 치고 가시덩굴들이 경계를 이룬다. 절벽 아래 강물은 힘을 더해 강한 소리로 속도를 낸다. 무주읍에서 흘러오는 남대천도 금강과 합류해 힘을 보탠다.

▲남대천(좌)과 금강(우) 합류지점.

남대천은 대덕산(大德山)과 민주지산(珉周之山) 등에서 발원해 무주읍을 지나 금강 상류로 흘러든다. 하천의 상류는 무주구천동이 포함되는 덕유산국립공원에 속해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나제통문(羅濟通門)과 아침에 들렀던 적상산(赤裳山) 사고(史庫) 등의 유물이 있다.

남대천 합류지점을 지나 산 비탈길 따라 하류로 조금 가니까 무주와 금산의 경계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귀엽게 서 있다. 다시 하천부지로 내려와 가끔 길바닥에 물이 찬 길을 따라 걷는다. 강을 경계로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를 걷고 있다. 뱀처럼 꼬불꼬불한 강을 따라 앞으로 나갔으나, 길이 자꾸 끊긴다. 다시 뒤돌아 나와 어쩔 수 없이 앞섬으로 이동한다. 방우리는 금강 변에 자리 잡은 금산군 땅으로 군청을 가려면 무주를 거쳐야 갈 수 있어 주민들도 이러한 점이 불편해 무주군으로 행정구역을 바꿔 달라고 한단다.

남대천과 합류한 금강이 충남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로 올라갔다가 다시 무주읍 내도리 앞섬으로 내려와 다시 한 번 휘감고 올라가 방우리를 거쳐 수통리 적벽강으로 이어진다. 무주읍 향로봉에 올라 산들이 금강을 끼고 도는 모습을 바라보면 육지 속의 섬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앞섬’이다.

▲앞섬 안내판.

앞섬은 토지가 비옥해 어떤 농사를 지어도 잘 자란다고 한다. 사과밭과 복숭아밭 과수원이 넓게 자리한다. 밭의 다른 작물들도 무성하게 잘 자란다. 앞섬대교 건너 자동차도 오가는 강둑길을 따라 다시 방우리쪽으로 올라갔으나, 길이 막힌다. 보(洑) 밑으로 수초가 잘 발달된 하천부지를 따라 앞섬으로 되돌아와 칠암산(漆岩山) 밑 후도교까지 갔다가 나와 앞섬대교를 건너와서 어죽으로 오늘을 마무리한다.

오늘은 충남 금산 땅을 걷기 위해 부리면 수통리에 있는 적벽강 적벽교에서 첫발을 내딛는다. 무주 남대천과 합류한 금강이 무주의 앞섬과 금산의 방우리를 휘돌아 층암절벽(層巖絶壁)으로 이뤄진 산 사이를 뚫고 이곳 수통리에서 적벽강을 이룬다. 아침에 녹음으로 짙게 물든 산이 비치는 적벽강은 고요한 아침의 잔잔한 호수다.

강변 하천부지에는 수생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그 사이를 비집고 흐르는 강물은 멀리 은빛 물결로 반짝인다. 간간이 자동차가 오가는 강둑길을 거닐며 병풍처럼 둘러 쳐진 산들이 줄을 이어 적벽을 이룬다. 수통대교 건너기 전에 금강사(錦江寺)라는 절이 있어 둘러보았지만 별다른 불교 시설이 없는 것으로 보아 최근에 새로 생긴 절 같다.

수통대교 건너에는 금산의 집성(集姓)인 모(某)씨의 사당(祠堂)이 길라잡이를 한다. 사당 앞 모정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강변도로를 따라 계속 전진한다. 금산에는 우리나라 굴지의 타이어 공장이 있는데, 이 회사의 ‘아카데미하우스’가 강변에 넓게 자리한다.

하천변 고수부지(高水敷地)에는 휴일을 틈타 캠핑 나온 사람들이 텐트촌을 이루고 일부는 다슬기 채취와 천렵(川獵)에 여념이 없다. 주토천 합류지점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무지개다리가 나온다. 무지개다리는 아치형 홍교(虹橋)가 몇 번이고 반복하여 세어 봐도 7개가 아니라 6개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아마 일곱 가지 무지개색 때문에 생긴 착각 같다.

