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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규제완화 요구, 정부가 화답…화학사고 늘어 2022-09-22 09:22
【에코저널=서울】2015년 화학물질관리법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학물질등록평가법)이 시행된 후 현저한 감소세를 보이던 국내 화학물질 사고가 2020년을 기점으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으로 확인됐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사태와 2020년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재계의 규제완화 요구가 봇물을 이루며 정부가 화학물질 규제 완화를 본격화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정의당 이은주 의원(비례대표)이 화학물질안전원으로부터 제출받은 ‘2015~2022년 7월말 국내에서 발생한 화학사고 연도별 현황’ 분석결과에 따르면 화학물질관리법과 화학물질등록평가법이 본격 시행된 2015년 114건의 화학사고가 발생했다.

2016년에는 78건의 사고가 발생, 전년 대비 32%가량 줄었다. 2017년 88건으로 다소 증가한 화학사고는 2018년 66건, 2019년 58건으로 눈에 띄게 감소했다. 유해화학물질의 취급 기준과 취급시설의 안전관리를 강화한 화학물질관리법과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도록 한 화학물질등록평가법 시행의 효과로 읽힌다.

줄어들던 화학사고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2020년부터다. 2020년 1월2일 충남 아산시 나스테크 철강공장에서 염화수소(염산) 1천리터가 누출된 사고를 시작으로, 그해 75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롯데정밀화학(3월), LG디스플레이(4월, 5월, 6월), 한국수력원자력(7월), LG화학 온산공장(8월), 삼성디스플레이 그린센터(10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학장비축기지(10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11월), 한국동서발전 당진화력발전본부(11월) 등 대기업과 공기업 등에서도 황산, 수산화나트륨, 염화수소(염산), 농약(살충제) 등 유해물질 누출 사고가 잇따랐다.

2021년엔 화학사고가 93건까지 늘어났다. 화관법, 화평법이 막 시행됐던 6년 전 수준으로 돌아간 셈이다.

2021년 1월6일 정일수산 암모니아 누출(부상 1명), 11일 ㈜대상 군산공장 염화수소 누출(부상 2명), 13일 경기도 파주 LG디스플레이 공장 수산화테트라메틸암모늄(TMAH) 누출(사망 2명, 중상 3명), 14일 현대제철 당진공장 일산화탄소 누출(부상 2명) 등 1월에만 굵직한 화학사고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3월에는 LCD 소재 업체 타코마테크놀러지㈜에선 화학물질 누출에 따른 화재가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을 당했다. 4월에는 SK하이닉스 이천공장에서 불산과 과산화수소가 누출돼 1명이 부상을 입었고, 5월에는 누출, 화재, 폭발 등 크고 작은 화학사고가 15건 발생했다.

올해 들어선 8월 말까지 총 29건의 화학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5월19일 에쓰오일(S-OIL) 울산공장에서 아이소뷰테인 함유 인화성가스 혼합물이 폭발하면서 화재가 발생, 1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을 입는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2015년 1월부터 2022년 8월, 이 기간 가장 많은 횟수로 누출된 화학물질은 △염화수소(염산) 79건 △암모니아 69건 △황산 67건 △질산 64건 △염소 28건 등이다.

염산은 피부에 닿게 되면 심한 손상을 일으키며, 흡입시 호흡기 점막 손상이나 호흡 곤란을 일으킬 수 있는 유독물질이다. 암모니아는 강한 염기성을 띠며 부식성을 가지는 유해화학물질로 공기와 섞이면 화재와 폭발을 일으킨다. 황산은 맹독성 화학물질로 노출시 피부에 심한 화산과 눈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고, 흡입하면 치명적이다.

강산화제인 질산은 화재나 폭발을 일으킬 수 있고 피부에 노출되면 심한 화상과 눈 손상을 일으킨다.

이은주 의원은 “법 시행 4년만에 절반으로 줄어든 화학사고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한 시기를 눈 여겨 봐야 한다”며 “시설노후화 문제와 더불어, 2019년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3종 수출 규제 조치와 2020년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재계의 화학물질 규제 완화 요구를 받아들인 정부가 대폭적인 화학물질 규제완화 조치를 한 시기와 맞물린다”고 지적했다.

실제 2019년 일본 수출 규제 사태가 터졌을 당시 문재인 정부는 기업지원을 명분으로 화학물질 규제 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환경부는 고시를 개정해 화학물질관리법상 화학물질 취급시설 인·허가 기간을 75일에서 30일 내로 단축시켰다. 그리고 시행규칙(21년)에서는 화학사고예방관리계획서 작성 및 제출 면제대상을 운반‧보관시설, 소량 취급자, 군사시설, 의료기관 등으로 확대했으며, 유해화학물질 운반 차량이 20대 이하인 경우는 유해화학물질관리 점검원 선임을 면제(2017년)했다.

화학물질관리법에 규정하고 있는 화학사고와 직접 관련이 없지만, 화학물질규제완화는 계속됐다. 화학물질등록평가법 시행령을 개정해 신규 화학물질 품목 159종에 대해 안전성 시험자료 제출을 생략할 수 있게 했다. 2020년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정부는 한 번 더 시행령을 개정했고, 이로 인해 신규 화학물질 등록 시 제출해야 하는 시험자료를 생략할 수 있는 품목이 기존 159종에서 338종으로 확대됐다. 2021년 10월에도 시행령(13조)을 개정해 연간 1천톤 미만으로 제조·수입되는 고분자화합물을 등록 신청하는 경우 위해성에 관한 자료의 제출을 생략할 수 있도록 했다.

이은주 의원은 “규제완화의 결과로 화학사고가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규제완화라는 정책 방향이 안전관리 소홀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윤석열 정부 들어 화학물질 규제 완화 범위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환경부가 ‘규제 합리화’를 하겠다며 지난달 26일 발표한 ‘환경규제 혁신방안’에는 화학물질을 위험도에 따라 분류해 규제를 차등 적용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화학물질의 유해성과 위해성 정도에 따라 취급시설 기준과 영업허가 등의 규제를 차등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것으로, 지난 6월 전경련이 한화진 환경부장관에게 제안한 규제 개혁 과제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이은주 의원은 “정부마저도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화학물질 규제 안전 제도를 기업의 경영활동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규제로 취급하고 있다”며 “기업 경영만 중시하며 규제완화를 남발할수록 돌이킬 수 없는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시민의 생명이 기업 이익에 앞설 순 없다”고 밝혔다.

이정성 기자 jungsung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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