오전을 마감하기 전에 금산군 남이면에 있는 ‘진악산보석사(進樂山寶石寺)’에 들른다. 진악산(732m)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 보석사는 886년(신라 헌강왕 12년)에 조구대사가 창건한 역사 깊은 절이다. 그리고 창건 당시 앞산에서 채굴된 금으로 불상을 주조(鑄造)해서 보석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일주문을 지나 일 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은행나무로 가는 길목은 울창한 숲과 암석이 맑은 시냇물과 어울려 속세의 근심을 잠시 잊게 하는 것 같다.

절 입구에 서있는 은행나무는 높이 40m, 흉고둘레 10.4m, 나이는 11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나무가 오래돼 위로 뻗은 가지가 땅으로 뻗었고, 다시 그 곳에서 가지가 자라 오르고 있다. 뿌리가 100여 평에 걸쳐 땅속에 퍼져있다. 장엄하고 위압적인 외형을 갖추고 있다. 중심 가지는 부러지지 않고 남아있어 높이를 자랑한다. 이 나무는 조구대사가 보석사 창건 당시 심었다고 전해진다. 마을이나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 소리 내어 울어줌으로써 재난에 대비하는 수호신으로 전한다. 매년 음력 2월 15일(경칩)에는 신도들이 은행나무 앞에서 대신제를 지낸다.

보석사를 나와 시오리쯤 떨어진 금산인삼시장으로 나와 인삼튀김을 안주 삼아 인삼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산 중턱에서 인공폭포가 떨어지는 제원면 천내리로 이동해 ‘도리뱅뱅이’와 민물매운탕으로 금강의 맛을 만끽한다.

오후에는 제원면 용강리에 있는 마달피산 아래 삼육대학교청소년수련원에서 일정을 시작한다. 이 수련원이 막다른 길목이라 더 이상 들어 갈 수가 없다. 갑자기 들어서자 관리하신 분이 허둥지둥 뛰어나오며 용건을 물어본다. 이 수련원은 강변에 숲이 어우러진 배산임수(背山臨水)형의 천혜의 절경에 자리 잡은 것 같다.

마달피휴게소를 출발해 수초가 잘 발달된 강물의 흐름에 따라 우리도 흐른다. 인삼밭 사이로 더덕과 하수오 농장도 보이고 사과가 익어가는 과수원도 보인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은 주변의 비옥한 토지를 적시며 풍요롭게 해준다. 금산(錦山)은 금수강산(錦繡江山)의 줄임말이란 게 금산군민은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이 굳게 믿고 있듯이 주변의 산과 강이 그야말로 비단에 수(繡)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꿈속에서 꿈길을 걷는 양 공중을 날 듯 발걸음을 가볍게 걷는데, 제원대교 못 미쳐서 닥실나루 표지석이 나온다. 닥실나루는 제원대교가 들어서기 전에는 전라·충청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호남으로 쳐들어가는 만여 명의 왜적들과 이곳을 방어하던 금산군수를 비롯한 육백여 명의 군사가 접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아군들이 모두 전사했다고 한다.

제원대교를 건너 충북 영동방향으로 강을 따라서 간다. 천내나루터를 지나 영동 쪽으로는 도로공사가 한창이고, 산 밑으로 새로 터널을 뚫는다. 점심때 물을 뿜어내던 인공폭포도 물길이 멈췄으나 금강은 말이 없다. 조금 더 내려가자 어제 우리가 잠을 잤던 금산 ‘꿈나래직업진로체험원’ 입구가 보인다. 숙소는 영동군과 경계를 이루는 월영산(月影山, 529m) 아래에 있다.

강변 캠핑장 소나무 아래에는 자연이 다듬은 수석이 자태를 자한다. 공사로 걷기가 불편한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니 충남 금산군이 끝나고 충북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가 나온다. 이곳도 월영산 자락으로 대보름날 이곳에 뜨는 달을 보고 그해 농사를 점치며 풍년을 기원했다는 곳에서 풍성한 다음 달을 기약한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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